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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황혼기에 찾아온 새로운 기회 <크레이지 하트>
이주현 2010-03-03

synopsis 57살의 배드 블레이크(제프 브리지스)는 왕년에 잘나가던 컨트리 가수였다. 지금은 미국 남서부 작은 마을을 전전하며 볼링장이나 주점에서 노래를 부른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기자 진 크래독(매기 질렌홀)이 배드 블레이크에게 인터뷰를 요청한다. 둘은 인터뷰를 통해 가까워진다. 챙겨주는 사람 하나 없던 배드 블레이크는 진 크래독과의 만남을 진지하게 이어가려 하지만 엉망진창이었던 그간의 생활을 쉽게 떨쳐내지 못한다. 음악을 통해 재기할 꿈도 꾸지만 그것 역시 쉽지 않다.

한 남자가 있다. 이름도 못됐다. 배드 블레이크(Bad Blake). 나쁜 남자 배드 블레이크는 오래돼 색까지 바랜 자동차를 몰고 사방이 논밭인 미국 남부 시골길을 달린다. 전국 투어라고 이름 붙이면 좋겠지만 그럴 리는 없다. 매니저가 잡아둔 공연 약속은 볼링장 콘서트이거나 선술집 콘서트일 뿐이다. 물론 객석에선 왕년의 히트곡을 기억하는 팬들이 그에게 환호를 보내지만(심지어 추파도 던진다) 배드 블레이크는 이따위 공연을 잡아주면 어떡하느냐며 매니저에게 도리어 화를 낸다. 게다가 그는 술독에 빠져 산다. 그리고 갱생의 기회가 찾아온다. 배드는 초보기자 진 크래독과 사랑에 빠지면서 자신을 추스르려 마음먹는다.

<크레이지 하트>는 인생의 밑바닥까지 추락했다가 재기하는 늙은 남자의 이야기다. 사실 우리는 삶의 황혼기에 새로운 기회를 다잡는 늙은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수없이 스크린으로 보아왔다. 가장 가까운 예로는 지난해 개봉한 미키 루크의 재기작 <더 레슬러>가 있다. 이런 ‘갱생 영화’들은 지나치게 관습적인 이야기 구조라는 약점을 태생적으로 안고 있다. 토머스 콥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크레이지 하트> 역시 이야기와 갈등은 익숙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두 거장, 제프 브리지스와 음악가 T-본 버넷(<워크 더 라인> <앙코르>)이 있다. 브리지스는 텁수룩하게 얼굴의 반을 덮고 있는 수염, 늘 풀려 있는 벨트의 버클, 조금만 무리해도 쌕쌕거리는 숨소리를 통해 배드 블레이크라는 캐릭터에 피와 살을 담는다. 그리고 그의 연기는 T-본 버넷이 만들어낸 서정적인 컨트리 음악과 근사한 협연을 이룬다.

조연배우들의 연기도 브리지스 못지않다. 남편과 이혼하고 네살배기 아들과 살아가는 초보기자를 연기한 매기 질렌홀은 그녀 특유의 내성적인 감성을 연기에 담아내고, 컨트리 슈퍼스타 토미를 연기한 콜린 파렐은 당대의 연기파 젊은 배우답게 능글능글하다. 배우들의 열연 덕에 제작비 700만달러에 불과한 저예산 독립영화 <크레이지 하트>는 올해 오스카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주제가상 등 3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있다. 브리지스가 오스카를 받지 못하더라도 낙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전설적인 우리 시대 배우의 전당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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