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로 출장 온 미국인 카일(장 클로드 반담)은 아내와 간만의 휴가를 약속한다. 그러나 그날 아내는 괴한에게 살해당하고, 체포된 범인은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는다. 이에 분노한 카일은 법정에서 범인을 총으로 살해하고 이로 인해 악명 높은 ‘크라바비’ 교도소에 수감된다. 이곳에서 비밀리에 벌어지는 내기 싸움 ‘스파르카’에 출전하게 된 카일은 점차 야수로 변해간다.

<용호풍운> <학교풍운> 등 풍운 시리즈로 이름을 알린 홍콩 감독 임영동의 대표작은 역시 87년작 <감옥풍운>이다. 감옥 안에서 벌어지는 진흙탕 싸움과 암약, 배신과 집단 따돌림을 신참 죄수 양가휘와 노련한 장돌뱅이 유덕화를 등장시켜 그려낸 영화 <감옥풍운>. 그의 신작 <헬>은 왠지 <감옥풍운>을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일단 배경이 감옥이라는 점이 그렇거니와 주인공이 감방 식구들로부터 집단구타를 당하는 장면이나 감옥 내에서 일어나는 두 폭력집단간의 패싸움신도 전작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죄수들간의 끊이지 않는 암투와 긴장, 서열 다툼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저열한 간수들의 모습에는 전작을 뛰어넘는 리얼함이 담겨 있다. 임영동 감독은, 홍콩에서 철저히 유덕화를 기용했던 것과 같이 할리우드에서는 장 클로드 반담이라는 페르소나를 발굴해내 사회의 폭압에 저항하는 캐릭터를 훌륭히 완성한다.

무엇보다 <헬>이 단순한 교도소 액션에 그치지 않는 것은, 맨주먹과 발차기 그리고 개인의 고뇌를 조명하는 내레이션에 있다. 그의 영화에선 주인공이 더이상 무적 캐릭터가 아니고(장 클로드 반담이라 할지라도!), 폭압에 저항하다 어느새 증오의 노예가 되어버리는 약하디 약한 존재다. 삶과 죽음 앞에서 방황하는 여린 인간미는 그의 캐릭터가 가지는 독특한 매력이다. 아내를 잃고 진범까지 놓쳐버린 주인공은, 분노에 눈이 멀어 법정에서 자신만의 즉결 처분을 행한다. 그렇게 패대기쳐진 자아 혹은 영혼은, 감옥 안에서 또 다른 폭력들과 대면하면서 더욱 본래의 모습을 잃어간다. 야수에 가까운 싸움꾼들의 모습 속에 자신을 투영시키던 주인공이 정신을 차리는 순간은, 아내의 영혼이 찾아올 때다.

동서양의 독특한 조화를 이룬 영화 <헬>은 반담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 더욱 흥미롭다. 매끈한 발차기 대신 온몸을 던지는 액션과 인간미 어린 고뇌를 담은 주인공의 모습은, 진정한 무(武)와 힘(力)의 의미를 얘기하는 감독의 모습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