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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 다카코] 풋풋했던 여대생에서 창백한 복수의 여신까지
강병진 2011-03-31

<고백>의 마쓰 다카코

기억 속의 마쓰 다카코는 언제나 대학 신입생이다. 한국 관객에게 그녀를 알린 <4월 이야기>에서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생머리의 소녀는 발목까지 닿는 긴 치마를 펄럭이며 하얀색 자전거를 타고 캠퍼스를 누볐다. 그래서 <4월 이야기>는 처음으로 집을 떠난 여성의 호기심과 설렘을 포착한 작품인 동시에 복학생 남자 선배들의 판타지에 가까운 영화였다. <4월 이야기> 이후 마쓰 다카코 대신, 아오이 유우나 미야자키 아오이 등 일본의 또 다른 여배우들을 마음에 담았던 관객이라면, <고백>의 그녀가 낯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딸을 죽인 살인범들을 응징하려는 어느 여교사의 복수극을 그리는 이 영화에서 그녀의 눈가는 다크서클로 뒤덮여 있다. 장장 30분에 이르는 오프닝 동안 마쓰 다카코는 생기없는 표정과 감정이 사라진 말투로 자신의 슬픔과 분노를 털어놓는다. <고백>은 이야기가 다루는 소재뿐만 아니라, 어떤 배우가 젊은 시절 선사했던 추억을 지워버린다는 점에서도 잔인한 영화다. 그녀가 미친 듯이 웃는 장면에 이르면, 기억 속의 여대생은 사라져버린다.

<고백>의 나카시마 데쓰야 감독은 극중의 모리구치 유코가 “마쓰 다카코로서는 CF 섭외가 급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는 캐릭터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고백>이 아니었다면, 마쓰 다카코는 여전한 미모를 자랑하는 여배우로서 아름답게 나이를 먹어갔을 것이다. <고백> 이전의 그녀는 주어진 재능과 운에 따라 다양한 길을 걸어온 성실한 연예인에 가까워 보였다. 가부키계의 명문 집안에서 태어난 마쓰 다카코는 어린 시절 “좋아하는 책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읽겠다”는 꿈을 꾸면서 자라다 입시경쟁에 들어섰을 때에야 하고 싶은 게 뭘까 고민하다 ‘연극’을 떠올린 마냥 해맑은 소녀였다. 16살에 처음 무대에 오른 뒤, 이듬해 바로 TV드라마로 진출해 <꽃의 난> <롱 베케이션> <러브 제너레이션> 등에 출연했고, 같은 시기에 가수로 데뷔해 지금까지 12장의 정규앨범을 발표했으며 연극무대에도 꾸준히 오르고 있는 경력을 보아도 그렇다. 다양한 활동에 대한 그녀의 회고 또한 재능과 운이 따라주지 않는 사람으로서는 한숨이 절로 날 법하다. “가부키를 많이 보고 자랐기 때문에 아무래도 연극에 항상 관심이 있었다. 음악은 처음 가수를 제안받았을 때,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니까 일단 해보자는 맘으로 시작한 거였다. 음악적인 목표? 별로 없다. 사람들이 오래 듣고, 내가 오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유코는 지금도 수수께끼 같다”

나카시마 데쓰야 감독은 오히려 성공에 구애받지 않는 그녀의 다양한 활동영역에서 모리구치 유코를 소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봤다. “연극무대에서나 노래를 할 때도 그렇고 심지어 빵 CF를 봐도 그녀는 여러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감독이 직접 쓴 편지로 출연 제안을 받은 마쓰 다카코는 “원작이 재밌었고, 시나리오는 더 흥미로웠고, 나카시마 데쓰야 감독의 연출방식이 궁금해서” <고백>을 선택했다. 하지만 모리구치 유코는 그런 호기심만으로 승부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사랑했던 남자와의 어쩔 수 없는 이별과 그가 남긴 딸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 딸을 죽인 살인범을 법이 처벌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느끼는 분노의 깊이까지. 마쓰 다카코의 숙제는 복잡한 데다 끓어넘치는 그녀의 감정을 절제된 톤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어떤 감정도 표가 나지 않는 괴물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감독은 또 인간이 그렇게 쉽게 감정을 자제할 수가 없다고 하더라. 그녀가 마지막까지 지키려 하는 교사로서의 태도와 내면에 담긴 아픔이 어떤 긴장을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지금도 내게 그녀는 수수께끼 같다. 다만 너무나 외로웠을 거라고 짐작할 뿐이다.” 가장 힘들었던 장면은 역시 37명의 중학생들이 벌이는 난리의 한복판에서 연기를 해야 했던 첫 시퀀스였다. 나카시마 데쓰야 감독은 아이들 개개인과 대화하며 그들의 행동을 일일이 설정한 뒤, 마쓰 다카코에게 리허설 전에는 학생들과 절대 만나지 말 것을 주문했다. 그녀는 아이들과 처음 대면했을 때 “그들의 야유에 압도돼버렸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는데, 얘들이 정말 미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웃음) 어떻게든 연기를 해보겠다고 큰 소리로 대사를 했더니, 감독이 소리를 키우지 말라고 하더라. 내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유코의 음색을 결정하기 위해 여러 번 촬영을 했는데, 나중에는 코피가 나기도 했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참 대단해 보이더라. (웃음)”

<고백>

재능과 운, 노력이 낳은 기적

마쓰 다카코에게는 연극과 음악을 대하는 태도와 배우로서의 커리어에 대한 태도가 크게 다르지 않은 듯 보인다. 그녀는 <고백>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마음은 없었다”고 말했다. “배우라면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게 옳지만, 나는 변신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고백>의 내가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면, 그건 감독이 끌어낸 것이다. 나는 온힘을 다해 노력했을 뿐이다. 더 나은 경지에 도달하려는 야망이 없는 게 내 문제라면 문제다. (웃음)” 배우에게 욕설을 일삼는 감독으로 유명한 나카시마 데쓰야는 오히려 마쓰 다카코의 그런 노력이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연기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뭔가를 요구할 때마다 매번 새로운 연기를 보여주더라. 나중에는 내가 과연 이 배우의 100%를 뽑아낼 수 있을지 불안해졌다. 그녀는 아주 무서운 배우다.” 말하자면 <고백>은 마쓰 다카코의 재능과 운, 노력이 또 한번 일으킨 기적인 셈이다.

지난 2월18일, 일본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고백>은 작품상을 비롯해 4개 부문을 수상했다. 당시 영화제의 사회를 보고 있던 마쓰 다카코는 눈물을 흘리며 “살아 있다는 건 참 좋은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새로운 도전을 향한 야망 대신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해 응답해온 마쓰 다카코는 <고백> 이후 쏟아지는 호평 또한 지금의 삶이 준 선물로 받아들이는 듯 보인다. 삶에 대한 그녀의 태도는 최근 일본의 지진과 관련해 홈페이지에 적은 메시지에서도 드러난다. “지금은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아갈 도리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원하고, 내게 필요한 것들을 진심을 다해 판단하고 선택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내게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다음 작품은 올해 7월에 개봉할 <대록(大鹿) 마을 소동 신기>다. 사카모토 준지가 연출하고 하라다 요시오가 주연을 맡았으며 마쓰 다카코는 하라다 요시오를 떠났던 과거의 아내를 연기한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와 오빠가 지켜온 가부키를 직접 공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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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비로비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