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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혁상 디아스포라영화제 프로그래머, 디아스포라 당사자에 더 가까이
이유채 사진 최성열 2023-05-25

인천 사람들은 가로등에 걸려 나부끼는 디아스포라영화제 현수막을 통해 봄이 왔음을 알곤 한다. 올해도 디아스포라영화제가 5월19일부터 23일까지 인천아트플랫폼 및 애관극장 일대에서 열린다. 지난해 10주년을 치르고 올해 11회를 맞은 영화제는 앞으로 디아스포라 당사자의 직접적인 참여 독려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지워진 존재의 이름을 기록하는 일”을 계속해 나가고자 한다. 5회 때부터 합류해 영화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오고 있는 이혁상 프로그래머를 만나 10주년 이후의 영화제를 주제로 환담했다.

- 지난해 10회를 맞아 영화제를 한번 돌아보고 미래를 도모하는 시간을 개인적으로든 내부에서든 가졌을 듯하다.

= ‘디아스포라영화제를 한다’는 건 디아스포라적인 감각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새로 만드는 것임을 깨닫게 한 시간이었다. 지난해 개막작 <빠마>를 소개하는 자리에 방글라데시에서 귀화한 섹 알 마문 감독과 일본 국적의 한국 거주자인 음악감독, 한국 선주민인 프로듀서가 오른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이 그림이 한국영화, 나아가 한국의 미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바퀴를 돈 만큼 내부에서 5개년 계획을 잡았다. 디아스포라 당사자를 대상으로 한 제작 지원 사업을 구상 중이고 부평의 미얀마 커뮤니티와 고려인 마을, 이주 노동자가 많은 남동산단을 중심으로 순회 상영을 진행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 논의를 반영해 올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

= ‘소란’이라는 우리만의 전통적인 영화제작 워크숍이 있는데 올해는 성인 이주민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우수작은 영화제에서 상영하는데 곧 마감이라 아마 지금쯤 다들 바쁜 시간을 보낼 거다. 영화라 부를 수 없을 만큼 거칠지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이주민 당사자의 작품들을 단편 섹션에 넣은 것과 이주민 온라인 홍보단을 처음 꾸린 것도 변화라 할 수 있겠다.

- 지난해부터 상영 장소를 애관극장까지 확장했다. 올해는 작품 대부분이 애관극장에서 상영되는데 간이 극장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 아트플랫폼을 더는 사용할 수 없겠다는 결론이 난 건가.

= 아트플랫폼에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불편하게 영화 보는 게 디아스포라적이라 좋다는 관객 반응도 있었지만(웃음) 아무래도 시설에 대한 불만 사항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또 내가 감독이다 보니 이왕이면 극장이라는 제대로 된 관람 환경에서 영화를 틀고 싶은 마음이 컸다. 언젠가 아트플랫폼 인근에 시네마테크가 생겨 그곳에서 영화제를 열 수 있기를 바란다.

- 디아스포라 장편 섹션이 알차다는 얘기가 특히 많다.

= 내 취향이 반영된 작품을 관객도 똑같이 매력적으로 느낀다는 게 어쩐지 부끄럽지만 좋다. 장편을 다 선정하고 나니까 총 30편 중 7편(<갓랜드> <기억의 홀씨> <노스탤지어> 등)이 코리아 프리미어더라. 조그마한 영화제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다른 큰 영화제들과 달리 우리 영화제는 이주, 난민, 성소수자와 같은 명확한 주제 아래 영화를 집중적으로 추릴 수 있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

- 개막작 <어웨이>에서부터 드러나듯 올해 영화제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종의 도화선이었고 큰 테마는 전쟁의 비극을 가져가려고 했다. 국민의 안전과 평화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세계 각국의 대표자와 민주주의에 역행하고 빠르게 보수화되어가는 국제 정세에 대해서도 영화제만의 방식으로 다르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 동시대의 전쟁이 전세계 디아스포라영화 제작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

= 확실히 우크라이나 전쟁을 주제로 한 영화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전쟁을 어떻게 영화로 마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담은 작품들도 어떤 경향으로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 인기 섹션인 ‘디아스포라의 눈’에 안창림 전 유도 국가대표, 하미나 작가와 장혜영 국회의원(정의당)을 초청했다.

=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 조선인의 후손이자 북한의 지원을 받는 조선학교 출신의 안창림이란 사람을 조명하고 싶었다. 안 선수가 <나는 조선사람입니다>(2020) GV와 조선학교 관련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며 재일교포 정체성을 스스로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아 자리를 마련했다. 하미나 작가는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이란 책을 내고 하는 활동들이 인상적이라 꼭 모시고자 했다. 장혜영 국회의원은 회심의 카드였다. 바라던 대로 두 젊은 여성 리더가 대화하는 그림이 성사돼 무척 기쁘다.

- 부대 행사 중에는 도미노 아티스트 릴리 헤베시의 퍼포먼스가 규모 면에서 가장 눈에 띈다. 아티스트와 영화제 사이에 어떤 접점이 있나.

= 릴리 헤베시는 중국에서 태어나 곧바로 미국 중산층 가정에 입양됐다. 태생 자체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는 디아스포라의 일원이며 아시아계 미국인 정체성과 다양성의 메시지를 도미노 아트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다. 그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릴리의 도미노 시계>를 야외 상영작으로 준비했고 그와 함께 도미노를 만드는 워크숍도 마련했으니 마음껏 누려주시길 바란다.

- 마지막으로 이번 영화제의 추천작을 꼽는다면.

= 레바논 출신 자매인 미셸 케세르와니, 노엘 케세르와니의 <애벌레>. 유럽의 아프리카 착취 역사와 현재 레바논 이주 여성 노동자의 실상을 연결해 흥미롭다. 2023년 베를린국제영화제 단편부문 황금곰상 수상작이다. 흐 감독의 <지금은 멀리 있지만>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에서 이주 노동자로 살며 고국인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쿠데타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감독의 복잡다단한 마음이 깊이 서린 일종의 다큐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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