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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라켈 레노라 플뢰툼)의 가족이 주택단지로 이사를 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낯선 환경에서의 생활을 앞둔 부모의 관심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언니 안나(알바 브륀스모 람스타드)에게 대부분 향해 있고, 어린 이다에게는 언니를 돌봐야 하는 책임마저 얼마간 주어진다. 가족들이 여름휴가를 떠나 한산하다 못해 인적마저 드물어 보이는 주택단지 주변을 이다는 혼자 서성인다. 그리고 이때 같은 또래인 베니아민(샘 아쉬라프)과 아이샤(미나 야스민 브렘세스 아샤임)를 만난다.
두 사람과 함께 이다는 소망의 실현을 목격하며, 동시에 그것에 수반되는 공포의 세계로 접어든다. 베니아민과 아이샤에게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특히 안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아이샤를 통해 이다는 언어를 잃은 안나와 불완전하게나마 소통을 하게 된다. 반면에 단순히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을 넘어선 베니아민의 능력은, 그가 가진 잔인한 기질이 더해져 이다를 포함한 나머지 세 사람을 위협하기에
[리뷰] ‘이노센트’, 잔혹하고 위태로운 아이들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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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이선균)와 수진(정유미)은 소박하지만 행복한 신혼생활 중이다. 아직 단역 배우인 현수는 임신한 몸으로 직장에 다니며 생계까지 책임지는 수진이 항상 고맙고 미안하다. 부부의 유일한 걱정은 현수가 어느 날부터 몽유병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거다. 두 사람은 수면 클리닉을 다니며 치료에 전념해보지만 차도가 없다. 아기가 태어난 후에도 현수의 몽유병이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자 수진의 불안은 브레이크가 고장난 차처럼 점차 속도를 더해간다. 극도로 예민해진 수진은 평소 믿지 않았던 무당까지 불러보지만 상황은 악화될 뿐이다.
집과 잠, 가장 편안해야 할 순간이 무너진다. <잠>은 몽유병을 소재로 기이하고 불안한 상황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영화다. 3부 구성으로 이뤄진 영화는 각 파트에 따라 조금씩 다른 색깔로 관객을 혼란에 빠트린다. “누가 들어왔어”라는 잠꼬대로 시작되는 영화는 전형적인 호러 스릴러의 길을 갈 것처럼 보이지만 이내 방향을 튼다. 수면 장애로 곤란을 겪는 초
[리뷰] ‘잠’, 심리 드라마, 컬트 스릴러, 밀실 공포물 속에서 피어나는 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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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라(레아 세두)는 8살 난 딸 린(카미유 르방 마르탱)과 함께 파리에 살고 있다. 언뜻 보기에 평범한 여성의 하루가 시작되고 있거나, 무사히 지나가고 있다는 인상 뒤에는 산드라의 매일에 뒤엉켜 있는 애환이 펼쳐진다. 희귀성 퇴행성 질환을 앓고 있는 아버지 게오르그(파스칼 그레고리)는 집을 찾아온 산드라에게 문조차 열어주기가 쉽지 않다. 우연히 마주친 옛 친구 클레망(멜빌 푸포)과 산드라는 사랑을 시작하지만, 확신과 불안 사이를 오가는 관계에서 클레망과의 사이를 알고 있는 딸이 새로운 가족에 대한 기대를 너무 많이 하지 않도록 다독여야 한다. 아버지의 저서가 익숙한 대학원생들이 그녀에게 아버지의 안부를 물어올 때마다 울음을 삼켜야 하는 일 또한 산드라가 감내해야 하는 일상의 모습이다. 아버지의 병환이 점점 깊어져 돌보기 힘들게 되자 오래전 아버지와 이혼한 어머니(니콜 가르시아)는 딸들과 함께 아버지를 어느 요양원에 보내야 할지 등을 의논한다.
이야기에는 있지만 인생에는 없는 것
[리뷰] ‘어느 멋진 아침’,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존재하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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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는 매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취향과 영감의 원천 5가지를 물어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이름하여 그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세븐틴 <먼지>
아이 때문에 최근에 새롭게 빠진 노래다. 드라이브하면서 듣고 싶은 노래를 꼽는다면 단연 이 곡! 기분 좋게 반복해 듣기 좋다.
유튜브 <경영학개론>
배꼽 잡고 깔깔깔 웃고 싶을 때 보는 채널. 개그맨 권혁수, 곽범, 황제성이 나와 영화 <내부자들>의 이경영 배우를 성대모사하며 일종의 시트콤을 이어간다. 보다 보면 고민이 사라지고 마냥 웃게 된다.
우효 <민들레>
<달짝지근해: 7510> 엔딩곡으로 꼭 넣었으면 좋겠다고 입이 닳도록 말했던 노래다. (웃음) “우리 손 잡을까요”로 시작하는 노랫말이 딱 일영과 치호의 설레는 관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 최종적으로 영화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매일 들으며 마음을 달래는 중이다.
유튜브 <강형욱
[LIST] 김희선이 말하는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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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소멸’이라는 난제의 해결책에는 두개의 출발점이 있다. 어떻게 사람들이 오도록 만들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돈이 돌게 할 것인가. 경상남도 18개 시군 가운데 면적으로는 12번째, 인구수로는 꼴찌인 의령군 역시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이다. 313명 주민 절반 이상이 65살 이상, 농사일 외에 직장에 다니는 주민 대부분은 요양보호사인 가례리에서 마을재생사업으로 가드닝 카페를 열게 된 것 또한 이 절박함의 연장선에 있다.
노인이 많은 마을에선 환갑을 넘긴 이도 ‘새댁’으로 불린다. <시스터즈 가든>의 주인공은 가족을 위해 돈 버느라 학업을 일찍 포기했거나, 내 일을 가져보고 싶었지만 남편의 반대로 포기했던 평균연령 62.8살의 다섯 여성의 여정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처음에는 “삶에 지쳐서 나에 대한 생각을 안 해봤고”, “잘하는 것도 없고”, “자신 있는 것도 없었”던 이들은 창원으로 가드닝을 배우러 다니고 “남이 차려주는 밥”을 사먹고 화훼단지를 견학하는 동안 “우리
[최지은의 논픽션 다이어리] ‘시스터즈 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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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특별한 숲속 여행>
넷플릭스, 시리즈온 ▶▶▶▷
소문난 문제아 리키가 새로운 위탁 가정을 찾아 숲속으로 향한다. 벨라와 까칠한 헥터가 리키를 맞이한다. 리키는 처음엔 모든 게 불만이었지만, 벨라의 노력으로 새 가정에 정을 붙인다. 그러나 어느 날 벨라가 쓰러짐에 따라 리키는 다른 집으로 보내질 상황에 처하고, 이에 리키는 헥터와 함께 드넓은 숲속으로 도주한다. 뉴질랜드 북섬의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로드 무비 같은 영화이며, 어른과 아이의 우정 서사가 익숙한 감동을 자아낸다. 이 영화를 연출한 타이카 와이티티는 <토르: 라그나로크>를 통해 본격적으로 주목받게 된다.
<고속도로 가족>
티빙, 웨이브, 왓챠 ▶▶▶
휴게소를 전전하며 삶을 이어가고 있는 가족이 있다. 아빠인 기우가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돈을 버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휴게소를 들르는 사람들에게 만원짜리 지폐 몇장을 사정사정해 빌리는 것이다. 상대가 완곡히
[OTT 추천작] ‘내 인생 특별한 숲속 여행’ ‘고속도로 가족’ ‘재키’ ‘에린 브로코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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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 크리에이터 데이브 필로니 / 원작 조지 루커스 / 출연 로사리오 도슨, 너태샤 류 보르디조,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
아소카 타노는 <스타워즈> 세계관에서 상당히 중요하면서도 그에 걸맞게 다뤄지지 않은 캐릭터다. 팬들 사이에선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세 여성의 존재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두명은 본편에 등장한 그의 어머니와 아내인 슈미 스카이워커와 파드메 아미달라이고, 나머지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아소카다. <아소카>는 그런 아소카(로사리오 도슨)가 몰락한 은하 제국을 재건하려는 세력을 추격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야기는 2014년부터 18년까지 방영된 애니메이션 시리즈 <스타워즈 반란군>의 엔딩에서부터 이어진다. 반란군의 영웅인 에즈라 브리저가 자신을 희생한 덕분에 제국군의 대제독인 쓰론(라스 미켈센)은 은하계 먼 곳에 유배된다. 쓰론을 복귀시키려는 잔당들이 활동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OTT 리뷰] ‘아소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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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의 얼굴에 빼곡히 주문을 써내려가는 사이비 종교의 집단의식에 잠입한 기자 시경(김채은)은 사람들이 교주에게 간절히 기도하며 무언가를 차례차례 바치는 모습을 지켜본다. <신체모음.zip>은 ‘악취’ , ‘전에 살던 사람’, ‘귀신 보는 아이’, ‘엑소시즘.넷’, ‘끈’ 그리고 다섯편을 하나로 묶어주는 ‘토막’으로 구성된 여섯명의 감독이 연출한 단편 공포영화 묶음이다. 눈, 코, 혀, 귀, 피, 머리, 몸의 각기 다른 신체 부위는 여섯개의 이야기와 얽혀 다양한 장르의 공포영화를 선보인다. 집이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현실 공포, 눈 떠보니 이웃과 시작된 데스 게임, 엑소시즘, 사이비 종교 등과 같이 기존의 공포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소재들은 단편영화에서 시도할 수 있는 방법으로 풀어내어진다. 피부를 긁어내고 신체를 훼손하는 고어에서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하는 구마 의식에 이르기까지 작품마다 개성이 골고루 분포되어 다양한 취향에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다만 어떤 단편
[리뷰] ‘신체모음.zip’, 다양하게 묶인 공포영화 모음z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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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화가였고 지금은 주로 영화감독이라 불리는 오재형씨에게 자기소개를 요청한다면 아마 그는 이렇게 답할지 모른다. “안녕하세요. 피아노 치는 오재형입니다.” 피아노를 전공한 것도 피아니스트로 전향한 것도 아니다. 다만 20살 무렵 좋아서 시작한 피아노가 서른 중반이 된 지금도 좋을 뿐이다. 이젠 피아노를 업으로 삼고 싶다고 생각한 어느 날, 그는 한 공연기획자로부터 연주와 영상을 결합한 독주회를 제안받는다. 다큐멘터리 <피아노 프리즘>은 한 청년의 일상 브이로그 같기도 하고, 어느 종합예술인의 영상 포트폴리오 같기도 하다. 오재형 감독은 피아노학원에서 레슨을 받고 작업실에서 창작하는 주요 일과를 소개하고, 거리를 오가며 보고 들은 것과 떠오르는 상념을 나눈다. 영화는 배리어프리 버전으로 제작돼 음성해설과 자막을 모두 제공하는데, 감독은 음성해설을 내레이션으로 활용하고 일상 모습과 건반 치는 손을 하나의 장면에 병치해 단조로움을 피한다. 그동안 작업한 댄스필름, 애니메이션
[리뷰] ‘피아노 프리즘’, 그럼에도 나는 계속하고 있다는 또렷한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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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노르웨이는 세계에서 가장 큰 유전을 발견하고, 석유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2019년 석유 강국이 된 노르웨이에 위기가 닥친다. 바다 위 시추탑이 붕괴하고 해저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수중 로봇 원격 조종사 소피아(크리스틴 쿠야트 소프)를 포함한 잠수부들은 실종자를 수색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사고의 원인이 대규모 해저 산사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에 정부는 350여개의 유정을 전면 폐쇄하고 바다를 태울 것을 지시한다. 하지만 마지막 유정을 파괴하는 과정에서 소피아의 연인 스티앙(헨리크 비엘란)이 철수하지 못하는 사태가 일어난다.
<더 버닝 씨>는 규모의 스펙터클 외에도 공격적인 석유 시추 사업이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고 해저를 불안정하게 만들었다는 문제의식을 강조한다. 인간의 탐욕이 가져온 재앙이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 점진적으로 묘사하며 영화 속 상황이 동시대 지구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야기가 산만해지
[리뷰] ‘더 버닝 씨’, 스펙터클의 역설로 완성한 생태학 블록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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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젊은 람보르기니(로마노 레지아노)는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농장에서 트랙터를 몰면서 공학적 관심을 키워간다. 그의 곁에는 동료 군인 마테오(마테오 레오니), 사랑에 빠진 여인 셀리아(한나 반데어 웨스투이센)가 있다. 영화는 이후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이자 엔지니어로 성장하는 람보르기니(프랭크 그릴로)의 일대기를 따라간다.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자동차 브랜드 중 하나일 람보르기니를 만든 실존 인물의 자취를 좇지만, 그의 삶이 가져다주는 영감을 제공하는 데 영화는 무심하다. 외려 강수를 두는 쪽은 람보르기니 대 페라리의 대결 장면인데, 목적과 맥락을 상실한 레이싱의 스펙터클은 금세 휘발되고 만다. 두 걸출한 브랜드의 라이벌 구도가 감정의 인력을 갖지 못하고 파편화된 경주 장면 사이로 흩어진다는 사실은 <람보르기니: 전설이 된 남자>의 연출적 패착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보비 모레스코 감독의 이 실패작은 전기영화가 갖춰야 할 미덕으로 인간에 대
[리뷰] '람보르기니: 전설이 된 남자', 거창한 고유명사만 남아 공회전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