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카 채스테인은 할리우드의 숱한 별 중에서도 드물게, 홀로 완벽한 우주를 품고 있는 여배우다. 누군가의 딸이거나(<인터스텔라>(2014)) 어머니일 때도(<트리 오브 라이프>(2011)) 그녀는 관계 속에 주어진 역할이 아니라 온전히 자립하는 여성을 연기해냈다. 확신컨대 그것은 시나리오나 연출의 힘이 아니라 제시카 채스테인을 둘러싼 공기, 두눈에 깃든 꺾이지 않는 영혼의 색 때문이다. 지난해 9월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된 <미스 줄리>의 홍보를 위해 토론토를 찾은 제시카 채스테인을 만났다. 어린 시절 학교도 빠지고 공원에서 셰익스피어를 읽었다던 제시카 채스테인이 ‘북유럽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의 고전 <미스 줄리>에 이끌린 건, 어쩌면 필연이다.
-<미스 줄리>에 출연하기 위해 본인이 먼저 연락을 했다고 들었다.
=리브 울만 감독은 내 우상 중 한명이다. 리브 울만 감독이 <미스 줄리>를 영화화한다는 소식을 듣곤 직접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내가 스트린드베리의 원작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 역할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자세히 알렸다. 사실 대부분은 리브 울만에 대한 팬레터였다. (웃음) LA에서 직접 만난 후 우리가 서로 얼마나 마음이 잘 맞는지 단번에 확인했다.
-줄리 역할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나.
=정확히는 감독과 원작, 연극적 밀도가 높은 시나리오가 좋았다. 여배우로서 작품 전체를 이끌어가는 좋은 역할을 만나긴 쉽지 않다. 대부분 누군가의 무엇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미스 줄리>는 특별하다. 줄리가 자립적인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를 이야기하는 방식이 여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에 비춰볼 때 19세기 배경의 시대극 속 주인공인 줄리의 행동은 다소 답답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
=줄리는 나와는 완전히 반대의 성격이다. 주어진 역할에서 나 자신의 흔적을 발견하려고 애쓰는 편인데 드물다고 해도 좋을 만큼 나와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였다. 나는 조용한 걸 좋아하는데 줄리는 불안과 허기를 채울 화려함이 필요한 여성이다. 워낙 달라 끝나자마자 빨리 털어버릴 수 있어 그 점은 좋았다. 매번 역할에 깊게 몰입하는 편이라 곤란할 때도 있다. 이제껏 연기한 역할 중 가장 떠나보내기 힘들었던 건 <트리 오브 라이프>였다. 그땐 빠져나오는 데 꽤 오래 걸렸다.
-리브 울만 감독과의 호흡은 어땠나.
=막상 촬영이 시작된 후에는 리브 울만 감독과 거리를 뒀다. 리브 울만의 열렬한 팬인 내가 자신을 의식해 호흡이 흐트러질까 염려한 감독의 배려였다. 콜린 파렐과도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부터 서로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다. 극중에서 서로 친밀한 감정을 나누고 소통이 이루어지면 안 되는 사이라 그 감정을 촬영 내내 유지하려고 애썼다.
-연극에 대한 애정이 깊은 걸로 안다. <미스 줄리>에 매료된 이유 중 하나인가.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의 손을 잡고 연극을 보러 갔다. 내게 첫 연극을 보여준 분도 할머니이고, 무용복을 처음 사준 분도 할머니다. 덕분에 9살짜리 소녀는 첫 주연을 맡았던 연극 무대에서 앞으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달았다. 그때부터 다른 길을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 역할이 없을 때도 꾸준히 연극 수업을 듣고 캐릭터를 연구했다. 연기와 연극은 그때부터 내 삶의 일부였다.
-<미스 줄리>를 조금 더 현대적으로 표현하고 싶진 않았나.
=전혀. 현실과 너무 가까우면 이야기 안에 있는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할 때도 있다.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고전연극은 우리 삶을 이야기하는 아름다운 거울이다. 물론 이를 위한 충분한 해석의 시간이 필요하다. 리브 울만은 내가 혼자 캐릭터를 해석하고 창조할 수 있도록 멀리서 바라봐주었다. 그녀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이해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