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칸토: 마법의 세계>는 <주토피아>를 만든 바이런 하워드와 재러드 부시 감독 듀오와 뮤지컬 <해밀턴> <인 더 하이츠>의 작곡가이며 <모아나>의 노래를 만든 린마누엘 미란다가 함께한 디즈니의 60번째 애니메이션이다. “라틴아메리카 문화의 교차로”라고 불리는 콜롬비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엔칸토: 마법의 세계>는 마법의 축복을 받은 마드리갈 일가에서 유일하게 마법을 갖지 못한 소녀 미라벨(스테퍼니 비어트리즈)이 위기에 놓인 가족을 구하기 위해 모험을 자처하는 ‘디즈니 히어로’ 이야기다. 라틴아메리카 문화의 화려한 색채와 비옥한 자연, 힙합에서부터 민속음악까지 아우르는 스펙트럼 넓은 린마누엘 미란다의 뮤지컬 넘버, 선악으로 대립하지 않는 새로운 스토리텔링 등 <엔칸토: 마법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다섯 가지 키워드를 준비했다. 9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화상으로 진행된 기자회견과 인터뷰가 바탕이 됐다.
1. 엔칸토
스페인어로 ‘엔칸토’는 마법에 걸린, 또는 마법에 걸린 공간을 의미한다. 주인공인 미라벨의 엄마와 이모, 삼촌이 아직 갓 태어난 세 쌍둥이였고 가족의 큰 어른인 알마 할머니(마리아 세실리아 보테로)가 젊었을 때, 모든 것을 잃고 촛불 하나로 시작한 삶은 엔칸토의 축복을 받아 가족을 일구고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그래서 알마 할머니를 비롯한 엔칸토의 사람들은 이웃의 일을 가족의 일처럼 도와주고, 서로 도와야 커뮤니티가 강해진다고 믿는다. 마드리갈 가족 구성원들이 마법의 축복을 받아 각기 다른 마법 능력을 갖는 것은 커뮤니티를 위해 중요한 일이며, 아이가 자라 축복을 받을 나이가 되면 가족은 물론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잔치를 벌인다. <엔칸토: 마법의 세계>는, ‘마술적 사실주의’로 유명한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고향 콜롬비아를 배경으로 한다. 지역색이 분명한 배경을 선택한 만큼 <엔칸토: 마법의 세계>는 다양한 시각적 표현과 음악을 통해 콜럼비아의 다채로운 문화를 작품에 녹였다. 시시각각 바뀌는 날씨, 비옥한 대자연, 풍부한 색채, 흥이 넘치는 음악을 만날 수 있다. 명확한 단서가 제시되지는 않으나, 남편을 잃고 홀로 삶을 꾸려야 했던 알마 할머니의 전사는 식민지 독립에서부터 공화국으로 자리 잡기까지 콜럼비아가 겪어야 했던 비극을 짐작게 한다.
2. 마드리갈 가족
따뜻함과 완고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알마 할머니는 12명으로 구성된 대가족인 마드리갈 가족의 구심점이며, 엔칸토의 터줏대감이다. 엔칸토의 축복을 받은 마드리갈 가족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자기 방을 갖게 되는데, 그 방은 방의 주인이 가진 마법의 능력을 보여준다. 미라벨의 엄마인 훌리에타(앤지 세페다)는 음식으로 상처를 치유한다. 이모 페파(카롤리나 가이탄)는 감정을 통해 날씨를 조절할 수 있는데, 감정 조절을 잘 못하는 게 문제다. 삼촌인 브루노(존 레귀자모)는 미래를 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걱정이 많은 타입이라 사람들이 브루노의 비전이 불행을 가져온다고 비난하자 종적을 감춘다. 미라벨의 큰언니 이사벨라(다이앤 게레로)는 가족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완벽한 딸로, 가는 곳마다 꽃을 피우는 능력을 가졌다. 완벽한 외모와 능력 덕분에 알마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둘째 언니 루이사(제시카 대로우)는 돌다리도 들어 옮기는 힘을 가졌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모두가 루이사를 찾는, 다른 의미에서 마을 최고의 인기스타. 사촌인 돌로레스(아다사)는 아주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다. 누군가 말로 꺼냈다면 돌로레스가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 돌로레스의 동생 카밀로(렌지 펠리즈)는 형상변조자이며, 막내 안토니오는 동물과 교감할 수 있다. 알마 할머니의 자식들부터 축복이 시작됐으니 가족 중에 유일하게 축복받지 못한 존재는 미라벨인 셈. 영화는 미라벨이 마법이 사라져가는 위기로부터 가족을 구원하는 이야기다.
3. 까사 마드리갈
엔칸토 위에 세워진 마드리갈 가족의 집 ‘까사 마드리갈’은 평범한 집이 아니다. 재러드 부시 감독에 따르면 이 집은 “의견이 있고 허물이 있는 우리의 가족 같은 존재”이며, 바이런 하워드 감독은 “마치 가족이 키우는 반려동물처럼 모두의 최애인 동시에 각 구성원과 다른 관계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엔칸토: 마법의 세계>의 집은 <모아나>의 바다와 유사하다. 주인공이 홀로 나설 수 있도록 모험을 부추기고 도와주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오롯이 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스포트라이트를 양보한다. 또한 집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은 영화의 주제를 시각화한다. 가족이 즐거울 때는 집도 즐겁다. 장난을 치고 춤을 추고 행복해한다. 가족이 행복할 때 집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그러나 가족이 위기에 놓이면 집도 이상신호를 보낸다. 행복하고 즐겁기만 한 가족이 어디 있을까? 가족이 바라는 나와 내가 바라는 나, 그 사이의 긴장이 커질수록, 까사 마드리갈의 벽은 갈라지고 바닥은 무너진다.
4. 린마누엘 미란다
<인 더 하이츠> <해밀턴> <모아나> <틱, 틱… 붐!>으로 바쁘게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작곡가, 작사가, 배우 겸 영화감독인 린마누엘 미란다는 <모아나>에 이어 <엔칸토: 마법의 세계>로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와 두 번째 작품을 함께했다. 린마누엘 미란다는 <씨네21>과의 일대일 인터뷰에서, 작곡가팀의 일부로 참여했던 <모아나>와 달리 <엔칸토: 마법의 세계>는 작품 개발 초기 단계부터 창작 과정에 참여하는 좀더 깊이 있는 경험이었다고 소회했다. 캐릭터를 구축하는 과정에 참여했으며 영화를 위한 리서치 여행에도 함께했다. 그리고 콜롬비아로 떠났던 리서치 여행의 기억을 바탕으로 만든 축제적이고 토속적인 분위기의 주제곡 <Dos Oruguitas>(두 애벌레)를 썼다. 이 노래가 특별한 이유는 영화가 만들어지는 단계에 이미 완성되어 제작 과정 동안 팀 전체에 영감을 주는 곡으로 활용됐다는 점이다.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가 완성한 첫 번째 스패니시 가사 노래이며, 이 노래의 가사를 쓰기 위해 자신의 한정된 스패니시 어휘에 고심했다고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거리를 두기로 하지만, 결국 그 고비는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기적을 경험하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이야기하는, 비온 뒤 땅이 굳는다는 영화의 메시지와도 연결되는 아름다운 노래다.
5. 디즈니의 60번째 애니메이션
<엔칸토: 마법의 세계>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60번째 작품이다. <프로즌> 시리즈를 만든 제니퍼 리와 함께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이끌고 있는 클라크 스펜서는 <엔칸토: 마법의 세계>를 두고 “디즈니의 과거와 미래에 한발씩 담그고 있는 작품”이라고 요약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시각적 성취가 집대성된 뮤지컬애니메이션이며, 디즈니가 추구하는 방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디즈니가 올 상반기에 개봉한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과 견주면 그 지향점이 더욱 선명해지는데, 두 작품 모두 ‘디즈니 프린세스’에 속하지 않는 주인공이 중심인 ‘디즈니 히어로’ 이야기며,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면서 지역색을 분명히 드러내는 다양성을 보여준다. <엔칸토: 마법의 세계>는 스토리텔링에서도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 미라벨과 대립하는 캐릭터가 과거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보여줬던 악당이나 공동의 적이 아니라 가족의 수장인 알마 할머니라는 점이 흥미롭다. 각본가이며 공동감독으로서 영화에 라틴아메리카의 감수성을 더하는 역할을 한 채리스 카스트로 스미스는 “이 작품은 처음부터 관점에 대한 이야기,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나를 이해해보자는 메시지의 이야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순수한 악당은 존재하기 어려웠다. 물론 이야기 속에 어둠도 있고 안타고니스트도 있지만 그런 것들까지도 이해하고 바라보려는 시도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