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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2월 잿빛 하늘에서 눈 내린 어느 날 결(문혜인)은 헐레벌떡 집으로 뛰어간다.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이삿짐을 현관 앞에 두고 떠났기 때문이다. 결은 땀을 흘리며 혼자 이삿짐을 옮긴다. 그사이 애인 윤(함석영)이 도착한다. 시간은 흐르고 해가 바뀐다. 침대 매트리스 위에서 둘은 싸운다. 떠나면 죽어야 한다고 저주를 퍼부은 결은 밖으로 뛰쳐나간다. 혼자 남은 윤은 매트리스 위에 누워 있다. 그 매트리스에서 곰팡이가 피어난다. 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매트리스를 뒤집어 사용한다. 방치된 매트리스 내부에서 곰팡이는 퍼져나가고 하나의 생명체가 되어간다.
<다섯 번째 흉추>는 침대 매트리스에서 피어난 곰팡이 꽃이 인간의 척추뼈를 탐하며 생명체가 되는 여정을 그린 독특한 영화다. 독특하다는 말로 축약될 수 없는 새로운 재능을 가진 신예 감독의 탄생을 알리는 이 영화는 크리처물과 로드 무비의 형식을 취한다. 매트리스는 서울의 북부 지역을 떠돌며 쓰이고 버려지기를
[리뷰] ‘다섯 번째 흉추’, 척추뼈를 훔쳐 인간이 되는 곰팡이의 기괴한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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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87년. 평범한 외교관인 민준(하정우)은 출세를 원한다. 특별한 연줄이 없어 남들이 기피하는 중동 지역에서만 활동한 지도 벌써 5년이 흘렀다. 그가 원하는 미국 발령은 여전히 가망 없어 보이는 그때, 민준은 레바논에서 걸려온 전화 한통을 받게 된다. 현재 납치 감금당해 있으니 자신을 구해달라는 한 외교관의 절박한 SOS를 수신한 민준은, 그렇게 미국을 향한 흑심을 품은 채 직접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로 향한다. 인질범에게 몸값을 전달하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임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바논의 복잡한 국내 상황은 민준의 ‘비공식 작전’을 공항에서부터 꼬이게 만들고, 한바탕 소란 끝에 민준은 현지에 거주하고 있던 한국인 택시 기사 판수(주지훈)의 도움을 받아 즉흥적인 임무 수행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면서 민준에겐 또 하나의 신경 써야 할 거리가 생기는데, 그건 전직 사기꾼인 판수가 호시탐탐 달러로 가득한 민준의 가방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끝까지 간다>
[리뷰] ‘비공식작전’, 들통났어도 끝까지 진행시키는 익숙한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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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는 매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취향과 영감의 원천 5가지를 물어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이름하여 그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인형 <리틀챕 패밀리> 카탈로그
리틀챕 인형들은 옛날 인형이라 이제는 구매할 수 없지만, 초심을 되찾고 싶을 때마다 이 카탈로그를 꺼내본다. 물자가 풍족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 ‘외제’는 내게 큰 로망이었다.
이 카탈로그를 보며 어릴 적 느꼈던 결핍을 되새긴다.
인형 옷 만들기
인형 옷을 만드는 일은 일이기도 하지만 취미이기도 하다. 그림책 작업이 끝나도 인형을 사 모으고, 옷의 패턴을 사 새 인형에게 입힐 새 옷을 만든다. 마침 새 재봉틀도 최근 구매했다.
유튜브
매체가 다원화되는 시대에 살며, 점차 책이 잊히는 것에 관한 걱정이 있었다. 그 걱정은 현재 진행 중이지만 한 매체만 고집하면 안되겠다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요즘은 책 중심에서 벗어난 콘텐츠 중심의 작품 활동을 고려 중이다.
전시회 <
[LIST] 백희나가 말하는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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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씨 집안 백도이 회장(최명길)이 줄기세포 시술로 되찾은 아름다움을 뽐내던 칠순 파티날. 25년 세월 내내 냉랭하던 큰며느리 장세미(윤해영)가 여자로서 어머님을 사랑한다 고백한 그 밤. 수백년을 뛰어넘은 두 여인이 단씨네 별장에 당도한다. 조선시대 양반 마님 두리안(박주미)과 며느리 김소저(이다연)는 급사했던 아들이자 남편을 미래 세상에서 재회하고 단등명(유정후)이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그를 한번이라도 더 보고자 단씨 집안에 붙어살 결심을 한다. 낯선 먹거리에 감탄하는 며느리 소저가 천진한 시간 여행자라면, 얄궂게 꼬인 전생을 아는 주인공 두리안의 심경은 복잡하기 그지없다. TV조선 <아씨 두리안>의 시간 여행은 족보의 재구성으로 인해 전생 아들의 현생 엄마가 전생의 시어머니를 사랑하여 거치적거리는 남편을 주인공에게 떠넘길 궁리를 하는 상황을 만들어냈으니, 이것이 피비(Phoebe, 임성한)월드인가!전생을 믿고 빙의를 종종 일어나는 일로 수용하는 임성한 작가의 인물들, 단씨
[유선주의 드라마톡] ‘아씨 두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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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따뚜이>
디즈니+, 시리즈온, 웨이브/티빙 ▶▶▶
<엘리멘탈>을 보고 또 다른 디즈니·픽사 영화를 찾고 있다면 비교적 덜 알려진 이 애니메이션을 추천한다. 브래드 버드 감독의 2007년작 <라따뚜이>의 주인공은 생쥐 레미(패튼 오스왈트)다. 생쥐라 주방 출입 금지 대상 1호지만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가 되고 싶어 한다. 얼결에 떨어진 파리 최고급 레스토랑 주방에서 한팀을 이룬 청년의 긴 모자 속에 숨어 요리를 진두지휘하게 된 레미는 자신의 꿈에 점차 가까워진다. 음식영화에 대한 기대를 확실히 충족시키는 작품이다. 요리를 만드는 과정이 한바탕 쇼처럼 펼쳐지고, 완성된 요리는 먹음직스러운 때깔을 자랑한다.
<이층의 악당>
시리즈온, 웨이브 ▶▶▶▷
<밀수>의 김혜수에게 반해 그의 필모그래피를 훑어보고 있다면 이 영화가 어떨까. 손재곤 감독의 2010년작 <이층의 악당>에서 김혜수는 오랜 우울감으로 감정
[OTT 추천작] ‘라따뚜이’ ‘이층의 악당’ ‘조용한 가족’ ‘콜래트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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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빙 / 크리에이터·각본 테일러 셰리던 / 출연 조이 살다나, 레이슬라 드 올리베이라, 니콜 키드먼, 모건 프리먼 / 플레이지수 ▶▶▶▷
타깃과 친분을 쌓아 접근한 뒤 사살이란 임무를 완수하는 CIA 라이어니스팀의 리더 조(조이 살다나)는 괴롭다. ISIS에 발각된 팀원이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보다 즉사가 나을 거라고 판단해 그가 잡힌 곳에 드론 폭격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센티멘털은 잠시뿐, 곧바로 새 요원 물색에 나선다. 추천받은 신입 크루즈(레이슬라 드 올리베이라)와의 첫 대면에서 가능성을 발견한 뒤 그를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즉각 새 작전에 투입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는 작품이 나타났다. 지난 7월23일 티빙에서 2회까지 공개된 파라마운트+ 8부작 시리즈 <라이어니스: 특수 작전팀>은 첫회부터 명작의 풍모를 드러낸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로스트 인 더스트>의 시나리오를 쓴 테일러 셰리든이 크리에이터이자
[OTT 리뷰] ‘라이어니스: 특수 작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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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중반 바다를 낀 군천 지역의 해녀들은 근방에 들어선 화학공장으로 인해 바다가 오염되자 해산물 채취만으로 생계가 곤란해진다. 브로커 삼촌(김원해)은 이들에게 바다에 던져진 밀수품을 건져내기만 하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솔깃한 제안을 건넨다. 춘자(김혜수)와 진숙(염정아)을 필두로 한 군천의 해녀들은 밀수 운반 범죄에 가담하고, 이로 인해 잠시 호황을 누린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밀수품을 건지는 데 여념 없던 해녀들의 작업 현장을 세관 계장 이장춘(김종수)이 급습한다. 체포가 이루어지던 날 진숙의 가족들은 바다 위에서 목숨을 잃고, 춘자는 배에서 몰래 탈출해 종적을 감춘다. 2년 후, 춘자는 서울에서 전국구 밀수왕 권 상사(조인성)를 만나 함께 밀수판을 점령하러 다시 군천에 내려온다. 징역살이 후 처지가 곤궁해진 진숙은 해녀들을 배신한 춘자의 귀환이 달갑지 않지만 밀수판에 재합류할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다. 몇년 새 군천의 순박한 청년에서 해운사업가가 된 장도리(박정민)와
[리뷰] ‘밀수’, 영화에 돛을 다는 고민시와 닻을 내리는 염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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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바비 인형들과 바비의 짝 켄 인형들이 사는 바비랜드는 매일 핑크빛 행복으로 가득하다. 이곳에 사는 수많은 바비 인형 중 하나인 전형적 바비(마고 로비)의 삶 또한 그렇다. 하루하루 놀이와 파티 속에 살던 바비는 문득 생의 유한함에 관해 고민한다. 죽음에 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던 바비는 어느 날 이상함을 느낀다. 구취와 피로를 느끼고, 힐에 최적화되어 있던 발도 형태가 변한다. 바비는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딴 성에 사는 이상한 바비(케이트 매키넌)를 찾아가고, 이상한 바비는 문제 해결을 위해 바비에게 현실 세계에 사는 인간 주인을 찾아가보라고 조언한다.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는 바비의 여정에는 언제나 바비와 짝으로 붙어다니는 켄(라이언 고슬링)이 함께한다. 바비는 현실 세계에서 자신의 주인 글로리아(아메리카 페레라)를 만남과 동시에, 바비랜드와 달리 현실의 인간 여성이 처한 불평등한 현실을 체감한다. 한편 켄은 현실 세계에선 남성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권력
[리뷰] ‘바비’, 남성성의 폐단을 전복하는 여성들의 명징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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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비닐하우스에 머무는 돌봄 노동자 문정(김서형)은 종종 자신의 뺨을 후려갈긴다. 왜 그는 이런 기행을 벌이는 걸까. 무채색의 고요에 감싸인 서사에 발작적인 소음을 불어넣는 이 자해 행위의 원인은 오래지 않아 명확해진다.
문정이 돌봄 노동을 하며 마주치는 존재는 문정의 선의와 헌신을 감사 대신 불가해한 행동으로 되돌려주는 요령부득의 타자이며, 노동과 일상에서 겪는 소외를 공동체의 차원에서 해결할 가능성도 요원해 보인다. 불모에 처한 구조적 조건을 문제시할 도덕적 자의식도 소진된 상황에서, 문정은 여전히 몸을 일으켜 오늘을 살아야만 한다. 소년원에서 출소를 앞둔 아들과 동거할 자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선택지는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다며 감상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결여를 개의치 않고 지속되는 악몽 같은 현재를 견디기 위한 가학적인 자기암시의 몸짓일 뿐이다.
이솔희 감독의 <비닐하우스>는 더 나은 대안과 연대를 도모하는
[리뷰] ‘비닐하우스’, 명확한 주제의식으로 그려내는 웰메이드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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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는 매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취향과 영감의 원천 5가지를 물어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이름하여 그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책 <노가다 칸타빌레>
드라마로 제작된다고 해서 찾아보게 됐다. 육체노동에 판타지가 있었던 작가가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자신이 겪은 일들을 책에 담았다. 너무 재밌게 읽어서 작가의 인터뷰까지 찾아봤다. 책을 읽은 뒤론 공사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너무 멋져 보이더라.
치앙마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엔 가족과 한달 살기를 고려했을 정도로 좋아하는 도시다. 한동안 가지 못하다 얼마 전에 다녀왔는데 불교 사원도 아름답고 음식도 맛있었다. 아이도 무척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콩국수
집에 검은콩이 많아 최근에 요리해봤다. 만들기도 쉬운데 뜨거운 물에 1시간 가까이 콩을 끓이고 믹서기에 간 뒤 삶은 중면과 얼음, 오이를 넣어주면 된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정말 맛있게 먹었다.
<미드소마>
낮에도
[LIST] 박하선이 말하는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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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보지 않는 세대가 늘어나고 시청률의 의미가 달라진 시대에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은 무엇을 고민할까. CJ E&M 산하 스튜디오 ‘에그이즈커밍’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십오야>에는 얼마 전 ‘침착맨에게 배워왔습니다’라는 카테고리가 생겼다. 웹툰 작가에서 유튜버로 성공한 ‘침착맨’ 이병건은 자신의 라이브 방송에 출연한 나영석 PD에게 ‘집중 안 해도 되고 안 들어도 전혀 안 아까워야 사람들이 방송을 켠다’라고 조언했다. 이서진, 김종민, 차승원 등이 나영석 PD와 마치 사석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나영석의 나불나불’은 그렇게 나왔다.
<채널 십오야>의 장점이 연예인 섭외만은 아니다. 에그이즈커밍 작가, 조연출 등이 등장하는 ‘스탭입니다’, 나영석 PD와 함께 일하다 이직한 PD들이 출연하는 ‘집 나간 PD들’은 예능판 <미생> 같은 방송이다. 촬영에 필요한 음원 CD를 통째로 잃어버리고, 술 마신 뒤 잠들어 답사 갈 비행기를
[최지은의 논픽션 다이어리] 유튜브 '채널 십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