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소개
비디오 출시작 <숀 펜의 헬스 키친>
1975년 <죠스>가 상영되던 LA 시내의 어두운 극장 안. 다른 모든 관객들이 스크린에 주목하는 동안 영화는 보지 않고 소형 카메라와 녹음기로 열심히 <죠스>의 장면들을 찍는 소년이 있었다. 요즘으로 따지면 ‘해적판 비디오’를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이 소년, 필 조아누는 몇년 후 바로 자신이 그토록 열광했던 스티븐 스필버그의 조수로 영화계에 입문하게 된다.
LA 토박이인 필 조아누는 USC 영화학과를 다니면서 찍은 작품 <마지막 기회 The Last Chance>로 1984년 학생영화제에서 입상하면서 영화계에 발을 내딛는다. 2년 후인 1986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지휘한 TV물 <어메이징 스토리 Amazing Stories>의 감독일을 맡게 되는데, 그가 연출한 두개의 에피소드가 에미상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스필버그 사단의 일원으로 영화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1987년 조아누는 한 순진한 학생이 학교에서 겪는 학교 폭력을 풍자한 청춘 코미디물 <세시의 결투 Three O’clock High>(1987)로 감독에 데뷔한다. 배리 소넨필드가 촬영을 맡은 이 영화는 관객을 몰입시키는 놀라운 속도감과 경쾌한 유머감각으로 스필버그의 영향이 짙게 배어나오는 작품이기도 하다. 다음해 발표된
그러나 <숀 펜의 헬스 키친 State of Grace> (1990)을 만들면서부터 조아누는 변모하기 시작한다. 숀 펜, 에드 해리스, 게리 올드먼, 존 터투로 등의 호화배역진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뉴욕의 아일랜드 갱단이 조정하는 헬스 키친 지역을 놓고 마피아와 여피, 경찰의 삼파전을 마틴 스콜세지 스타일로 그린 작품. 분위기 있는 스타일과 극단적인 폭력이 어우러졌으나 신랄하기보다 다소 산만한 이야기 전개가 영화의 밀도를 떨어뜨리는 인상을 주고 있다.
제임스 캐그니의 이미지를 재현한 듯한 갱스터 누아르를 실험한 후, 조아누는 서스펜스 스릴러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한다. 한 정신분석의가 두 자매의 욕망과 애증의 사슬에 말려들어 반전을 거듭하는 심리 게임을 그린 <최종분석 Final Analysis>(1992)은 히치콕풍의 고전적 추리극 형식을 빌렸으나 범작에 그치고 말았다는 인상을 남겼다.
최근작 <헤븐즈 프리즈너 Heaven’s Priso-ners>(1996)는 제임스 리 버크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알코올중독자인 전직 뉴올리언스 경찰의 어두운 내면과 범죄와의 전쟁을 그린 영화. 이로써 그는 갱스터 무비, 서스펜스 스릴러를 거쳐, 하드 보일드 누아르까지 각종 장르를 섭렵하면서 자신의 영화적 스타일을 시험하고 있다.
유난히 경쾌한 터치의 데뷔작 <세시의 결투>를 제외한다면, 필 조아누 작품의 주인공들은 거칠고 강한 외면과 달리 과거의 기억이나 상처에 의해 취약한 내면을 지닌 인간들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한결같이 비일상적이고 일탈적인 스스로의 카리스마에 의해 결국 파국을 맞는다.
정작 조아누 자신은 스스로를 ‘어떤 인간인지 잘 알지 못하는 종류’라고 정의하면서도 자신의 작품들 역시 감독인 자기의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이로 미루어볼 때 조아누가 천착하는 인간형이 어떤 부류인지는 짐작이 가지만, 그가 그려내고자 하는 카리스마적인 캐릭터들이 자신의 영화가 배경으로 삼는 스타일리시한 분위기들과 어울리기에는 조아누 자신의 ‘내공’이 아직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 영화감독사전,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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