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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클로즈’, 상실이 자아내는 큰 구멍

10대 소년들이 맞닥뜨리는 세계의 균열을 극도로 섬세하게 그려내면서도, 끝내 여린 소년의 죄의식을 전면에 내세우고 마는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루카스 돈트의 <클로즈>를 반복해 보며 체념하듯 되뇌었다. 영화를 거듭해 보아도 매 장면에 대한 감응은 다르게 반향하지 않았고, 이 가련하고도 가혹한 영화를 끌어안고픈 마음과 마냥 그럴 수만은 없는 양가적인 감정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마음에 걸려 결코 넘어갈 수 없는 장면은 감상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인데, <클로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지녔다. 그 생명력의 근원을 날카롭고도 사려 깊은 시선과, 개인의 얼굴에 무섭도록 집중하면서도 사회상을 영민하게 반영하는 지능적인 면모에서, 단순하게는 관객과 인물을 밀착시키는 강력한 동화력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어딘가 위태로워 보인다. 소년의 세상이 흔들리기 때문만이 아니다. 영화 후반부부터 서사가 도식적으로 구조화되고, 소년이 연약한 상황에 내몰리면서 영화가 본연의 활력을 잃어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다정했던 우정과 그 이후의 시간

<클로즈>를 성장영화라고 부른다면 성장은 어느 때보다 잔혹한 언어에 가까워 보인다. 혹은 상실을 전제로 한 무력한 결과처럼 여겨진다. 영화는 레오(에덴 담브린)와 레미(구스타브 드 와엘)의 세계에 섞여들어 육체적, 정신적, 정서적으로 친밀한 두 친구의 고유한 관계를 세밀하게 포착하며 시작된다. 레오와 레미가 아지트에서 놀이 삼아 벌이는 보이지 않는 전투는 평범한 듯 흥미롭다. 그들은 오로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적군의 기척을 공유하며 전투 놀이를 벌인다. 엄밀히 말하면 그건 전투가 아니다. 적군을 피해 도망치는 일이다. 두 소년은 여느 아이들처럼 서로를 적으로 간주해 역할놀이를 하며 칼싸움을 벌이는 아이들이 아니다. 둘은 부드러운 성정과 제스처를 소유한 아이들이다. 두 친구는 상상의 소리를 서로 공유하고 함께 달리고 한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잠든다. 그렇게 몸을 포갠 채 잠든 아이들의 어깨 위론 햇살 한줌이 아름답게 비치며 그 주위론 평안한 공기가 감돈다.

그러나 안온한 시간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클로즈>에 관한 적은 정보라도 접한 이라면 더욱 그랬을 것이고, 아니더라도 소년들의 성장통이 언젠가 시작되며 이 완벽해 보이는 세계가 조금씩 부서지리라는 사실을 예감한다. 예상하지 못했던 건 그 시기가 너무 이르게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레오와 레미가 중학교에 입학한 날 둘은 한 친구에게 질문을 받는다. “너희 둘이 사귀니?” 우리는 레오와 레미가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얼마만큼 인식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이 질문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는 알고 있다. 둘은 오래된 친구로서 부드럽고 친밀한 제스처를 서로에게 취했을 뿐인데, 이 작은 사회에서조차 고착화된 젠더 규범은 그들의 제스처를 허용하지 않는다. 레오는 곤경을 피하기 위해 레미를 조금씩 밀어내고, 동시에 스스로에게는 남성성의 이미지를 덧씌운다.

<클로즈>의 탁월함은 레오와 레미의 관계가 균열되는 순간들을 지극히 물리적으로 다룸으로써 면밀하게 묘사한다는 점이다. 쉬는 시간 풀밭에서 낮잠을 잘 때 레오가 레미를 밀쳐내면서, 레오가 살갗의 마주침을 버리고 두꺼운 복장을 하고 아이스하키를 시작하면서, 한 침대에서 자던 자연스러운 습관을 버리고 다른 매트로 옮겨 자면서 레오와 레미는 조금씩 멀어진다. 아니 그건 레오가 레미를 의식적으로 밀어내는 과정이다. 레오와 한몸처럼 지낸 레미가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급기야 둘 사이엔 큰일이 일어나고 만다. 사소한 일처럼 보이지만 파국에 이르는 사건. 둘만이 아니라 우리도 알 수 있는 감지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린 사건이다. 레오는 등굣길에 레미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등교한다. 늘 레미와 둘이서 달리던 길에는 레미가 아닌 동년배 무리가 있다. 레오는 레미에게 그저 일찍 나왔을 뿐이라고 변명하지만, 이 사소한 행위는 깊은 관계에 파열을 일으키는 선택이다. 레미는 화가 나서 레오에게 달려든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모두가 알아차리듯, 레오를 붙잡고 싶어 하는 몸짓이다. 레미는 자신을 밀어내는 레오를 붙잡으려 온 힘을 다해 덤벼든다. 하지만 둘의 마지막 육체적 부닥침 후에는 위태한 고요함만이 흐를 뿐이다. 시간이 흘러도 둘 사이는 다시 좁혀지지 않고 레미는 이내 세상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레미와 함께 <클로즈>의 활력도 점차 사라져간다. 영화의 전반부가 레오와 레미의 생동력 넘치는 물리적 활동과 사회적 압력에 의해 상처받는 예민한 감수성과 불안한 얼굴의 그늘진 구석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새겨넣은 초상화라면, 영화 후반부는 죄의식으로 질식해가는 소년의 얼굴이 담긴 판본처럼 보인다. 레미가 세상을 떠난 후 레오의 세상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레오는 자주 입을 다문다. 그에게는 친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죄책감과 크나큰 상실감이 자리하고 있다. 다른 친구들은 레미의 죽음을 애도할 수 있어도 그는 아직 그럴 준비가 되지 않았다.

<클로즈>가 향하는 곳

레오의 눈길은 종종 레미의 엄마 소피(에밀리 드켄)에게 머문다. 레미의 물건을 정리하러 소피가 학교에 들렀을 때에도 연주회장에서도 레오는 소피를 바라본다. 그런데 레오가 소피를 바라보는 시선이 묘하다. 연주회장에서 레오가 소피를 바라볼 때 레오는 소피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카메라를 바라보는 것처럼 보인다. 다음 숏에 소피의 모습이 보이기에 레오가 소피를 본 것이라고 읽어야 마땅하겠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레오의 시선이 노골적이다. 이런 시선은 이후 레오네 식구들과 소피 부부가 갖는 식사 자리에서도 보인다. 소피가 슬픔을 억누르지 못해 식사 자리에서 잠시 떠날 때 레오는 역시 카메라를 쳐다보는 듯한데 뒤이은 숏은 소피의 모습이다. 레오에게 소피는 아직 슬픔을 공유할 대상이 아니다. 자신의 죄를 고해야 하는 두려운 존재이다. 영화는 레오가 카메라를 바라보게 함으로써 그의 선택에 집중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소피가 레오에게 레미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을 때마다, 그 뒤에 고행하듯 아이스하키 연습을 하는 레오의 모습을 비춘다. 그리고 결국 <클로즈>는 소년이 자신의 죄를 고하고 두려움에 휩싸여 숲속에서 벌벌 떠는 지경까지 몰고 간다. 소피는 레오를 안아주지만, 그건 용서도 구원의 몸짓도 아닌 상실이 자아내는 큰 구멍이다. 누군가는 이 장면에서 에밀리 드켄의 존재를 의식하고 다르덴 형제의 <로제타>(1999)를 떠올리면서 생각의 곁가지를 펼쳐나갔겠지만, 나는 파국의 서사를 봉합하려는 <클로즈>의 몸짓이 끝내 마음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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