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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문동 영상원 스튜디오에 마련된 <빤스 벗고 덤벼라> 촬영장엔 촬영감독이 둘이다. 한 사람은 충무로 출신 이병호 기사, 다른 한 사람은 영상원 졸업생 김병서(23)씨다. 이병호씨가 35mm 카메라로 영화 속 영화 <보일러>를 찍고 있고, 이병호씨가 <빤스 벗고 덤벼라>의 촬영감독이다. 이병호씨는 말하자면 촬영감독이라는 배역을 맡은 배우인 셈이다. 말하다보니 좀 헷갈린다. 자세히 설명하면, <빤스 벗고 덤벼라>는 예술 영화 <보일러>에 출연한 에로물 출신 여배우 이야기다. 예술 영화에 출연했으니, 점잖고 지적인 연기만 할줄 알았는데, 여기서도 벗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고민이다. 정말 여기까지 와서도 감독 말대로 빤스 벗고 덤벼야 하나.
6mm다윗과 35mm 골리앗의 한판?
<빤스…>는 전주영화제가 기획한 삼인삼색 디지털 영화 <N>의 첫 번째 영화. <N1>이 주제이며 <빤스
디지털, 디지털, 레볼루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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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제에 <꿈의 미로>(1996) <엔젤 더스트>(1994) <반쪽 인간>(1981, 단편) <셔플>(1986, 단편) 등 4편의 영화가 상영된 이시이 소고 감독(43)은 84년작 <역분사가족>으로 유명해진 인물. <역분사가족>은 중산층 가정의 악몽과 피비린내나는 살육전을 통해 일본사회의 집단적 스트레스를 극단적으로 묘사한 작품. 지난 10일 감독과의 대화에서 그는 <역분사가족>에 대해 “개인적으로 부끄러운 영화다. 한마디로 펑크난 타이어 같은 느낌”이라고 신랄하게 자평했다. “유럽에서 호평받기도 했지만, 일본에선 정제되지 않은 영화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 거친 느낌 때문에 일본에선 제작비 대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10년 동안 장편을 못찍었다. 제작자가 요구하는 대로 찍긴 싫었고 그래서 가끔 돈이 되는 대로 단편을 찍었는데, <셔플> <도쿄 블러드> 등이 그렇게 해서 만들었다. 어
아시아 감독 3인전, 세 감독에게 묻다 [4] - 이시이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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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밍량(43)은 더이상 소개가 필요없을 정도로 국내 관객과 익숙한 이름이지만, 정작 그의 영화 가운데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된 것은 베니스영화제 금사자상 수상작인 <애정만세>(1994) 한편밖에 없다. <청소년 나타>(1992) <하류>(1997) <구멍>(1998) 등 세편을 상영한 차이밍량의 날은 ‘아시아 감독 3인전’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아 보조의자를 놓고도 서서 보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구멍> 이후 아직 신작이 없다. 11일 관객과의 대화시간에 나타난 그는 “3년간 새 영화를 안 찍어서 이렇게 만나는 게 쑥스럽다.”고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동안 쉰 건 아니다. 시나리오 2개를 완성했고, 그 중 한편을 올해 말까지 찍고 싶다. <흑안권>(Dark Eye Circle)이라는 영화인데 눈주위가 검게 되는 걸 일컫는 말이다. 맞아서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사랑을 너무 많이 해도 그런
아시아 감독 3인전, 세 감독에게 묻다 [3] - 차이밍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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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세 번째 영화 <오!수정>의 촬영을 마친 홍상수 감독(40)은 후반작업 진행중에 이번 행사에 참석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강원도의 힘>은 국내 개봉, 비디오로도 나왔지만 50여명이 필름으로 다시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특이한 건 상영시간에는 한산했던 객석이 감독과의 대화시간엔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꽉 들어찬 점.
일상성의 영화에 대해 그는 스스로 이렇게 설명했다. “나 스스로는 일상이라고 말하지 않지만 굳이 그런 식으로 부른다면 그건 내가 다룰 수 있는 진흙덩어리 같은 거다. 손에 잘 붙는 진흙은 자꾸 만지게 된다. 내겐 본질적인 냄새, 상징화하기 쉬운 것에 대한 거부감 같은 게 있다. 지나치게 단순화된 것, 그걸 재생산하는 건 재미없다. 패널로 참여한 영화평론가 김영진씨가 “일상의 리듬에는 슬픔이나 고통도 있지만 행복한 순간도 있고 기쁨도 있다. 하지만 홍 감독 영화는 행복에 금이 가고 기쁨이 끝나는 순간에 시작해 하강하
아시아 감독 3인전, 세 감독에게 묻다 [2] - 홍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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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탈보다 아름다운
지난 3월10일부터 12일까지 3일간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아시아 감독 3인전’은 홍상수, 차이밍량, 이시이 소고 등 세 사람의 영화를 다시 보는 자리였다. ‘일상과 이탈’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영화제에서 영화상영 이상으로 관심을 모은 행사는 이들 3인 감독과 평론가들이 함께 한 포럼. 12일 저녁 8시30분부터 2시간가량 진행된 포럼에는 200여명의 관객이 자리를 함께 하며 세 작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비록 같은 테두리로 묶었지만 세 감독의 영화세계에서 서로 겹치는 부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때문에 토론 역시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기보다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는 쪽으로 자연스레 옮겨갔고, 이들 작가에게 든든한 후원자인 열혈관객들이 있음을 확인시키는 자리가 됐다.
김성태 | 이번 포럼은 영화제의 주제인 ‘일상과 이탈’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세 감독의 영화는 영화 내용뿐 아니라 만드는 방법에서도 ‘일상과 이탈’이라는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아시아 감독 3인전, 세 감독에게 묻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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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평론가와 관객이 만장일치로 박수를 치는 영화란 드물다. 작가로서 스티븐 킹 자신이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에 소개한 베스트 영화 10편 목록은 일반의 예상과 달리 <샤이닝>이나 <캐리> 같은 작품이 빠져 있다. 다음은 스티븐 킹이 꼽은 자신의 원작 영화 베스트 10이며 순서는 시대순.
크리스틴
자동차는 괴물이다. 유약하고 겁많던 10대 소년이 ‘크리스틴’이라 불리는 빨강색 자동차를 갖더니 부모에게 대들고 학교에서 가장 예쁜 여자와 데이트를 한다. 자동차와 섹스를 하는 <크래쉬>에는 못 미치지만 <크리스틴>에 등장하는 자동차 역시 사춘기 소년의 리비도를 통제불능 상태로 몰고간다. 크리스틴은 숭배의 대상에서 기꺼이 강간당하는 여성까지 다양한 이미지를 제공하며, 소년의 여자친구를 질투하고 소년을 조롱하던 건달들에게 잔인하게 복수한다. “이제 로큰롤은 싫어”라는 마지막 대사가 뜻하듯, <크리스틴>은 기성 세대와
스티븐 킹, 그의 소설, 그의 영화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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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본트, 킹의 페르소나
<캐리> 이후 시작된 스티븐 킹과 할리우드의 밀월관계는 지금도 변함없다. 최근 개봉한 <그린 마일>만 해도 미국에서만 흥행수입 1억3천2백만달러를 넘어 킹 원작 중 가장 큰 흥행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킹의 원작을 영화화하는 게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지금은 킹의 에이전트인 CAA에서 영화판권과 관련된 일을 대행하고 킹 자신이 각본 작업에 참여하는 일도 있지만, 킹의 소설이 막 주목받기 시작하던 70년대 후반만 해도 출판사 더블데이에서 영화판권 관련업무를 하면서 초보 작가 킹이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었다. <팽고리아>와의 인터뷰에서 킹은 78년 무렵 단편집 <나이트 쉬프트> 영화판권이 영국 프로듀서 밀튼 서보츠키에게 팔렸고 이 책에 들어있던 <론머맨>이 그로부터 14년 뒤인 92년에 비로소 개봉했는데 개봉 3주 전에 영화화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개탄했다. 사실 킹의 작품 중 영화화된 것은 비교적 초
스티븐 킹, 그의 소설, 그의 영화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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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이웃에는 공포가 산다
<크리스틴>이란 영화가 있다. 스티븐 킹 원작 영화 중에서 별로 유명하지 않은 작품이다. 한 고교생이 자신의 차에 지나친 애정을 가지게 되고, 차 역시 그 애정에 보답한다. 뻔한 이야기인데도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아주 ‘리얼’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고교생에게 ‘차’란 바로 그 자신이다. 차가 있으면 드라이브도 할 수 있고, 자동차 극장에 가서 진한 키스나 그 이상도 할 수 있다. 자동차는, 멋진 여자아이를 꼬시기 위한 첫걸음이다. 미국 고교생의 신분은, ‘자동차’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크리스틴>에는 그런 미국 고교생의 일상이 잘 드러나 있다. 차에 대한 지나친 애정. 그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누구나 그런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차가 애정을 호소해온다면? 이건 <크래쉬>가 아니다. 인간이 차에게 욕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가 ‘변신’해서 왕자가 되고 싶은 욕망을 분출하는 이야기다. 그
스티븐 킹, 그의 소설, 그의 영화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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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아치 같은 혹은 여성 같은
안석환
안석환(42)에게 <넘버.3>는 개성파 조연 배우 ‘NO.1’이라는 수식을 선사했을지 모르지만 스포트라이트는 항상 주연 배우 ‘NO 3’를 따라다녔다. <세기말>은 그에게 요요와 망치를 쥐어줬지만 대사는 한마디도 허락지 않았다. <텔미썸딩>도 마찬가지.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얼마 안 되는 대사를 전라도 사투리로 바꾼 것 뿐이었다. 그래도 ‘조연배우’ 안석환은 서운하지 않다. 촬영중인 김윤태 감독의 저예산 디지털 영화 <N>에서 주연인 택시기사 역을 맡고 있어서가 아니다. 지금도 산울림극장에서 연장 공연중인 <고도를 기다리며>의 엑스트라 공 역을 맡아 450회 공연을 마친 ‘주연배우’ 안석환. 그에겐 7년 동안 써온 낡고 새까만 모자와 군화, 다 떨어진 의상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무대가 있기 때문이다. ‘연극배우가 본업’이라는 안석환. 오후 5시가 되면 소극장으
조연배우로 산다는 것 [2] - 안석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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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나니 같은 혹은 형사 같은
장항선
“잘 생긴데가 있나, 눈은 찢어지고, 광대뼈는 나오고. 딱 깡패로나 어울릴 상이지.”
1970년, 그래서 장항선(54)은 어렵게 들어간 방송사을 떠나 도망쳤다. “조금만 잘생겼더라면, 주인공은 고사하고 예쁜 여자와 손잡고 걷는 역 한번 해봤으면”하는 꿈을 접고, 오징어잡이 배를 가지고 있던 친구에게 밀항시켜달라고 부탁했다. 어디가서 돈이라도 많이 벌어보겠다는 심산이었다. “선남선녀, 미남 미녀만 필요로 하던” 당시의 분위기가 연기하는 배우가 되려했던 그를 강원도 속초 바닷가로 내몰았던 것. 친구의 간곡한 설득에 못이겨 3개월 만에 방송사로 되돌아간 장항선은 “일생에 한번밖에 없는 행운”을 만난다. ‘전설’의 드라마 <전우>였다.
장항선은 KBS에 입사하기 이전, 영화 촬영장을 전전한 배우, 배우 지망생이었다. 69년 5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극장에서는 겨우 ‘저게 내 발’이라며 생색을 내야 했고, 친구들로부터 ‘어디 나오
조연배우로 산다는 것 [1] - 장항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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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6 기록영화제작소 보임 설립, <낮은 목소리> 기획
9 일본 대사관 앞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 참가 시작
9 ∼ 11 나눔의 집 취재와 예비촬영
11 촬영과 녹음 기자재를 일본 ‘오가와 프로덕션’으로부터 기증받음
12. 20 ∼ 4 <낮은 목소리> 국내 예비촬영 및 보충취재
12. 23 100차 수요시위, <낮은 목소리> 첫 촬영
1994.
3 <낮은 목소리> 100피트 회원 운동 시작
4 나눔의 집, 혜화동으로 이사
6 <낮은 목소리> 중국 무한 취재
8. 2 ∼ 11. 15 <낮은 목소리> 1차 국내 본촬영
11. 24 ∼ 12. 5 <낮은 목소리> 중국 촬영
12 ∼ 1 <낮은 목소리> 2차 국내 본촬영
1995.
1 ∼ 4 <낮은 목소리> 편집 및 후반작업
4 100피트 후원회원 마감 (총 175명의 100
1993∼2000 <낮은 목소리>에서 <숨결>까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