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소개
1933년에 태어난 이타미는 감독이 되기 전에 다양한 직업을 거쳤다. 젊은 시절에는 아마추어 복서와 디자이너일을 했고 여기에 배우 겸 수필가, TV토크쇼 사회자, 번역가, 정신분석학 잡지의 편집자라는 경력이 추가된다. 그는 60년부터 영화배우로 활동했는데, 니콜라스 레이의 할리우드영화 <북경의 55일>(1963)과 오시마 나기사의 <일본춘가고 日本春歌考> (1967) 등이 눈에 띈다. 비교적 최근 작품은 모리타 요시미쓰의 85년 영화 <가족게임 家族ゲ―ム>에서 수험생의 아버지 역할로 나왔다. 그 밖에 이타미가 배우로 출연한 영화수는 약 40여편.
많은 영화출연 경험을 바탕으로 이타미가 감독으로 전업한 것은 1984년. 데뷔작 <장례식 お葬式>은 개봉 당시 극장을 잡지 못해 지방극장에서 자주 상영 형태로 시작했으나 반응이 좋아 1년 후 대극장에서도 개봉한 전례가 없는 기록을 세웠다. 장례식을 치르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장례식>은 장례식이라는 행위에 초점을 두면서 특정한 상황에 직면한 인간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보여준다. 영화의 중반에 한 극중인물이 카메라로 장례식을 찍은 장면이 나온다. 흑백으로 처리된 이 시퀀스는 주인공들의 행동과 사람들의 미소를 보여주는데, 인생의 한순간을 담담하면서도 소박하게 응시하는 감독의 시선이 담겨 있다. 인간사회의 한 측면을 잡아 그것의 세부를 상세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그려내는 이타미 주조의 수법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일본의 음식문화를 다룬 두번째 영화 <담포포 タンポポ>(1985)는 서부영화를 패러디하면서 식욕과 성욕의 관계, 일본인의 장인정신과 허위의식을 드러내는 에피소드를 곳곳에 심어놓은 빛나는 소품이었고, 이타미의 이름을 해외에 널리 알리게 한 출세작이었다. 1987년 탈세행위를 소재로 삼아 만든 <마루사의 여인 マルサの女>은 범죄영화의 공식으로 탈세행위를 적발하는 세무서 직원들과 대형탈세범과의 대결을 담았다. 이 영화는 그가 이후 만들어낼 영화의 모든 공식이 완성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마루사의 여인>에서 시작하여 <마루타이의 여인 マルタイの女>(1996)에 이르는 영화들은 이타미 주조가 소재를 달리하면서 만들어낸 변주들이다. 할리우드 장르의 재기있는 변주, 일본인의 감춰진 허위의식에 대한 통렬한 풍자는 이타미 영화의 일관된 특징이다. 때로 이 풍자는 일본사회 전체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이어진다.
<마루사의 여인> 이후 이타미 주조는 영화를 통해 일본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해 왔다. <마루타이의 여인>은 신흥종교집단의 살인사건을 목격하고 쫓기는 여배우가 주인공이다. 영화 속의 종교집단에서 옴진리교의 그림자를 읽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야쿠자를 다룬 <민보의 여인 ミンボ―の女>(1993)은 일본사회의 생리에 대한 그의 비판적 견해가 드러난 대표적인 경우다.
이타미 영화의 또다른 장점은 평이한 영화언어. 그는 형식 실험보다는 드라마 구축과 연기력에 승부를 건다. 1993년에 만든 <대병인 大病人>은 암을 소재로 삼아 주인공이 자신에게 찾아온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살피는 영화다. 주인공이 암을 선고받고, 수술을 하고, 재발하고, 마침내는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주는데 어두운 소재임에도 코미디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타미는 관객이 부담스러워 하지 않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10편의 영화를 연출한 그의 흥행타율은 9할이다. 특히 세번째 작품 <마루사의 여인>부터 96년 작품 <마루타이의 여인>에 이르기까지 그가 연출한 영화는 대부분 10억엔 이상의 배급수익을 올렸다. 누아르나 멜로드라마처럼 특정장르에 기대지 않으면서도 이타미 주조는 일본에서 가장 흥행하는 오락영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 영화감독사전,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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