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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와일드'의 장 마크 발레 감독, 향년 58살로 별세
조현나 2021-12-30

너무 이른 이별

“가장 위대하고 순수한 예술가이자 몽상가 중 한 사람을 잃었다.”(배우 로라 던) 12월27일(현지 시간) 장 마크 발레 감독이 캐나다 퀘벡 외곽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향년 58살. 사인은 심장마비로 밝혀졌다. 장 마크 발레 감독은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와일드> <데몰리션>에 이어 최근 <HBO> 시리즈 <빅 리틀 라이즈1, 2>와 <몸을 긋는 소녀>를 연출하며 차츰 자신의 영역을 넓혀왔다. <HBO>의 또 다른 시리즈물인 <고릴라 앤드 더 버드>의 감독 및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할 예정이었으나 갑작스러운 비보와 함께 그의 새 프로젝트는 중단됐다. <HBO>측은 “장 마크 발레 감독은 영화에 오롯이 전념하고, 모든 장면에 감정적인 진실을 불어넣는 경이로운 재능의 소유자였다”라며 그의 가족과 제작 파트너 네이선 로스에게 조의를 표했다.

진솔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장 마크 발레 감독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린 건 2014년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부터지만, 그가 감독으로 활약한 역사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3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태어난 장 마크 발레는 퀘벡대학교에서 영화 제작을 전공한 뒤 1985년 파크 에비뉴, 와일드 터치와 같은 밴드의 뮤직비디오를 만들며 영상 작업을 시작했다. 1992년 단편 <스테레오타입>이 캐나다의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했으며 1995년 발표한 첫 장편 <블랙리스트>는 캐나다의 대표적인 영화 시상식인 지니 어워드의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친구이자 공동 작가인 프랑수아 불레와 함께 둘의 유년 시절을 토대로 제작한 <크.레.이.지>는 퀘벡 역사상 가장 성공한 작품 중 하나가 되었으며 그해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토론토시티상을 수상했다. 크고 작은 성과와 더불어 장 마크 발레는 단번에 ‘주목해야 할 감독’으로 급부상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과 제작자 그레이엄 킹의 눈에 띈 그는 이들의 제안으로 빅토리아 여왕의 삶을 그린 <영 빅토리아>의 메가폰을 잡았다.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카페 드 플로르>에 이어, 2014년 에이즈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론 우드루프의 실화를 다룬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연출하면서 그는 86회 미국 아카데미 3관왕, 71회 골든글로브 2관왕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다.

장 마크 발레 감독은 자연주의적인 영화 제작 방식을 즐겨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인공조명보다 휴대용 카메라로 자연광을 담는 촬영 기법을 선호했으며 리허설 대신 대본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배우가 자유롭게 연기를 펼칠 수 있는 장을 형성해주었다. 그런 면에서 <와일드>는 그의 작업 방식과 잘 어우러진 작품이었다. 엄마와 사별한 뒤 트레킹을 떠난 셰릴 스트레이드의 여행을 묘사하기 위해 장 마크 발레는 셰릴 역의 리즈 위더스푼과 미국 서부 연안의 트레킹 명지인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누볐다. 리즈 위더스푼이 화장기 없는 얼굴로 여정에 임한 것도 감독의 아이디어였다. 그와 함께한 동료들은 장 마크 발레 감독이 “이러한 연출 방식으로 함께 작업한 이들에게서 최고를 이끌어냈다”고 입을 모은다. 장 마크 발레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진솔하고 사실적인 이야기를 너무 부자연스럽게 연출하고 싶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 빅토리아>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와일드>가 특히 관객의 공감을 얻은 건, “이러한 자유가 서사와 감정, 인물에 무게를 더해줄 것”이라고 믿은 감독의 연출법이 성공적이었다는 방증일 것이다.

강인한 여성들에게 경의를

<와일드>에 이어 <데몰리션>을 연출한 장 마크 발레 감독은 2017년 <빅 리틀 라이즈>를 연출하며 브라운관으로 이동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졌으나 그는 “틀을 짜는 것부터 음악과 침묵을 사용하는 방식까지” 자신에겐 영화와 드라마가 큰 차이가 없는 미디어라고 답했다. <빅 리틀 라이즈>로 에미상 8개 부문을 거머쥔 장 마크 발레 감독은 긴 호흡의 작품도 매끄럽고 단단하게 완성할 수 있는 창작자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시리즈물을 연출하며 더욱 도드라진 그의 특성은 여성 서사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빅 리틀 라이즈1, 2>와 <몸을 긋는 소녀> 등 여성들의 이야기를 연이어 다룬 그는 자신을 “운이 좋은 감독”이라고 지칭하며 “나는 똑똑하고 강한 여성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이 편안함을 느끼며 존중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마크 발레 감독에게 그 공간은 당연하게도, 자신의 영화였다. <와일드> 공개 후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는 “고난 속에서도 매사 긍정적인 셰릴의 어머니와 나의 어머니가 비슷하다고 느꼈다”라며 “여성 서사를 다루는 것이 어머니를 비롯한 강인한 여성 캐릭터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고 전했다.

장 마크 발레 감독은 과중한 짐을 해결하려 분투하는 인물들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영화 <크.레.이.지>의 주인공 자카리 벨류는 보수적인 아버지와 4명의 형제들 사이에서 호모포비아에 맞서다 결국 순례를 떠난다. 어머니와 사별한 뒤 트레킹을 떠나는 <와일드>의 셰릴이 연상되는 지점이다. <데몰리션>의 데이비스는 사고로 떠난 아내의 빈자리를 견디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시도하며, <빅 리틀 라이즈> <몸을 긋는 소녀>의 여성들도 마을의 살인 사건을 기점으로 각자의 상처를 보듬는다. 에이즈에 관한 자율 처방 권리를 주장하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론은 이중 가장 저돌적인 방식으로 역경에 도전한다. 장 마크 발레 감독은 “자신, 그리고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 싸우는 이들의 이야기에 매력을 느낀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인간 본성의 결점과 불완전함을 폭로하려 시도”하면서도 “삶을 낭만화하지 않는”(배우 매슈 매커너히) 그의 영화들은 매 순간 아름답지도, 완벽하지도 않은 인생을 담담히 그린다. 현실적인 필체로 완성된 그의 인물들은 도리어 우리 곁에 큰 위로로 자리한다.

장 마크 발레 감독은 너무도 이르게 떠났지만, 그의 제작 파트너 네이선 로스의 말처럼 “그의 영향력 있는 작품들이 여전히 세상에 존재한다는 점이 위안이 된다.” 자신만의 분명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봐온 장 마크 발레 감독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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