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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소녀와 액션이 만들어내는 아이러니한 조합 <블러드>
안현진(LA 통신원) 2009-06-10

synopsis 베트남전이 한창인 1970년. 일본의 미 공군기지 내 고등학교에 일본 소녀 사야(전지현)가 전학을 온다. 사야는 인간과 뱀파이어의 혼혈종으로 피를 마시지만 뱀파이어를 죽이는 사냥꾼이다. ‘협회’라는 기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사야에게는 뱀파이어족의 수장 오니겐(고유키)을 찾아 원수를 갚으려는 목적이 있다. 이번 작전은 기지 내 뱀파이어족을 숙청해 오니겐을 유인하는 것. 하지만 사야와 같은 반인 앨리스(앨리슨 밀러)가 우연히 친구들을 죽이는 사야를 목격한다.

<블러드>는 <공각기동대> <인랑>을 만든 오시이 마모루가 쓴 장편소설 <야수들의 밤>(국내 출간 제목은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다)에 바탕을 둔다. 하지만 영화는 소설에서 ‘교복을 입은 소녀가 일본도를 휘두르면 그 주변엔 시체들이 쌓여가고, 소녀가 떠난 뒤 두 남자가 시체를 처리한다’는 설정만 가져왔을 뿐이다. 전쟁과 살인을 논하고 살인자와 시체회수자의 이야기가 맞물려 아름답고 또 섬뜩한 공포를 자아낸 소설과 영화는 그 차원이 많이 다르다. 복수를 위해 시간을 멈춰버린 사야를 중심에 놓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점 때문에 플롯은 종종 길을 헤매고, CG로 일관하는 배경 위로 핏방울만 사정없이 튄다. 굳이 이 영화의 장르를 정리한다면 ‘초국적그래픽액션고어’쯤 되겠다.

영화의 80%는 헐렁하고 긴 치마 교복을 입은 사야가 칼을 휘두르는 그림이다. 베고 찌르고, 뒤돌아서 베고 또 벤다. 이런 장면들이 대부분이니 보다 보면 잔인한 순간도 아무런 감정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피는 흐르기보다는 방울져 튀는데 3D 컴퓨터 게임에서 적을 해치울 때의 그래픽 표현과 비슷하다. 인간의 형상 안에 숨어 있던 뱀파이어가 본래의 모습을 드러낼 때의 느낌도 비슷하다. 전반적으로 실사와 그래픽 사이의 연결이 느슨해서 영화를 보는 건지 게임 화면을 보는 건지 모호할 때가 많다. 전지현이 무술을 익힌 전문 액션배우가 아니라는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액션장면의 허술한 틈을 메우려 연출한 슬로모션과 클로즈업은 과하다. 오죽하면 사야의 과거 회상신에서 보여주는 홍콩식 무술장면이 가장 인상적일까. “오시이 마모루 원작의 영화화”라는 수식을 믿지 말 것. 교복 소녀와 액션이 만들어내는 아이러니한 조합에 열광한다면 만족할 수도 있겠다.

덧붙여, 해외 자본으로 만들어지는 프로젝트에 원톱 캐스팅된 전지현에 대한 글로벌 스타로서의 판단은, 그의 차기작이 나올 때까지 잠시 미루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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