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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연의 이과 감성] 블록버스터영화에 과학적 자문이 왜 필요한가요?, <트위스터스>가 토네이도를 길들이는 이유
임수연 2024-08-29

<트위스터스>

이른바 ‘킬링 타임’을 위한 블록버스터영화에서 과학 논리는 어느 정도 엄밀해야 할까. <트랜스포머>는 여러모로 견디기 힘든 영화였지만 가장 보기 괴로웠던 장면은 극 중 분석가가 외계 로봇의 흔적을 두고 “이 신호 패턴은 스스로 학습하면서 자체 진화하고 있으므로 푸리에 변환을 넘어 양자역학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는 대목이었다. 원래 양자역학에서 쓰는 게 푸리에 변환인데 무슨 소리지? 왜 같은 말을 두번씩 하면서 있어 보이는 척을 하지? (끝까지 보고 나니 심지어 영화가 엉망진창인데?!?!) 즉, 아무 말이나 한 거다. 이런 대사를 마주하면 영화를 호의적으로 보려고 애쓰다가도 갑자기 튕겨져 나오게 된다.

토네이도 재난을 다룬 <트위스터스>는 <트위스터>(1996)의 28년 만의 후속작이다. 얀 더본트 감독이 <스피드>의 대성공 이후 연출한 <트위스터>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토네이도를 쫓는 스톰 체이서들의 삶의 태도를 삼각관계 로맨스와 결부시킨 재난영화였다.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 시리즈를 위해 설립했던 특수효과 스튜디오 ILM이 당시 할리우드 최고 수준의 기술력으로 토네이도를 구현했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실제 기상학자의 주가가 올라갔고 수년 뒤 <디스커버리 채널>에서는 토네이도를 쫓는 사람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시리즈 <스톰 체이서>를 방영했다. 과학적 호기심을 넘어 이를 엔터테인먼트 소재로 이용하는 스트리머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트위스터스>의 타일러(글렌 파월) 캐릭터에 반영됐다). 전편의 발상을 계승한 <트위스터스>는 일견 ILM의 시각효과 기술 발달을 과시하는 프로젝트처럼 보인다. 실제로 <트위스터스>는 실제 사건과 관측을 기반으로 10개의 독특한 토네이도와 날씨 환경을 디자인해 토네이도의 복잡성을 스크린에 옮겨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인간 활동으로 인한 전 지구적 기후변화가 예측 불가능한 자연재해로 이어지는 시대에 재난영화는 다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트위스터스>를 이루는 지구과학은 이른바 블록버스터의 규모를 과시하는 ‘있어 보이는’ 치장이 아니다. 인류세 재난과 공존하는 생태학적 태도를 제시하며 그 논리를 지지한다.

<트위스터스>는 연구 보조금을 받기 위해 토네이도로 직접 질주하는 기상학도 케이트(데이지 에드거존스)와 그의 친구들의 사연으로 문을 연다. 토네이도의 내부 구조 풍속과 흐름 등을 분석할 수 있는 감지기, ‘도로시’를 직접 토네이도 안에 밀어넣는다는 아이디어는 그대로다. 그렇게 토네이도의 원리를 알게 되면 보다 발달한 경보 시스템을 발동시킬 수 있어 인명·재산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그리고 토네이도의 중심부에 폴리아크릴산나트륨 배럴을 방출해 토네이도를 잠재우고 ‘길들이는’ 것이 최종 목표다(이는 <트위스터>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설정이다). 하지만 전편에서 주인공의 아버지가 목숨을 잃은 것처럼 케이트의 실험은 실패로 돌아가고 폭풍 속에서 친구들과 연인을 잃는다. 5년 뒤, 케이트는 뉴욕 기상청 직원이 되어 그의 꿈을 이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자신의 과오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의 앞에 옛 친구이자 데이터 분석가였던 하비(앤서니 라모스)가 나타난다. ‘스톰 파’라는 회사를 설립한 그는 토네이도 분석 시스템을 완성하는 야심 찬 프로젝트에 케이트를 끌어들이고자 한다. 고민 끝에 케이트는 하비 무리와 합류해 그의 고향이자 토네이도의 본고장인 오클라호마로 향한다.

<트위스터스>의 주 배경인 오클라호마는 남동부 대서양 멕시코만에서 불어오는 덥고 습한 공기와 서쪽 로키산맥에서 불어오는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만나는 지역이다. 상층부의 찬 공기와 하층부의 더운 공기, 극과 극의 기단이 만나 대기가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면 충분히 많은 수중기가 강력한 상승기류에 의해 솟아오르면서 수직 모양으로 적란운이 형성된다. 그렇게 대류권 계면에 이르기까지 형성된 적란운은 대체로 천둥이나 번개, 우박, 국지성호우를 유발된다. 그리고 적란운 하부 및 지표면까지 내려오는 깔때기 모양으로 회오리바람이 만들어질 때 토네이도가 생성한다. 토네이도의 원인은 아직 구체적으로 규명되지 않았지만 대체로 적란운에서 발생하며 온대지방이나 넓은 평지, 바다에서 관측할 수 있다. 전세계 토네이도의 70%가 미국에서 발생하며 산과 언덕이 많은 한국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이유다. 중심 풍속이 100~200m/s에 이르기 때문에 특히 규모가 클 때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영화의 제목인 ‘트위스터’와 울릉도 앞에서 종종 관측되는 ‘용오름’ 역시 같은 개념이다.

하비가 토네이도의 이동 양상을 분석하고 케이트가 폴리아크릴산나트륨을 이용해 토네이도를 잠재우겠다는 발상은 얼마나 현실 가능성이 있을까. 먼저 토네이도 내부에 감지기를 올려 보내 데이터를 얻는다는 발상도 영화에서만큼 작고 가벼운 센서를 만드는 일이 현재로선 불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하비의 날씨 패턴 분석 시스템은 국립해양대기국(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 NSSL(National Severe Storms Laboratory)의 위상 배열 레이더(PAR)에서 사용한 실제 기술에 느슨하게 기반을 두고 상상력을 발휘해 발전시켰다. 폴리아크릴산나트륨은 기저귀 등에 이용되는 고흡수성 수지(자기 무게보다 수십배에서 수백배까지 물을 흡수하는 수지)로 뇌우의 수분을 빨아들이고 냉각시켜 하강기류를 강제하고 결국 토네이도의 힘을 약하게 할 수 있다는 논리다. <트위스터>와 <트위스터스>에 모두 과학적 자문으로 참여한 케빈 켈러허 NSSL 연구원에 따르면 “원격으로 토네이도를 잠재울 만한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2만2천t의 물질이 필요하다”(<USA 투데이>)고 한다. 즉, 화학적으로는 가능한 발상이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크기의 트럭으로는 불가능하다. NSSL의 션 워 박사는 “실제 토네이도처럼 강력한 환경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최대 30t의 물질이 필요하며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설사 가능하더라도 화학물질들이 흡수되고 비가 응고되는 데 15분에서 20분이 걸릴 것”(<뉴욕타임스>)이라고 설명했다.

<트위스터스>는 과학적 시뮬레이션에 따라 토네이도의 구조를 계산해 현실적으로 구현하고 실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연구원들의 기술에 영화적 헌사를 바치며 고흡수성 수지가 상승기류를 억제할 수 있다는, 기본원리는 납득 가능한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무엇보다 <트위스터스>는 기후변화 이후 빈도가 늘어나고 여전히 예측 불가능한 토네이도 재해를 이해시키고 재난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논하기 위해 지구과학 지식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똑똑하게 윤리적인 영화다. 케이트가 해낸 것처럼 토네이도 하나를 잠재워도 근본적인 원인은 사라지지 않고 언젠가 또 재난은 찾아온다. <트위스터스>는 ‘트위스터’라는 자연의 섭리이자 과학의 산물을 정복의 대상이 아닌 생태공동체로 끌어안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오락 블록버스터영화가 ‘과학 자문’을 내세우며 자신을 포장하는 명분은, 이런 방식으로 성립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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