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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그럼에도 '드림'을 긍정하는 이유

<드림>이 받은 혹평 중에는 이병헌 감독의 장기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극한직업>(2018), <바람 바람 바람>(2017) 등 전작에서 선보인 시원한 유머가 부족하다는 말이다. 확실히 웃음 측면에서 <드림>은 전작들과 결이 다른데,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이병헌표 웃음’이 줄었다는 것이다.

집의 부재가 가져온 변화

이병헌표 웃음은 뭘까. 그의 인물들은 뻔뻔한 소리를 또박또박 쉴 새 없이 떠들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주로 불리할 때) 어이없는 애교를 부리기도 하고, 때때로 고함에 상욕까지 시원하게 쏟아낸다. 그들은 속물스럽지만 귀엽다. 그러나 이병헌 코미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조적인 유머’다. 그들은 자신의 한심하고 절망스러운 상황에 대해 물색없이 떠든다. 상황의 엿같음을 폭로하면서도 별일 아니라는 듯 능청을 떤다. <드림>에서 소민(아이유)이 “페이가 열정을 못 따라와서 열정을 페이에 맞췄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스스로를 놀리는 과정에서 웃음이 터져나온다. 이때 웃음은 상처와 꼭 닿아 있다.

<극한직업>의 형사들은 범인은 못 잡았는데 치킨은 잘 팔리는 아이러니에서 웃음을 만들어낸다. 시뻘건 상처를 시원하게 드러내서 선선한 바람을 쐬는 것. 잠시 따가움을 견디고 딱지가 앉도록 기다리는 것이 이병헌표 웃음의 작동 방식이다. 유머는 일상의 불행을 비료 삼아 만개한다. <극한직업>에서는 마약단속반의 무능력함과 궁핍함이, <스물>(2014)에서는 실수를 남발하는 서투른 사랑이 유머의 재료가 됐다. 그리고 홈리스 월드컵을 다룬 <드림>의 메인 테마는 ‘집의 부재’다. 여기서 잠시 이병헌 영화에서 ‘집’의 의미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2019)에서 은정(전여빈)이 친구들에게 안겼던 곳. <드림>에서 홍대(박서준)가 다음 행선지를 결정한 곳. 이곳들이 이병헌의 집이다. 단순히 가족(family)이나 주택(house)이 아니고 가정(home)이라 하기엔 어딘가 부족하다. 지친 마음이 쉬어가는 곳. 나의 사람으로 채워진 나의 공간.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의 작품에서 온전한 집을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엄마는 아들에게 충분한 애정을 줄 여력이 없고(<스물>의 동우(이준호)) 아이의 친부는 떠나버리고(<멜로가 체질>의 한주(한지은)) 남편은 아내 눈치를 살피느라 전전긍긍이다(<극한직업>의 고 반장(류승룡)). 이들의 집은 어딘가 결함이 있거나, 존재감이 없다. 그런 이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그 안에서 서로를 보듬는 것이 이병헌 영화의 줄기를 이뤄왔다. 무너진 집에서 걸어나와 새로운 집을 꾸려가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는 해왔다.

그런 이병헌의 세계에 처음으로 ‘홈리스’가 등장했다. 이들은 그간 보아왔던 주인공들과 좀 다르다. 조금씩 무너지고 금이 갔지만 그래도 존재했던 집은 이제 완전히 허물어져 공터만 남았다. “우리 집은 이상하다”는 불평도 못하는 상황. 이병헌이 홈리스를 주제로 각본을 쓰게 된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관련 실화도 있고, 우연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쩐지 그가 늘 작품 안에 녹여왔던 ‘온전한 집의 부재’라는 테마를 끝까지 밀고 나가 마침내 이곳에 다다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가 이런 생각과 의도로 소재를 골랐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병헌의 영화적 세계를 생각할 때, 집이 불완전한 것을 넘어 완전히 사라진 이들에 대한 이야기에 끌리게 된 것은 필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벼운 웃음의 자리를 메운 것

홈리스의 등장은 영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병헌표 웃음은 작동을 멈추기 시작한다. <드림>은 홍대와 소민을 제외한 홈리스 선수들의 비중이 높다. 하지만 이들이 만들어내는 웃음이 너무 적다. 간혹 웃기더라도, 삶에 진득하게 붙어 있는 대신 가볍게 스쳐가는 내용(예를 들어 감수성이 풍부한 조직폭력배)이다. 반면 다른 인물들은 여전히 이병헌표 유머를 던진다. 능력만큼 벌지 못하는 소민, 엄마의 합의금을 벌어야 하지만 욱하는 성격을 못 참는 홍대, 도망 중에도 연애를 하는 홍대 엄마(백지원)의 상황은 웃음으로 연결된다. 그나마 홈리스 선수 가운데 유효한 유머를 터뜨리는 것은 귀가 아픈 범수(정승길)다. 거리 생활로 귀를 제때 치료하지 못한 아픔은 유머로 모습을 바꾼다. 그러나 그가 동료들 가운데 사실상 유일하게, 연인이 기다리는 자신만의 단단한 집을 찾은 인물이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그러니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병헌표 웃음은 사실 집의 ‘결함’이 아니라, 집의 ‘존재’에서 나오는 게 아니었을까.

불완전하지만 그래도 버티고 선 집 때문에 이들이 웃고 까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고. 이병헌은 집에 간 금을 두고 소란스럽게 놀려대지만 모두 흔적 없이 사라진 공터를 보고서는 웃지 못한다. <드림>에서 이병헌표 웃음은 왜 줄어들었나. 단순히 홈리스라는 약자를 소재로 해 조심스러워 그렇다는 설명은 투박하다. 전작에도 약자들은 많이 등장했으니까. 중요한 건 그들이 사회적 약자라는 점이 아니라 집이 없다는 점이다. 이병헌에게 집은 이야기의 시작이면서, 웃음이 작동하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인 것 같다. 터전이 없고, 딸과 이별하고, 가족에게 내쳐진 사연 앞에서 이병헌표 웃음은 작동하지 않는다. 아니, 작동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이병헌은 <드림>에서 자신의 장기를 발휘하지 않은 게 아니라 차마 그럴 수 없었던 것이라고 짐직한다.

이병헌 감독의 흥미로운 선택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드림>이 이병헌의 필모그래피에서 의미 있는 도전이자 도약이라고 생각한다. 집의 결핍을 다루던 연출자에게 집의 상실은 언제고 만나야 할 주제가 아닐까. 그것과 마주했다는 점에서 이병헌은 자신의 세계를 넓히며 나아가고 있다. 나는 그가 <드림>을 통해 자신의 영화적 세계에서 가장 무겁고도 진지한 화제와 대면했다고 느낀다.

다만 그가 이것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데 성공한 것 같지는 않다. 소재에 눌려 <드림>은 종종 경직돼 보인다. 홈리스를 앞에 두고 관객을 웃겨야 할지 울려야 할지 영화가 고민하는 듯하는 순간이 보인다. 마지막에는 신파와 감동 코드로 달려간다. 자주 깔리는 웅장한 음악, 마치 이렇게 보라고 주문하는 듯한 축구 해설자의 멘트(“한국팀은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드림>의 후반부는 담백한 개그를 구사하는 이병헌의 영화가 맞나 싶을 정도로 느끼하다.

하지만 나는 다시 <드림>을 긍정한다. 이 영화에 대한 나의 인상은 영화 속 한국팀의 경기와 비슷하다. 최고는 아니지만 그래도 좋다. 섣불리 말하기 어렵지만 <드림>으로 이병헌은 여태 들어본 적 없는 혹평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극한직업>이 거둔 성과가 크니까. 하지만 적어도 내게, 이번에도 영리한 개그로 관객을 웃기는 매끈한 작품을 들고 나타날 것이라 짐작했던 내게, 어려운 길을 택하고 사정없이 깨지는 이병헌은 처음으로 흥미로운 연출자로 다가온다. 그의 영화에 또 어떤 이들이 초대될지, 그들이 자신의 불완전한 집을 어떤 방식으로 끌어안을지 궁금하다. 이병헌의 다음 영화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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