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집착.살의.의 하모니
이런 이야기/6년 동안 은행에서 일하다 실직한 서민기는 실직의 불안정함과 오랜만에 맛보는 일상의 여유 사이를 오간다. 어린이 영어학원 원장인 서민기의 아내 최보라는 대학 시절 연인이었던 김일범과 은밀한 만남을 이어간다. 젖먹이 아기와 남편을 소중하게 여기지만 김일범의 한결같은 사랑에도 행복해 한다. 서민기가 아내와 김일범의 밀회를 눈치채고, 세 사람의 욕망은 팽팽한 긴장을 불러온다. 사랑과 집착으로 뒤엉킨 삼각관계, 배신감.상실감에서 비롯된 살의 속에 세 사람은 서로 다른 "해피엔딩"을 꿈꾸며 영화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감독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여성의 의식변화, 남녀 성역할의 변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가부장제 가치관에 얽매어 있을 뿐 대안적 가치관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개인의 혼란은 점점 심화되고 "가족"은 심각한 해체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해피엔드>는 IMF와 세기말을 동시에 직면한 우리 시대의 "가족일기" 혹은 "부부일기"이다. 단란한 가정이 꿈이었던 중산층 젊은 가장은 예상치 못했던 실직과 아내의 불륜으로 고통과 혼란에 빠진다. 사회.경제적 성취와 자신의 욕구에 당당한 아내는 남편과 애인으로부터 얻는 서로 다른 행복 중 어느 쪽도 버리지 못해 역시 혼란에 빠진다.
이 영화에서 나는 남자의 입장에서 바람 피는 아내를 단죄하거나 비난한다거나 여자의 입장에서 불륜이라는 관계에 집중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해피엔드>에서 나는 혼란에 빠진 남편과 아내의 자리에서 각자의 입장을 가능한 한 가식 없이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모습과 그 때문에 생겨난 그들 사이의 단절과 균열을 그려내고자 한다. 새로운 세기를 눈앞에 두고 기대와 흥분이 넘쳐나는 1999년의 서울, 그 한 귀퉁이에서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서로 다른 욕망과 이기심이 충돌하고 갈등하는 그 내면 풍경을 만나면서 우리 시대의 사랑, 결혼, 행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한다."
/ 씨네21 219 특집 1999 가을 한국영화 기대작
삼각관계는 좀더 극적이고, 좀더 멜랑콜리하게 만드는 만만한 설정. 하지만 <해피엔드>는 삼각관계를 이루는 사람들의 내면에 잠복해 있는 불안, 집착, 절망, 분노 등을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세밀한 일상성을 바탕으로 느낌과 방향이 서로 다른 사랑을 통해 가족과 성의식의 단면을 들여다보는 영화의 형식은 냉정하다. 따라서 현실감조차 없어 보이는 순박한 남편과 불륜에 빠진 그의 아내, 밀애를 나누는 아내의 옛 애인인 남자의 서로 다른 욕망과 현실의 부조리에서 비롯된 우울한 혼돈의 여운이 더 진하다. 세 사람 각각의 사랑은 현대사회의 가족해체, 여성문제 등을 함축하고 있다. 최민식, 전도연과 "청년"의 선발로 등판한 정지우 감독의 위력에 기대가 크다. 한편, 한국영화에 본격적인 투자를 재개, 시네마서비스 아성에 도전장을 낸 제일제당의 주력작이라는 점도 또다른 관심거리.
포인트: 사람 사이의 "섬"으로 가는 서로 다른 사랑, 가슴아픈 사랑의 치정극 / 씨네21 229 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