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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엄마를 잃은 11살 소녀 카린(고토 노아)은 아빠 테츠야(아오키 무네타카)와 함께 절을 찾는다. 아빠는 엄마의 기일 전까지는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긴 후 떠나고 카린은 혼자가 된다. 곁에 아무도 없다는 걸 실감하며 기운을 잃어가던 차, 절에 사는 37살 고양이 앙주와 만나면서 일상의 재미를 되찾는다. <고스트캣 앙주>는 타이틀롤을 맡은 캐릭터의 매력을 동력 삼아 움직이는 작품이다. ‘아저씨 고양이’가 가진 느긋함과 잔정이 영화를 포근하게 감싼다. 카린과 앙주가 환상적인 모험을 하다가 만나는 요괴들의 외형이 각기 달라 보는 재미를 안긴다. <린다 린다 린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을 만든 야마시타 노부히로의 첫 장편애니메이션이자 그동안 캐릭터 컨셉 디자이너로서 영화작업에 참여했던 구노 요코의 정식 감독 데뷔작이다. 제77회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된 애니메이션영화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리뷰] 비워져도 다시 채워지는 뭉근한 마음, <고스트캣 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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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전역에 원인 모를 변이 바이러스가 퍼진다. 감염자는 동물과 인간의 형상을 한몸에 지닌 수인(獸人)이 되어 격리되거나 사살된다. 소년 에밀(폴 키르셰)의 어머니 역시 수인화를 겪어 보호소에 격리 중이다. 프랑수아(로맹 뒤리스)는 어떻게든 가족을 복원하기 위해 아들 에밀과 함께 보호소 근처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 한데 가족구성원을 수인으로 둔 두 부자와 달리 마을 사람들에게 수인은 혐오의 대상일 뿐이다. 수인을 향한 시민들의 테러가 극으로 치닫던 어느 날, 에밀의 어머니가 호송 중 탈출해 실종된다. 이들이 처한 위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에밀에게도 변이의 조짐이 발현된 것이다.
돌연변이와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 <엑스맨> 시리즈 등 소수자 차별을 돌연변이 존재로 은유한 작품은 대개 ‘무엇’(What)이 중요한 질문(“무엇이 정상인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 등)을 건네며 의제를 서사화한다. 반면 <애니멀 킹덤>이 보다 집중하는 질문은
[리뷰] 무엇(What)보다 어떻게(How)에 집중하는 정치, 윤리적 상상력, <애니멀 킹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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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에게 물어봐>
tvN, 넷플릭스 / 16부작 / 연출 박신우, 김진성, 오승열 / 출연 이민호, 공효진, 오정세, 한지은 / 공개 1월4일
플레이지수 ▶▶ | 20자평 - SF로서도 로맨스로서도 갸우뚱
한국은 국제적 위상이 커짐에 따라 우주정거장에 최첨단 실험 설비를 탑재한 생물학모듈을 설치하는 데 성공한다. 이곳에서 우주인들은 치매, 난임, 난치병 등 여러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우주정거장의 보스 이브(공효진)는 700억원을 지불하고 우주에 온 공룡(이민호)의 존재를 성가셔하는데, 사실 지구에서 산부인과 의사였던 그에게는 비밀스럽게 완수해야 할 미션이 있다. 난임으로 고생 중인 MZ그룹 며느리의 난자에 건설 현장에서 사망했던 회장 아들의 정자를 주입시킨 시험관 아기를 만들어오는 것이다. 하지만 우주로 떠난 공룡은 자신이 회장에게 이용당했을 뿐 진짜 임무를 수행하게 될 사람은 고은의 정략결혼 상대인 강수(오정세)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별들에게 물
[OTT 리뷰] <별들에게 물어봐> <모텔 캘리포니아> <배뱀배뱀뱀뱀파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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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의 작은 연극 극단에 신입 단원들이 들어온다. 그중에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혜리(전혜연)가 있다. 연극이 재미있어 보여 지원했다는 당돌한 포부에 단원들은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극단 대표이자 연출가 해영(박호산)은 그녀에게서 자신을 사로잡았던 젊은 시절의 순수한 열정을 발견한다. 하지만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솔직함이 끝내 독이 된 것일까? 공연 준비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 혜리를 둘러싼 지저분한 루머가 극단 내에 돌기 시작한다. 해영은 극단을 위해 결단을 내리기로 마음먹는다. <페르소나: 이상한 여자>는 예술인들의 삶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꾸준히 조명해온 정형석 감독의 신작이다. 카뮈의 사유로 무장한 그는 이번에도 부조리한 현실 위에서 외줄타기를 이어 나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진실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무너뜨리는 작법은 이제껏 예술인을 그린 작품들과 의미 있는 차이점을 가진다.
[리뷰] 카뮈 향 짙게 밴 거울 속, 웃고 우는 예술가들, <페르소나: 이상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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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로마의 4대 대성당을 전문 건축가와 미술사들의 코멘터리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영화. 먼저 성베드로대성당은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베르니니가 건축에 참여한 세계 최대 규모의 성당이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베르니니의 <발다키노> 등을 직접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라테라노성요한대성당, 산타마리아마조레대성당, 성 밖 성바오로대성당 등 로마를 대표하는 역사적 공간들이 소개된다. 한때 <모나리자>를 가장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방법은 사진으로 보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루브르박물관에서 많은 관람객에 치이며 애쓰는 것보다 집에서 컴퓨터로 편하게 고해상도 사진을 감상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예술 작품을 보는 가장 최상위의 방식이 꼭 실물 감상이 아닐 수 있다고 알려주는 듯하다. 밀도 높은 가이드와 함께 극장 스크린으로 즐기는 예술 여행 나름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리뷰] 극장 스크린으로 즐기는 바티칸 투어, <성 베드로 대성당과 로마의 교황청 대성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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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 유출 사건으로 일본이 떠들썩해진 틈을 타 요리코(쓰쓰이 마리코)의 남편이 자취를 감춘다. 이후 아들과 둘이 살아가던 요리코는 생명수를 숭배하는 사이비종교에 심취한다. 어느 날, 나이든 남편(미쓰이시 겐)이 찾아와 자신이 암환자라 밝히고 생의 마지막을 가족과 함께하고 싶다고 말한다. 갑작스레 일상에 끼어든 남편의 존재로 인해 요리코는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강변의 무코리타>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 <카모메 식당> <안경> 등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전작의 인상을 바탕으로 <파문>을 본다면 기분 좋은 충격을 받을 것이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은 영화를 통해 남성 중심적 제도, 성차별과 같은 일본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는 동시에 동일본대지진, 방사능 유출 사건 등 재난을 적극적으로 극에 끌어들인다. 재난 상황의 전시보다는 재난 발생 이후 인물들의 대처 방식에 주목하며 그 속에서 연대의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리뷰] 재난 후에 남겨진 자들의 회복과 연대,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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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탕한 생활로 몰락의 길을 걷던 중년의 배우 앤서니(러셀 크로)에게 천금 같은 기회가 찾아온다. 공포영화 ‘조지타운 프로젝트’의 주연배우가 촬영 중 사망하면서 대체자로 발탁된 것이다. 소원해진 딸 리(라이언 심프킨스)와의 관계 회복과 마지막 재기의 기회. 두 마리의 토끼를 잡고자 사제 연기에 강박적으로 몰두한 앤서니는 어느새 악마의 존재를 느끼기 시작한다. <더 엑소시즘>은 영화 속에서 구마사제를 연기한 배우가 악마에 빙의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쫓는 오컬트 호러물이다. 러셀 크로가 이번 작품으로 <엑소시스트: 더 바티칸>에 이어 1년 만에 다시 신부 역을 소화했다. 초자연적 현상, 퇴마 의식 등 오컬트의 구색을 갖추고는 있지만 장르 팬들이 기대하는 서늘함을 자아내기에는 다소 빈약한 모양새다. 그럼에도 중후했던 러셀 크로의 파격적인 빙의 연기만큼은 관객들에게 새로움을 더할 요소다.
[리뷰] 빈약한 서늘함, <더 엑소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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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죽음의 그림자로 가득한 악몽에 시달렸던 엘렌(릴리로즈 뎁)은 남편 토마스(니컬러스 홀트)의 갑작스러운 출장 소식에 극도로 불안해한다. 하지만 토마스는 부동산업자 크녹(사이먼 맥버니)의 부탁으로 올록 백작(빌 스카르스고르드)과 거래를 위해 먼 타국으로 향한다. 토마스는 친구 하딩 부부에게 아내를 부탁하지만 그가 떠난 뒤로 엘렌의 환각과 몽유병은 점차 심해진다. <더 위치> <라이트하우스>를 통해 호러 세공사로 발돋움한 로버트 에거스 감독이 거대한 야심으로 돌아왔다. 고딕 호러 영화의 정수로 꼽히는 F. W.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를 현대에 재소환한 것이다. 로버트 에거스의 <노스페라투>는 오컬트와 크리처물 등 다양한 장르적 기교를 활용해 유려하게 고전을 굴절시키는 데 성공한다. 현대적 뱀파이어물에서 빠질 수 없는 관능적 이미지마저 육체와 정신을 모두 마비시키는 감각으로 승화시킨 괴이하면서도 매혹적인 영화이다.
[리뷰] 고딕의 탈을 쓴 채 영육을 마비시키는 관능의 난반사, <노스페라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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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에 관한 관심이 폭증하던 2022년 대한민국에서 최악의 코인 대폭락 사태가 발생한다.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Mommy’ 코인의 공동대표 양도현(송재림)은 수사망을 피해 해외로 도피를 감행한다. 전도유망하던 청년 사업가 도현은 한순간에 최악의 경제사범으로 전락하고 만다. 현해리 감독의 <폭락>은 피해액만 50조원이었던 루나코인 대폭락 사태를 각색한 범죄물이다. 아직 사법기관의 판단이 나지 않은 실존 사건이기에 영화는 폭락의 인과를 파헤치기보단 인물의 흥망성쇠를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위장전입으로 입성한 명문고부터 창업 지원금을 노린 고의 도산까지 <폭락>은 이번 사건이 거짓과 한탕주의로 점철된 욕망의 말로라고 결론짓는다.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맥락을 조명하지 못한 각본에 아쉬움이 남지만, 주인공 도현의 서늘하고 아득한 추락을 연기한 송재림이 얼마나 매력적인 배우였는지를 기억할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리뷰] 중추가 끊긴 몰락기 속 처연한 마지막 얼굴만큼은, <폭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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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몸집의 쾰른족 엘프들은 인간을 남몰래 도우며 살아간다. 이중 쾰른족의 말썽꾸러기 엘피는 전통을 고수하는 부족의 규칙에 싫증을 느낀다. 그녀는 쾰른족과 오래전부터 앙숙인 비엔나족의 엘프인 보를 만나 친구가 된다. 엘피는 보를 데려온 죄로 혼나게 되자 홧김에 가출을 결심한다. 그녀는 비엔나족의 자유분방한 생활양식에 반해 그들의 일원이 되기로 한다. <슈퍼 엘프: 빨간모자 비밀요정>은 2021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엘프>의 후속작으로 20회 취리히영화제에서 최고어린이영화상을 수상했다. 화해와 상생하는 삶이란 주제는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보기에 적절하다. 쾰른시를 그대로 그려낸 듯한 세트와 크리스마스풍의 알록달록한 색감에 먼저 눈길이 간다. 첩보물 속 스파이 같은 비엔나족과 엘프족의 천적 고양이 폴리펫의 디자인도 매끈하다. 그림이나 몸짓 등 작고 사소한 행위로 감정을 건드리는 연출도 볼만하다.
[리뷰] 작고 소중하고 안온다정한 소동극, <슈퍼 엘프: 빨간모자 비밀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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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란은 아파트 청약 당첨이라는 일생일대의 사건과 함께 시작된다. 결혼을 앞둔 웹툰 작가 정서(나애진)는 계약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혼 후 새 가족과 횟집을 운영하는 아버지 영주(안석환)를 찾는다. 엄마 미영(박현숙)이 색소폰과 함께 건넨 옛날 차용증에 의지해 떼인 돈을 받기 위해서다. 고향 동해에서 아버지의 가족과 부대끼는 동안 정서는 의복동생 정해(김진영)와 유대하게 된다. 피 대신 돈으로 서로를 착취하고 되살리는 관계. <은빛살구>는 가족이라는 모델을 존속시키는 복잡한 역학을 가차 없이 통과해나간다. 장만민 감독은 돈과 생존에 얽힌 가족구성원의 시선을 다각도로 설득력 있게 경유하지만, <은빛살구>가 내러티브의 완성도와 핍진성을 우선하는 전통적 가족드라마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캐릭터들이 뱀파이어물의 등장인물로 묘사되는 판타지적 삽화와 더불어 후반부로 갈수록 다소 과격한 캐릭터 조형, 인공적인 순간까지 밀어붙이는 힘이 전면에 나선다.
[리뷰] 온기어릴 찰나 송곳니를 드러내는, 홀로서기를 위한 드라마, <은빛살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