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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혁(정우성)이 감옥에서 출소한다. 10년 만이다. 조직에 묶여 자유로울 수 없는 수혁에게는 사랑하는 연인 민서(이엘리야)가 있다. 출소 후 연인과 해후한 자리에서 그는 민서와의 사이에 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민서는 수혁에게 단 한 가지를 요구한다. 아이가 아빠라고 부르는 사람은 평범하고 좋은 사람이기를 바란다고. 아이 앞에 아버지로 나서기 위해 수혁은 조직을 빠져나와 평범하게 살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이제는 기업의 회장이 된 조직의 형님 응국(박성웅)은 수혁을 쉽사리 놓아줄 생각이 없다. 응국은 강 이사(김준한)에게 수혁을 잘 감시하라는 명령을 내리지만 강 이사는 돌아온 수혁의 존재 자체가 거슬린다. 결국 강 이사는 세탁기라는 별명을 가진 정체불명의 2인조 우진(김남길)과 진아(박유나)에게 수혁을 제거해 달라고 비밀리에 의뢰한다.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의뢰를 해결하는 이들은 누구보다도 잔인하고 위험하다.
감독 정우성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보호자>라는 제목에
[리뷰] ‘보호자’, 친숙한 장르의 지루함을 피해가는 다양한 캐릭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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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 ‘원자폭탄의 아버지’이자 제2차 세계대전을 종전시킨 20세기 미국의 영웅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나치의 맹위가 한창 유럽을 흔들던 1942년, 미 육군 대령 레슬리 그로브스(맷 데이먼)가 오펜하이머를 찾아온다. 핵무기 개발을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의 연구책임자로 오펜하이머를 임명하기 위해서다. 자리를 수락한 오펜하이머는 사막 한가운데에 ‘로스앨러모스 연구소’를 설립해 연구를 이어간다. 한편 <오펜하이머>는 거물 사업가이자 미국에너지국 위원이었던 루이스 스트로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중심으로 또 다른 시점의 이야기를 교차한다. 오펜하이머는 2차대전 종전 후 국제적인 핵무기 통제를 지지한 탓에 국가의 미움을 샀고, 이 과정에서 스트로스는 오펜하이머의 족적을 복기한다.
<다크 나이트> <인셉션> <인터스텔라>를 만든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신작이다. 다만 <오펜하이머>는 세간에 널리 알려진
[리뷰] ‘오펜하이머’, 작정하고 벼른 영화작가의 펜촉, 비범한 잉크, 휘황한 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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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고등학생 나미(오우리)와 선우(방효린)는 수학여행을 가는 대신 어설프게 동반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죽음의 문턱 앞에서 두 사람의 관심사는 폭력의 가해자 채린(정이주)에게로 옮겨진다. “어차피 죽을 거 박채린 인생에 기스라도 내야 되지 않겠냐?” 자신들을 괴롭히다 서울로 전학 가버린 채린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살을 잠시 미룬 나미와 선우는 서울행을 택한다. 그러나 낯선 대도시에서 오랜만에 마주친 채린은 예전의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선하고 평온한 얼굴로 나미와 선우를 놀라게 만든다. 피해자인 자신들은 지옥 속에 살고 있는데 가해자인 채린은 복수가 두렵지도, 용서가 필요하지도 않다는 듯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있단 것이 두 사람은 도무지 참기 힘들다. 그런데 지켜보다 보니 채린이 간절히 믿고 있는 낙원과 종교에서 이상한 낌새가 느껴진다. 전도사 명호(박성훈)를 포함한 종교 단체의 구성원들은 채린과 마찬가지로 하나같이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어딘가 영
[리뷰] ‘지옥만세’, 불안하고 불온하게 타오르는 사즉생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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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는 매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취향과 영감의 원천 5가지를 물어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이름하여 그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밀수 O.S.T
이전보다 음악을 더 자주 듣는다. 그날의 기분, 그날의 날씨, 그날의 희망사항에 따라 음악을 다양하게 들으려 한다. 70년대 음악부터 최신 음악까지 여러 음악이 내게 좋은 에너지를 만들어준다. 최근 플레이리스트에는 당연히 <밀수> O.S.T와 제이크(JVKE)의 <golden hour>에 푹 빠져 있다.
그림
최근 촬영 때문에 그림을 그릴 계기가 있었다. 팔레트에 올려진 여러 가지 색깔들과 붓의 움직임으로 새로운 영감을 받는 그 기분이 너무 좋았다. 다양한 전시를 보고 여러 생각을 갖게 해주는 힘이 매력적으로 다가와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워보려 한다.
수영
수영 역시 그림과 비슷하다. 촬영 때문에 배우게 됐지만 물을 무서워하던 내가 서서히 물과 친해지며 재미를 느끼고 있어 또 다른
[LIST] 고민시가 말하는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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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가 안되는 꿈을 붙들고 보답 없는 노력에 매달리는 작가 지망생 육동주(정우)의 동력은 미련일까 희망일까? 둘을 분간할 수 있다면 인생이 한결 쉽겠지만 알 수 있는 건 그저 미련은 뒤를 향하고 희망은 앞을 향한다는 방향성뿐. 그 사이에서 지칠 대로 지친 동주는 읽고 쓰는 데 이골이 난 사람답게 온갖 인용을 동원한 자기방어로 간신히 버티던 중이고 어느 천둥, 번개 치던 밤, 차에 뛰어든 기묘한 소년 이강산(배현성)과 만나며 JTBC 드라마 <기적의 형제>는 시작한다.
실종된 형 하늘(오만석)을 찾던 1995년에서 2023년으로 타임슬립하며 기억을 잃은 강산의 임시 보호자가 된 동주는 강산이 메고 있던 하늘의 배낭에 들어 있던 소설 원고 ‘신이 죽었다’의 결말을 가필해 출판하고 단번에 스타 작가가 된다. 원고를 도둑질한 사실을 감추고 제법 강산을 염려하는 형 노릇을 하는 동주가 파렴치하다 싶지만 김지우 작가, 박찬홍 감독 콤비는 지난 작품에서 반복해 말해왔다. 사람은 실
[유선주의 드라마톡] ‘기적의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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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 페이스>
왓챠 ▶▶▶
찰리 케일(너태샤 리온)은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가려낼 수 있다. 절친한 친구의 죽음에 묻힌 진실을 파헤치다 도망자 신세가 된 찰리는 가는 길마다 낯선 이에게 은혜를 입고 그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살인 사건을 해결한다. 이 과정에서 찰리는 수도 없이 악어의 입에 제 머리를 집어넣는 위험을 스스로 자초한다. 복잡한 심리전이나 두뇌 싸움 없이 자신의 ‘눈을 보고 말’하라는 찰리의 돌직구는 그간의 추리물에서 볼 수 없던 탐정 역할의 신선한 매력이다. <나이브스 아웃>의 감독 라이언 존슨이 세개의 에피소드를 연출했다.
<다크>
넷플릭스 ▶▶▶▶▷
아이들의 실종 사건을 시작으로 네 가족이 돌이킬 수 없이 서로의 운명에 얽힌다. 가족 삼대에 걸친 비극은 에피소드를 지날수록 그 색이 짙어만 간다. 각자가 지키고 싶은 것을 위해 그들은 살아가며 서로의 운명을 속인
[OTT 추천작] ‘포커 페이스’ ‘다크’ ‘마인드헌터’ ‘사랑의 블랙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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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 감독 타가시라 시노부 / 원작 이토 준지 / 각본 사와다 카오루 / 출연 스기야마 리호, 키시오 다이스케, 스에가라 리에, 하나모리 유미리 / 플레이지수 ▶▶▶
불길한 저택에 남겨진 히키즈리 육 남매는 강령회를 연다. 터널에서 엄마를 잃은 고로는 아빠마저 잃고 하나뿐인 여동생은 뭔가에 홀린 듯이 계속 터널을 헤맨다. 하늘에는 사람들의 얼굴을 닮은 거대한 풍선이 떠다니며 바깥으로 나오라고 유혹하고, 친구의 초대를 받아 어떤 장소에 도착한 오누이는 그곳이 묘비로 가득 찬 마을임을 알게 된다. 아름다운 얼굴의 레이미(린)는 교통사고로 얼굴 절반을 잃고, 독특한 분위기의 전학생 토미에(스에가라 리에)는 사진부의 츠키코(하나모리 유미리)에게 유난히 심술궂다. 만화 <소용돌이>, <토미에> 시리즈로도 잘 알려진 이토 준지는 기담을 엮어내는 장인이다.
<이토 준지: 매니악>은 총 12화에 걸친 20개의 옴니버스 단편애니메이션으로 이토 준지의 만
[OTT 리뷰] ‘이토 준지: 매니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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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너머 삶의 양태와 방향을 반영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으로 모든 것이 무너진 도시에서 유일하게 멀쩡한 황궁 아파트를 무대로 인간 군상의 내면과 사회적 무의식을 들여다보는 재난영화다. 지진 이후 찾아온 한파로 사람들이 거리에서 얼어죽는 가운데 사람들은 자연스레 황궁 아파트로 모여든다. 불안을 느낀 아파트 주민들은 단체를 조직해 외부인을 쫓아내고, 이른바 아파트 정비 사업을 통해 거주자만을 위한 폐쇄적인 왕국을 만들어나간다. 엉겁결에 대표로 추대된 영탁(이병헌)은 아파트를 지켜야 한다는 목적에 잠식되어간다. 공무원이란 이유로 직책을 맡은 민성(박서준)은 영탁에게 점차 물들어가고 아내 명화(박보영)는 그런 민성의 모습에 점점 불안해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재난의 이미지를 전시하는 대신 그 이후 아이러니한 상황에 던져진 인간 군상의 반응을 응시한다. 아파트의 역사를 소개하는 과감한 몽타주 오프닝을 시작으로 텐트
[리뷰] ‘콘크리트 유토피아’, 디스토피아속 아이러니를 유려하게 그려내는 인간 군상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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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닝맨 챔피언십을 이틀 앞두고 인기 BJ 팡팡(정유정)이 런닝맨에게 중요한 소식을 전한다. 전설의 아이템 ‘슈퍼 벨트’를 차지하는 자가 절대 왕이 될 수 있다는 것. 런닝맨 리더 리우(김서영)는 친구들과 함께 세상을 지킨다며 팡팡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지만 지라프족 왕자 롱키(엄상현)의 생각은 다르다. 스스로 왕이 되어 아버지의 인정을 받으려는 롱키는 혼자서 슈퍼 벨트를 차지하러 나선 길에서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슈퍼 벨트를 찾으려는 런닝맨 친구들과 마주친다.
SBS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이 극장판 애니메이션 <런닝맨: 풀룰루의 역습>(2018) 이후 <런닝맨: 리벤져스>로 돌아왔다. 극장판 애니메이션에서 런닝맨은 멸망으로부터 세계를 구하는 히어로지만 캐릭터의 성격은 TV프로그램 출연진의 개성을 그대로 닮았다. 이들이 벌이는 뽑기, 딱지치기 같은 단순한 놀이의 대결에 증강현실 카 체이싱, 가상세계를 현실로 소환하는 기계와 같은 테크놀로지가 재미
[리뷰] ‘런닝맨: 리벤져스’, 테크놀로지로 재미를 더하는 극장판 버라이어티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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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은 말 없는 몸짓이 아니던가. 노장 댄서인 다나카 민의 춤에는 언어와 노래,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가 끼어들 때도 있다. 단 한번도 같은 춤을 추지 않는 그의 춤은 ‘장소의 춤’이라 불린다. 사람들이 에워싸거나 아무도 없는 공간은 그의 무대가 된다. 여기에는 정해진 안무가 없고 음악이 없으며 무대의 앞뒤 구별이 없다. 다나카 민이 추구하는 춤은 ‘예술이 되기 이전의 춤’이다. 그러나 그의 춤은 원시에 추던 춤이나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는 춤이 아니다. 각기 다른 장소에서 태어나 오로지 지금 여기에 있는 춤은 그의 과거와 교차한다. 어린 시절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을 피해 축제 행렬에 숨어들고는 도망치려던 것도 잊고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었다는 다나카 민의 일화는 우리가 다큐멘터리를 통해 목격하는 그의 춤과 가장 닮았다.
<이름 없는 춤>은 2017년 8월에서부터 2019년 11월에 걸쳐 5개국, 48곳에서 다나카 민이 추었던 춤의 일부를 기록한다. 한 무용수의 실험적 작
[리뷰] ‘이름 없는 춤’, 춤추는 자의 생애이자 사라진 춤의 생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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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뒤늦은 사춘기를 겪던 서아현 감독은 작은 기독교 대학에서 연극을 하다 만난 친구 강원(송강원)과 가까워진다.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 강원은 26살이 되던 해, 페이스북을 통해 독특한 커밍아웃을 한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동성애자이다.” 그의 절친한 친구로서, 그리고 스스로 모태신앙 기독교인으로서 여러모로 혼란스러웠던 감독은 강원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기록하기로 한다. 강원은 미국 시민이 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주한미군으로 배치받아 다시금 한국 커뮤니티에 포섭되어야 하는 기로에 선다. 이후 독일에 주둔해 순탄히 사는 줄로 보였던 강원은 어느 날 감독에게 우울한 편지를 보내고, 조기제대로 군 생활을 마친다. 7년간 이어진 여정은 서아현 감독과 친구 강원이 주고받는 편지의 기록이기도 하다.
제목에서 엿보이듯 <퀴어 마이 프렌즈>는 서아현 감독의 입장에서 성소수자 친구를 바라보는 관점을 채택한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강원의 이야기를 주요한 플롯으로 진행하
[리뷰] ‘퀴어 마이 프렌즈’, 성스럽고도 세속적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