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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돼지 삼겹살 한근 값이면 앞다리는 두근, 뒷다리는 세근을 살 수 있다. 나는 이를 ‘근의 공식’이라 부르며 고기가 당기는 날엔 중간값인 앞다리에서 만족감을 구하곤 한다. 다소 궁상맞은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드라마에서 돼지 앞다리를 구워 먹는 장면을 KBS2 드라마 <순정복서>에서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모처럼 한우 갈비를 쏘겠다는 관장의 말에 환호했던 한국 최고의 밴텀급 복싱 챔피언 한아름(채원빈)과 동료 복서 박혜진(임영주)은 체육관 옥상에서 삼겹살도 아닌 앞다리를 사와 구우며 넉살 좋게 웃는다. 챔피언이 6개월마다 의무적으로 치러야 하는 타이틀 방어전 비용 1억원을 마련하느라 후원사를 찾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관장과 대전료만으로 생계를 꾸릴 수 없어 각종 아르바이트를 겸하는 선수들의 조촐한 회식 자리는 비인기 종목의 어려운 처지를 함께하는 복싱인들의 유대를 짐작할 만한 장면이었다.
이렇게 역경 속에서 도전하고 꿈꾸는 이들이 스포츠 드라마의 주인공일 법하지만 &l
[유선주의 드라마톡] '순정복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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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드레드 피어스>
왓챠 ▶▶▶▷
영화는 총에 맞은 몬티(재커리 스콧)가 아내 밀드레드(조앤 크로퍼드)를 외치며 죽어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경찰은 밀드레드, 그녀의 전남편 버트(브루스 베넷), 부동산 업자 월리(잭 카슨) 등 주변 인물들을 조사한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밀드레드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지난 생애를 회고한다. 몬티를 살해한 것은 정말 밀드레드일까? 마이클 커티즈의 <밀드레드 피어스>는 어느 여성의 굴곡진 삶을 둘러싼 욕망과 희생에 관한 필름누아르이자 멜로드라마다. 이 영화로 제18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조앤 크로퍼드의 호연이 돋보인다.
<너를 정리하는 법>
넷플릭스 ▶▶▶
“미니멀리즘은 불교와 유사하죠. 집착을 버리는 거예요.” 스웨덴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공부하고 돌아온 진(추티몬 충차로엔수킹)은 자신의 집 1층을 미니멀리즘 스타일의 작업실로 바꾸겠다는 결심을 한 뒤 각종 세간과 잡동사니를 처분하는 작업
[OTT 추천작] ‘밀드레드 피어스’ ‘너를 정리하는 법’ ‘스캔들 노트’ ‘인투 더 와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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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 연출 황준혁, 박현석 / 각본 한정훈 / 촬영 오재호 / 출연 김남길, 서현, 유재명, 이현욱, 이호정 / 플레이지수 ▶▶▷
1920년대 간도, 조선 노비 출신 일본군 소위로 수차례 공을 세워왔던 이윤(김남길)은 모종의 사건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조국을 위해 ‘도적단’을 결성해 이끌기로 한다. 백발백중의 활솜씨와 뛰어난 검술을 자랑하는 의병장 출신 최충수(유재명)를 필두로 조선의 마지막 착호갑사이자 설악산 포수 출신의 명사수 강산군(김도윤), 남사당패 출신으로 민첩하기로는 그 누구도 따를 자가 없는 초랭이(이재균), 정체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지만 별칭 그대로 야수와도 같은 맹렬함을 지닌 금수(차엽) 등이 도적단이 되어 일본군에 맞선다. 한편 이윤의 첫사랑이자 조선총독부 철도국 과장으로 위장 중인 독립운동가 남희신(서현)은 독립군 토벌에 앞장선 일본군 소좌 이광일(이현욱)을 속여 결혼을 약속하고, 독립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은밀한 계획을 세운다.
넷플릭스의 새 시
[OTT 리뷰] ‘도적: 칼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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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업로딩 인공지능을 소재로 한 두편의 단편을 엮었다. <내일의 오늘>은 40년 넘게 함께한 남편 선우를 떠나보낸 79살 희진(이주실)의 이야기다. 마인드업로딩 AI를 통해 30대 시절로 돌아간 희진(윤소희)은 가상 세계에서 젊은 시절 선우(이기혁)를 만나게 된다. 접속 시간 최대 3시간, 24시간 휴식 후 다시 접속 가능한 시스템하에서 희진은 기억이 없는 선우와의 만남을 집착적으로 이어간다. <우리의 우주>는 인공지능 온라인 장례식 서비스를 소재로 한다. 2052년 우주탐사대원 소리(김예랑)는 아빠 김형석 작곡가가 만든 곡을 들으며 소테르 은하를 횡단하던 중 그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는다. 소리가 이용하게 된 온라인 상조 서비스 애플은 언택트 시대에 발맞추어 3일간 인공지능으로 제작한 고인과 비대면 영상 채팅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아버지 김형석과 인연을 나눴던 지인들이 나누는 대화를 지켜보며 소리는 고인의 생전 추억을 하나씩 각인해간다. 공통의 SF 소재
[리뷰] ‘마인드 유니버스’, 마인드 업로딩 인공지능으로 완성되는 삶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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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임박한 어머니 곁으로 장성한 아들이 돌아온다. 창래(저스틴 전)에겐 말기암 환자인 어머니(재키 청)의 음식이 추억과 정체성의 매개다. 남자는 이제 유년 시절의 음식들을 직접 만들기 시작한다. <커밍 홈 어게인>은 간병과 요리, 회상에 잠긴 한 남자의 발걸음을 따라가는 집의 영화다. 상실의 예감이 침묵으로 내려앉은 실내에는 현재만큼 과거의 시간도 커다랗게 똬리 튼다. <커밍 홈 어게인>의 시선은 침대 머리맡에서 벌어지는 돌봄의 시간, 불 꺼진 집 안의 시간,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의 영화 속에 해소되지 않은 모자의 묵은 감정들이 불쑥 솟아오르는 순간들을 건져낸다.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한 한인들의 애환이나 1세대 이민자인 어머니와 2세대 아들의 갈등을 반추하는 영화지만, 지나간 어떤 고통도 눈앞의 죽음보다는 격렬하지 않다는 점에서 <커밍 홈 어게인>의 목소리는 담담한 어조를 유지한다. 미국 문단에서 주목받는 한인 2세대인 이창래 작가가 1년간 어머니를
[리뷰] ‘커밍 홈 어게인’, 잠드는 몸 위로 깨어나는 기억들이 담긴 작별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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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대기업 블랙코퍼레이션 폐기처리부 아르바이트생 지오(엄상현)는 아침부터 하루가 지겹게만 느껴진다. 유일한 가족이자 같은 회사 개발자인 형 윤오(신용우)의 매번 비슷한 아침상은 보기만 해도 입맛이 떨어지고, 단순 업무에 재미를 잃은 지 오래다. 그런 지오에게 일상을 바꾸는 일들이 한꺼번에 몰아친다. 벼락에 맞아 초능력을 얻고, 형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실의에 빠져 지내던 어느 날, 형의 죽음에 회사가 관련돼 있다는 걸 알게 된 지오는 변신 로봇 ‘마리오’와 함께 진실을 찾아 나선다. EBS <딩동댕 유치원>의 대표 캐릭터 번개맨을 주인공으로 한 <번개맨: 더 비기닝>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슈퍼히어로의 탄생기다. 비범한 능력이 생긴 평범한 인간이 향상된 몸을 탐구해가고, 얻은 힘으로 세상을 구하는 과정을 압축적으로 담아낸다. ‘스파이더맨: 유니버스’ 시리즈의 사운드트랙을 연상시키는 힙합 비트의 배경 음악이 전체적으로 쿨한 느낌을 주고, 하이라이트 장
[리뷰] ‘번개맨: 더 비기닝’, 아직까진 번개맨보다 분노한 소년의 힘이 더 찌릿찌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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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바닷마을에서 살아가는 꼬마 생쥐 패티(케이시 체이스)는 전설 속 아르고 원정대처럼 위대하고 웅장한 모험을 떠나 영웅이 되고 싶다. 하지만 아빠 고양이 샘(크리스토프 르모안)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작은 생쥐가 살아남기에 바깥세상은 너무나 위험천만한 곳. 부녀의 동상이몽이 커져갈 즈음 마을에 문제가 발생한다. 사람들이 제우스 동상을 세운 것을 보고 질투 많은 포세이돈(폴 보른)이 일주일 내에 자신의 동상까지 세우라고 명한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큰 재해가 닥칠 거라는 경고와 함께.
사파이어로 만든 삼지창만 있으면 포세이돈이 노여움을 풀 거라는 믿음 하나로 패티는 보물섬을 찾는 모험을 시작한다. 마을을 구하고 싶다는 사명감과 타고난 호기심이 뒤섞이면서 패티의 동기는 더욱 강렬해진다. <아르고 원정대: 꼬마 영웅 패티의 대모험>은 자기결정권을 가진 어린이만이 궁극적으로 건강한 자립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어려움과 고난까지 대신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과 달리 어
[리뷰] ‘아르고 원정대: 꼬마 영웅 패티의 대모험’, 가족의 울타리를 나서는 순간, 자립의 모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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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피노체트 군부독재 시절, 저널리스트로 명성과 존경을 동시에 얻은 아우구스토 공고라는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다. 문화부 장관을 역임했던 배우인 그의 아내 파울리나 우루티아는 그를 성심껏 보살핀다. 아우구스토가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가고, 파울리나를 점차 알아보지 못하게 되어간다는 점을 빼면 이들의 일상은 우아하고 평화롭다. 파울리나는 아우구스토에게 책을 읽어주고, 연습 중인 역할의 대사를 읊어주며, 집 주변을 함께 산책한다. <이터널 메모리>는 아우구스토를 위한 파울리나의 영상 촬영에서 시작해 백발 연인의 현재를 지나 암울했던 독재하의 민주화운동 시절로 돌아간다. 민주주의를 향한 갈망이 역동했던 당시를 열성적으로 취재하던 아우구스토의 모습이 담긴 푸티지 필름은 시대의 상징적 인물이 지나온 과거와 칠레의 역사를 겹쳐두고 함께 돌아본다. 마이테 알베르디 감독은 역사와 사람 모두를 기록하고자 한다. 그러나 자신이 다루는 인물의 명성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
[리뷰] ‘이터널 메모리’, 시대의 상징적인 얼굴과 칠레의 역사를 함께 돌아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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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인 남자 친구에게 친동생이 살해당한 사건으로부터 9개월 뒤, 닉(테레사 리안)은 자신이 욕조에서 익사하는 환시를 겪으며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정신적 위안이 필요한 시기라는 것을 깨닫고 또 다른 동생 그리고 두명의 친구들과 오스트레일리아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근처로 스쿠버다이빙과 카약을 즐기러 떠난다. 하지만 바다 한가운데에서 만난 상어가 일행 중 한명을 덮치면서 힐링을 목적으로 한 여행은 생존 싸움으로 바뀌게 된다. 섬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여자들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분투한다.
<더 리프: 언더 워터>의 여성들은 모두 각자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겪는 고통은 상어와 맞설 때 판단을 늦추는 장벽이 되기도 한다. 서퍼들에게 ‘회색 옷을 입은 남자’라고도 불리는 상어는 여성을 위협하는 학대 남성의 은유이기도 하기에 이 설정은 의미가 있다. 상어가 나타날 듯 말 듯한 공포 효과가 그리 성공적인 편은 아니지만 <47미터&
[리뷰] ‘더 리프: 언더 워터’, 해상 스릴러 영화의 공식을 정석으로 따라가지만 그리 성공적이지는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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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채 무자비하게 은행을 폭파하고 다니는 범죄 집단으로 인해 뉴욕 시민들은 불안감에 휩싸인다. 목격자들을 스스럼없이 죽일 뿐만 아니라 범죄 현장에 증거 하나 남기지 않는 용의주도함 때문에 경찰들은 수사에 난항을 겪는다. 일각에서는 이 집단에 뉴욕 시장까지 연루되어 있다는 말까지 돈다. 이에 경찰은 과거 과도한 폭력 성향으로 인해 살인까지 저질러 징역을 살고 있는 형사 나이트(브루스 윌리스)를 소환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는 사이 범죄 집단의 리더인 콘런(로클린 먼로)은 교도소를 폭파해 재소자들을 탈옥시키는 방식으로 자신의 추종자들을 집결시키려 한다.
<리벤지 나이트>는 배우 브루스 윌리스가 나이트 형사 역을 맡아 범죄 집단을 상대하는 ‘디텍티브 나이트’ 삼부작의 두 번째 작품으로, 그가 은퇴 전 건강이 좋지 않을 때 찍은 여러 편의 영화 중 한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영화 내내 그의 활약이 미미하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영화를 지탱해야
[리뷰] ‘리벤지 나이트’, 존재해선 안될 범죄, 제작되어선 안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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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을 꿈꾸는 잔고(정광우)는 배우가 되려는 동생 잔디(정수진)에게 영화를 찍기 위해 모아뒀던 돈을 양보한다. 그러나 잔디는 악랄한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 빚갚으리오(손이용) 밑에서 인신을 구속당한다. 현상금 사냥꾼 닥터 솔트(서현민)는 노예로 끌려가던 잔고를 구하고, 둘은 잔디를 데려오기 위해 빚갚으리오를 찾아 나선다.
눈치챘듯이 영화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장고: 분노의 추적자>를 패러디한다. 전격 C급 무비를 표방하는 작품은 잘 알려진 방송인이 구사하는 말장난과 인터넷 밈으로 넘쳐난다. 영화 제목 <잔고: 분노의 적자>, 잔고와 닥터 솔트가 타는 말의 이름이 각각 ‘러시’와 ‘캐시’인 점 등은 언어유희일 뿐 경제적 궁핍에 관한 알레고리와 크게 관계없다. 이른바 B급 무비로 통칭하는, 주류 상업영화 또는 유명 작가주의영화와 자리를 달리하는 영화의 속성 하나가 그저 말장난이나 유행하는 개그 아이템의 혼합이어도 무방하다고 여긴 듯하다. 오히려 이 작품에
[리뷰] ‘잔고: 분노의 적자’, 대상과 방향이 불분명한 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