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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태양은 외로워

The Eclipse (1962)

관객 별점

7.50

시놉시스

증권경매장에서 일하는 남자주인공과 남편과 막 헤어진 여자주인공은 만나서 사랑을 나누지만 늘 허탈한 심정으로 헤어진다. 두사람은 매일 만나던 장소에서 다시 만나기로 헤어지지만 약속된 날 두사람 모두 그 장소에 나타나지 않고 때마침 일식이 시작된다.

포토(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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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4)

  • fil*****
    2022-07-04 11:54:43

    8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이 연출한 1962년 작 <일식>은 당해에 깐느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빅토리아(모니카 비티)는 연인인 리카르도와 헤어질 결심을 하고 그의 집을 떠납니다. 리카르도를 여전히 그녀를 원하지만 빅토리아의 마음은 이미 떠난 상태입니다. 다음 날, 빅토리아는 어머니가 매일 같이 드나드는 증권거래소를 갑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피에로(알랭 들롱)를 만나게 됩니다.

    둘은 번쩍하고 첫 눈에 반하지는 않습니다. 빅토리아는 헤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리카르도에 대한 걱정을 하는 와중 친구와 함께 건너편 집에 사는 여자 집에 놀러 갑니다. 그녀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살다 온 유부녀인데 남편이 없이 혼자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셋은 케냐와 아프리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뜬금없이 빅토리아는 온몸을 흑빛으로 분장하고 아프리카 전통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이를 불쾌하게 생각한 집주인은 이를 바로 저지하죠. 그리고 빅토리아는 지인을 통해 경비행기를 타고 로마 시내를 내려다보기도 합니다. 사실 빅토리아는 딱히 하는 일이 없어 보이고 로마 시내, 어머니가 있는 증권 거래소 등을 왔다 갔다 할 뿐입니다.

    영화의 중반부가 지나면 피에로와의 본격적인 연애가 시작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피에로의 적극적인 구애에도 빅토리아는 이를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끝임 없는 피에로의 구애로 둘은 함께 밤을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은 큰 갈등이 있지 않음에도 더 이상 가까워지는 관계가 되지 못합니다.

    62년 당시 이탈리아, 로마의 사회적 배경을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고 무솔리니의 전체주의에서 탈피하는 과정에서 들어온 자본주의. 자본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증권이라는 소재를 들여옴과 동시에 또 다른 전쟁에 대한 두려움 그러니까 영화 속에서도 등장하지만 핵전쟁에 대한 새로운 두려움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동시에 허무주의에 빠져있는 듯한 빅토리아는 새로운 시작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엔딩에서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작하는 연인이 되는 빅토리아와 피에로이지만 그들이 함께한 약속이 말로서는 영원할 것처럼 보이지만 이후에 연결되는 이미지는 짧은 쇼트로 이루어지는 몽타주였습니다. 가로등, 텅 빈 도로와 횡단보도, 졸졸 흐르는 물 등등 주인공들이 영화 속에서 함께 했던 공간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엔딩 쇼트는 마치 태양처럼 빛을 내는 가로등이 스크린을 가득 차지합니다. <일식>이라는 제목과 동시에 한국에선 <태양은 외로워>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 작품은 엔딩 쇼트가 후자의 이름을 은유하는 것 같습니다.

    당대의 슈퍼스타였던 알랭 들롱과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세 편을 함께한 모니카 비티가 출연한 작품입니다. 알랭 들롱은 이 작품에서도 당시의 청춘을 표현 함께 동시에 엄청난 외모를 여전히 뽐내고 있고 모니카 비티는 전통적인 미인상은 아니지만 뭔가 허무함과 동시에 지적인 모습을 함께 보여주는 캐릭터를 잘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올해 초에 돌아가셨다고 하는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mar*****
    2010-08-05 22:31:28

    10

    7월 30일 - 베리만과 안토니오니

    =======================



    영화같다 라는 말을 우리는 일상에서 가끔쓴다. 아마도 무언가 환상적인 혹은 극적인 일을 만났을떄 우리는 이 말을 쓴다. 영화감독의 삶도 이런 의미에서의 과연 영화적일까? 아마 그건 감독마다 다른 것이다. 브레송의 삶은 영화적 이라는 말과 거리가 먼 수도승 같은 삶이 었고, 로만 폴란스키의 삶은 지금도 계속 뉴스거리를 만드는 것 처럼, 아주 영화적이다. 이런면에서 베리만과 안토니오니의 삶도 꽤나 영화적이 었지만, 그들의 죽음이야 말로 영화적이고 운명적이다. 그들은 2007년 7월 30일 같은 날에 죽었다. 모더니즘의 영화의 가장 위대한 작가 둘이 같은 날 죽은 것이다. 유럽에서 그날 수많은 애도를 표현했고, 존경을 이 두 작가에게 바쳤다. 하지만, 한사람은 햇빛을 잘 볼 수 없는 북유럽의 작가이고, 한사람은 태양가득한 이탈리아의 작가인 것 처럼, 이 둘은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베리만은 안토니오니의 영화를 너무 지루하다고 표명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애초부터 그들의 스타일은 다르다. 주제의식의 면으로도 보더라도, 베리만이 마지막 영화인 사라방드에서 까지 자신의 그리스도교적 정체성을 포기하지 못하고, 신의 침묵과 질문을 보여주고 있다면, 안토니오니의 영화는 정교분리 이후의 유럽의 모습처럼, 이제 신이 떠난 자리에 신이 죽은 후에 인간의 모습들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현대의 영화작가중에 영화속에서 인물보다는 공간의 중요성을 풍경의 의미를 더욱 강조하는 작가는 바로 안토니오니 일 것이다. 반면, 베리만은 그의 영화의 가장 중요한 주제인 인간의 얼굴에 대한 강조 때문에 베리만의 영화속에서 공간과 풍경은 별로 중요하지 않는 것 처럼 보인다. 들뢰즈는 이런 의미에서 시네마 1 에서 이 두작가를 이렇게 비교한다.

    « Il y a là à la fois une ressemblance et une opposition avec Bergman : Bergman dépassait l’image-action vers l’instance affective du gros plan ou du visage qu’il confrontait au vide. Mais, chez Antonioni, le visage disparaît en même temps que le personnage et l’action et l’instance affective est celle de l’espace quelconque qu’Antonioni pousse à son tour jusqu’au vide ».

    바로 여기에 안토니오니와 베리만간의 유사점과 반대되는 점이 동시적으로 드러난다. 말하자면, 베리만은 텅빔vide 에 맞서는 클로즈업 혹은 얼굴의 감화적 심급을 향해 가면서, 운동-이미지를 넘어섰다. 그러나 안토니오니의 작품에서는 얼굴과 마찬가지로 동시적으로 인물과 행위가 사라지며, 감화적 심급은 안토니오니가 텅빔으로 까지 밀어붙이는 불특정한 공간의 심급이 된다.

    바로 들뢰즈의 견해에 따르면, 바로 이 두 작가를 나누는 것은 바로 비드vide 를 어떻게 다루는냐 이다. 안토니오니는 이 비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예를들면, 일식의 마지막 장면에 갑작스럽게 인물을 지우고 쁠랑들을 그저 비드로 남겨둔다. 이야기는 정지되고, 텅빈 공간만이 드러난다. 하지만, 베리만은 이 비드를 두려워 한다. 베리만의 안나의 열정에서의 마지막 쁠랑에서 안드레아스는 그 쁠랑을 떠나지 못하고, 공간안을 배회한다. 베리만은 줌 아방을 가지고 흐릿한 이미지를 통해 안드레아스를 지우려 하지만 그는 계속 흔적으로 남는다. 어쩌면 이것은 두 작가의 영화세계의 예술적 근거가 다르기 때문일 수 있다. 안토니오니는 원래 화가 출신이다. 마치 그의 이 화가로서의 입장처럼, 자꾸만 스토리를 지우고, 인물들을 지우고, 화폭을 비워 자신의 감각과 지각으로 채우려는 현대미술의 경향성이 그의 영화속에 드러나고 있기에 그는 비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연극의 사람이었던 베리만에게 비드는 두려움일 수 밖에 없다. 연극무대에 아무도 등장하지 않을 경우 연극이 시작되지 못하고 진행되지 못한다. 비드는 연극무대안에서의 죽음과도 같다. 이러한 면에서, 영화를 항상 연극과의 변증법적 관계안에서 (빠롤로서의 연극의 형식성의 반대로서의 자유로운 영화의 이미지, 혹은 연극의 완성으로서의 영화) 바라보는 베리만의 입장에서 비드는 다루기 어려운 장치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달랐다. 하지만, 그들은 같은 날 사망했다. 그래서 그들의 죽음마저도 영화적이 되었다. 이 위대한 두 작가의 다시한번 애도를 표하며..
  • dd4*
    2008-03-21 07:58:10

    6

    고독과 소외를 알려준다.
  • hom****
    2008-03-21 07:45:01

    6

    고독을 곱씹고 싶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