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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2020년 박스오피스 분석: 코로나19와 긴 비수기의 시작
이유채 2023-04-07

2020년 한국 사회 최대 이슈이자 단 하나의 사건을 꼽으라면 누구나 코로나19를 말할 것이다. 1월20일 국내에서 코로나19 환자가 처음으로 발생했다. 이후 2월 대구 신천지, 5월 이태원 클럽, 8월 사랑제일교회 집단감염 사태로 이어지면서 2020년은 “누군가의 숨이 위협이 되는 시대”(윤고은, <도서관 런웨이>)가 됐다. 그럼에도 4월15일에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결과는 여당의 압승이었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과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은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한편 영화계에서는 <기생충>의 아카데미영화제 4관왕 수상(작품·감독·각본·국제영화상)과 <사냥의 시간>의 넷플릭스행이 주요 이슈였다.

남산의 부장들

1인당 극장 관람 횟수 1.15회

코로나19는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취재에 응한 영상 콘텐츠 산업 종사자들이 흥행이나 톱10이라는 말을 꺼내기 주저할 정도로 2020년 한국 영화 시장은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었다. 2019년이 이례적으로 양적 성장을 이룬 해여서 충격의 낙차는 더 컸다. 2020년 한국 영화 시장 극장 매출액은 전년 대비 73.3% 감소한 5104억원이었다. 한국 영화산업의 성장기라 일컬어지는 2000년대 초반 수치에 근접한 결과다. 총관객수는 전년 대비 73.7% 감소한 5952만명이었다. 2010년대 들어 꾸준히 4회 이상을 유지했던 인구 1인당 극장 관람 횟수는 1.15회로 줄었다. 경영 악화에 따른 주요 멀티플렉스 3사의 영화 관람료 인상 발표도 있었다(10월26일 CGV, 11월23일 메가박스, 12월2일 롯데시네마). 영화진흥위원회는 침체한 극장가 활성화를 위해 6월과 8월에 영화 할인권 배포 이벤트를 시행하기도 했다. 신작 영화가 줄줄이 개봉 연기를 결정하면서 극장은 재개봉작과 기획전 중심으로 운영됐다. <라라랜드>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같은 인기작이 호출되어 부족한 개봉작 수를 메웠다.

외화가 사라졌다

2020 박스오피스 톱10에서는 외화가 사라지다시피 했다. 할리우드 프랜차이즈 영화 역시 제작 및 개봉이 무기한 연기되면서 국내 공급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1위작(<남산의 부장들>)의 관객수가 475만명이라는 점, 비교적 피해를 덜 입은 12~1월 사이에 개봉한 영화 4편(<남산의 부장들> <히트맨> <백두산> <닥터 두리틀>)과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할 만큼 성적이 부진했던 영화 2편(<테넷> <강철비2: 정상회담>)이 톱10에 이름을 올렸다는 점에서 코로나19 여파가 얼마나 컸는지 가늠할 수 있다. <히트맨>(1월22일)의 배급을 담당한 김현철 롯데컬처웍스 배급팀장은 “당시 <남산의 부장들>이랑 같이 개봉해 2위 전략을 세웠다. 개봉 2주차에 코로나19가 본격화되면서 3주차부터 반토막 났다”라며 예상 밖의 상황에 아쉬움을 표했다. <히트맨>의 마케팅을 담당한 박주석 영화인 실장 역시 같은 마음을 토로했다. “설 연휴(1월24~26일)에 볼 수 있는 유일한 코미디영화라는 점에 방점을 찍고 마케팅을 이어가고자 했다. 그런데 설 이후 코로나19가 심각해지면서 한계가 일찍 왔다. 241만명이라는 스코어가 나쁘지는 않으나 더 갈 수 있었다고 본다.”

흥행을 논할 수 없다

전망이 불투명한 시기에도 4편의 한국영화가 극장행을 결정했다. <#살아있다> <반도>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이하 <다만 악>), <강철비2: 정상회담>(이하 <강철비2>)이다. 6월24일 개봉한 <#살아있다>는 좀비영화 마니아층을 믿고 용기를 냈다. 그 결과 개봉 이후 일주일 만에 119만명을 모았다. 6월4일부터 시작한 영화진흥위원회 입장권 할인권 배포 기간이 연장되면서 낙수효과를 받았다. 이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을 만큼 잘된 건 현실적으로 공감할 만한 지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세형 롯데컬처웍스 콘텐츠전략 팀장은 “코로나에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과 좀비로부터 살아남아야 하는 영화적 코드가 잘 맞아떨어졌다. 생존이라는 보편적 키워드가 잘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라는 의견을 냈다. “극장은 물론이고 경쟁사한테도 2020년 여름 시장의 물꼬를 터 달라고 요청받은”(류상헌 NEW 유통전략팀 팀장, 임성록 NEW 그룹홍보실 과장) <반도>가 책임감을 갖고 7월15일에 개봉했다. 디스토피아에서의 사투를 담은 좀비물로서 내세울 만한 비주얼을 갖춘 <반도>는 <부산행>의 후속 프로젝트에 대한 호기심, 여름 영화에 대한 갈망이 381만명을 모아 3위를 차지했다. <다만 악>은 신중한 검토 끝에 8월5일 여름방학 시즌을 개봉일로 잡았다.

홍경표 촬영감독의 카메라로 담아낸 배우 황정민이정재의 전무후무한 액션 연기를 극장에서 보여주는 일을 포기할 수 없었다. 마케팅을 담당한 이채현, 이나리 호호호비치 공동대표도“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액션”에 중점을 두고 전략을 짰다. 액션영화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내는 전략이 통한 덕분에 436만명의 호응을 얻어 2위에 올랐다. 할인권 배포 기간과 맞물린 점과 코로나가 잠시나마 주춤한 점 역시 흥행에 보탬이 됐다. <강철비2>는 잠수함이라는 비밀 병기를 믿고 7월 극장가로 나섰다. 마케팅을 담당한 박혜경 앤드크레딧 대표도 완성도 높은 잠수함을 마케팅 포인트로 잡았다. 그러나 잠수함에 대한 관객의 호응은 없었다. “동북아 질서 재편에 관한 영화의 메시지를 가볍게 어필하고자 했으나 심각한 얘기를 하는 영화는 안 보려는 분위기가 이미 있었다.”(박혜경 앤드크레딧 대표) 결국 <강철비2>는 손익분기점에 한참 못 미치는 179만명을 모았음에도 한껏 위축된 시장에서 박스오피스 흥행 8위에 이름을 올렸다. <테넷> 역시 같은 경험을 했다. 이제껏 극장 관람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인만큼 극장 개봉을 선택했으나 부진했다. 199만명을 모아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으나 특수한 박스오피스 상황 탓에 흥행 5위에 이름을 올렸다.

힐링영화가 선택받았다

추석 연휴 하루 전날인 9월29일에 개봉한 <담보>가 172만명을 모아 9위를 기록했다. 코믹 휴먼드라마 장르로서 가족 단위 관객의 호응을 얻으며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배급을 담방한 조현경 CJ ENM 배급파트장은 <담보>가 100만명을 넘어서 흥행할 수 있었던 포인트로 ‘눈물’을 짚었다. “<담보> 직전에 개봉한 영화가 다 셌다. 그렇다 보니 이렇게 가족과 편히 앉아 눈물도 흘리면서 볼 수 있는 영화에 대한 관객의 만족감이 컸다고 본다. <담보>의 메인 타깃이 중장년층이었는데, 그들의 만족도도 높았던 걸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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