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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이번에는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국내 최초 로봇 지휘자를 소개하는 TV 뉴스를 봤다. 지휘봉을 휘두르는 로봇을 바라보며 연주하는 수십명의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원들의 모습이 화면에 잡힌다. 며칠 후 국립극장에서 연주할 곡을 연습 중이었다. 요즘 각광받는 생성형 인공지능이라도 탑재한 로봇인가 했는데 그렇지는 않고 실제 지휘자의 동작을 따라 움직이도록 사전에 입력된 로봇이었다. 뻣뻣하게 고정되어 있는 하체와 대조적으로 로봇 상체의 팔은 아주 부드럽게 움직였다. 얼굴 표정은 굳어 있었지만 박자에 따라 살짝 까딱거리는 고개 덕분인지 전체적으로 아주 자연스러워 보였다.
로봇의 이름은 에버6(EveR-6). 에버(Ever)는 태초의 여성을 뜻하는 이브(Eve)에 로봇(Robot)의 R을 붙여 만든 이름이다. 2006년에 탄생한 에버1은 한국 연구진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만든 안드로이드 로봇이다. 인간 여성과 비슷한 외모와 행동은 물론 감정 표현까지 할 수 있게 얼굴에만 15개의 모터
[임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우리 에버가 달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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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안일하게도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떠났다. 한바탕 싸우고 아 정말 지긋지긋한 모녀. 언제쯤 벗어날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아래쪽에서 뭔가 보였다. ‘그것’이었다. ‘그것’이라 하면 내가 다음 쓰고 싶은 이야기와 아주 밀접한 생물이다. 발걸음을 몇 발자국 옮기자 수십 마리의 ‘그것’이 있었다. 이 일이 나에게는 첫 번째 영화의 여파에서 벗어나려면 빨리 두 번째 영화에 돌입하라는 선명한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그것들을 열심히 휴대폰 카메라로 찍었다.
6월 오사카 개봉 일정을 보내고 있을 때 사실 약간은 지쳐 있었다. 5월과 6월에 첫 번째 영화의 일본 개봉 행사를 치르며 반갑고 즐거운 만남과 대화를 가졌지만 한편으로는 솔직히 스스로가 같은 말을 반복하는 앵무새같이 느껴졌다. 이제는 정말 다음 시나리오를 써야 할 텐데. 이런 생각을 하며 육교를 건너는데 또다시 ‘그것’이 보이는 거다! 원래 이렇게 자주 보이는 걸까? 옆에 있던 일본 배급사 사장님도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
[김세인의 데구루루] 낫 오키, 오키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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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대작 시리즈 <무빙>이 8월9일 공개됐다. 시리즈를 미리 본 기자들은 하나같이 재미를 보장했다. 뒤늦게 강풀 작가의 원작 웹툰을 찾아봤다. 역시, 괜히 누적 조회수가 2억뷰에 이르는 메가 히트작이 아니었다. 초반부, 아기 봉석에게 공중부양 능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된 부모 미현과 두식(영화에선 한효주와 조인성이 연기하는 인물들)이 방에 그물을 쳐놓고 아기를 재우는 컷에서부터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했다. 수면 중 아기가 천장에 부딪힐까 싶어 젊은 부모는 방 안에 그물을 쳤고, 그물에 걸린 아기는 곤히 잠든 엄마와 아빠를 공중에서 행복하게 내려다본다. 초능력 아기의 시선 아래, 비범한 사랑을 품은 보통의 존재들이 잠들어 있다. 아기의 공중 시점으로 색다른 앵글을 만들어낸 것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의 너르고 따스한 시선 덕에 마음이 덩달아 두둥실 떠오르는 듯했다. 특별한 신체능력을 지닌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히어로물이니 분명 폭력을 동반한 갈등의 서사가 이어지겠지만
[이주현 편집장] 스크롤 내리거나, 스크린 향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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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대한민국의 첫 대통령이었으니 무척 훌륭한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졌다. 어머니는 어린이용 인명사전 ‘이승만’ 편에 적힌 ‘부정부패’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심각하게 설명하셨다. 마침 드라마 <제2공화국>이 MBC에서 한창 방영 중이었다. ‘최불암이 이승만 역인데 설마 악역일까’ 싶었다. 그러다 4·19가 일어나 이승만 동상이 철거되는 장면을 보고야 말았다. 2년 뒤 러시아에서 레닌 동상이 철거되었을 때 나는 한국사를 자랑스러워했다.
지난 7월27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이승만의 동상이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 동상과 함께 세워졌다. 파고다공원의 이승만 동상이 철거된 지 63년3개월 만의 일이다. 대통령 윤석열도 화환을 보냈다. 이들이 이러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두환과 노태우, 이명박과 박근혜는 감옥에 들어갔다 나왔다. 김영삼은 임기 말 경제 환란을 맞았기에 마냥 떠받들기
[김수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국부론(國父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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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카페베네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내가 대학생이던 무렵, 카페베네는 발길이 닿는 모든 곳에 존재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이곳을 ‘바퀴베네’라고 불렀고, ‘베네’가 이탈리아어로 ‘좋아’라는 의미인 것을 상기하며 괴로운 웃음을 지었다. 친하게 지냈던 선배 중 한명은 그곳을 그냥 ‘바퀴’라고 불렀는데, 늘 내가 좋아하던 딸기빙수를 사주는 멋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가 “바퀴로 와”라고 하면 나는 속으로 ‘베네’ 하며 고민도 없이 달려나갔다.
유적지에 오니 역시 이곳에 얽힌 추억들을 팔게 되는구나…. 하지만 추억할 것은 이름뿐, 이 공간은 내 기억 속 베네와 한 군데도 닮지 않았다. 커다란 벽시계도, 붙박이 화단에 심긴 가짜 식물도, 온갖 목재 무늬가 섞인 각진 가구도, 천장에 투박하게 설치된 레일 조명도 없다. 지독하게 오랫동안 유행한 인테리어였는데 지금은 아무리 외진 곳에 가더라도 이 양식을 보기가 힘들다. 나는 벽에 그려진 카페베네의 새 로고를 한참 동안 쳐다봤다
[복길의 슬픔의 케이팝 파티] 그대 나에게만 잘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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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펄펄 끓고 있다. 유럽에선 40도가 넘는 폭염에 대규모 산불이 발생하고 있고, 미국 플로리다 남부 바다의 수온은 38도까지 상승했다고 한다. 멀리 눈 돌릴 일도 아니다. 최근 강원도 강릉에선 열대야를 넘어 밤 최저기온이 30도 이상인 초열대야가 발생했다. 정말이지 24시간이 덥다. 어쩌면 지금의 극단적 기후 현상은 지구의 비명일지 모른다. 그 비명을 인간이 모른 척한다면 아포칼립스 영화가 현실이 되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한편 폭염 속에서 4만보를 넘게 걸으며 카트 정리를 했던 대형 마트의 청년 노동자가 사망했다. 야외에서 고강도 노동을 하는 건설 노동자와 플랫폼 배달 노동자들의 폭염 속 휴식권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휴식권. 일을 멈추고 쉴 권리. 건강에 무리를 줄 수 있는 환경일 때 잠시 일을 멈추고 쉬겠다는 게 무리한 요구일까. 상식적으로는 무리가 아니지만 ‘노동자들의 감독’ 켄 로치의 <미안해요, 리키>를 보면 플랫폼 배달 노동자
[이주현 편집장] 디스토피아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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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의 좋은 점을 세 가지 말해보겠다. 첫째, 로고가 아름답다. 박물관의 외관을 담백하고 기품 있게 표현한 선들이 멋있다. 둘째, 앞마당 전경이 시원스럽다. 이렇게 탁 트인 곳에서는 마음도 얼마간 넓어지게 마련이다. 움직임도 커진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린이들은 반드시 뛰게 된다. 셋째, 어린이가 많다. 정책이나 실제 상황은 어떤지 몰라도 이 공간이 어린이를 환영한다는 건 확실하다. 어린이만큼 이 문제에 민감한 사람은 없으니까.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 상형토기와 토우장식토기>전이 열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가 어린이를 많이 보았다. 식당에서 어린이 일행이 오르르 몰려 다녔다. 동행한 어른들이 키오스크와 씨름하는 동안 어린이들이 자리를 맡아두는 모양이었다. 누구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누구누구는 티격태격하는 동안, 나란히 앉은 어린이 셋은 말없이 넓은 창 너머 푸르른 정원을 구경했다. 그 눈에 무엇이 담기고 마음에 무엇이 남을까? 어쩌면 전시보다 이
[김소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박물관 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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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는 <홀리데이> 신간을 보았다.
과거에도, 지금도 <홀리데이> 매거진은 지역과 여행을 다룬 잡지로 세계에서 유명한 잡지 중 하나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 이 잡지도 사연이 있다. 1946년에 창간한 <홀리데이> 매거진과 현재의 <홀리데이> 매거진은 큰 차이가 있다. 1946년과 1977년 사이 뉴욕에서 만들어지던 <홀리데이>는 작가와 사진가에게 원고 길이도, 여행 경비도 제약 없이 전세계 곳곳의 지역과 여행의 본질을 탐구하기를 원했다. 헤밍웨이, 잭 케루악 같은 작가들은 <홀리데이>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었다. 하지만 판형도, 분량도 적어지던 <홀리데이>는 갑자기 폐간을 알린다. 모든 것은 끝난다는 듯이.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홀리데이>는 다시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물론 그때의 <홀리데이>와 지금의 <홀리데이>는 큰 차이가 있다. 37년 만
[김민성의 시네마 디스패치] 지역과 여행 섹션 - 떠나고 다시 돌아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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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휴가철이다. 여름휴가로 며칠 쉰다는 안내문을 붙여놓은 동네 미용실과 카페도 자주 눈에 띈다. 나도 일주일간의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다. 이번 휴가의 테마는 ‘특별한 걸 하지 않아도 좋아’ 혹은 ‘반자본주의적으로 살아보기’이다. 사실 이 말의 본뜻은 ‘느리고 게으르게 살겠다’는 것이다. 돈이 아닌 시간으로 사치를 부려보기로 한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무해한 플렉스라고 생각한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시간을 쓰는 일. 정해진 일과가 아니라 무계획과 비효율 속에서 즐거움 찾기. 이번 휴가 기간 동안 내가 실천하고 싶은 것이다.
지난 며칠은 서울에서 정주민이 아닌 여행자의 기분을 내며 돌아다녔다. 적당히 익숙하고 좋아하는 동네에서 평소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머물러보는 것이다. 낯선 시간에 낯선 길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지난 화요일 아침 7시30분에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다. 덕수궁 대한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이주현 편집장] 나의 여름 해방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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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만큼 디스토피아적인 소재가 있을까. 그런데 대다수의 재난영화는 사실 그다지 디스토피아적이지는 않다. 이유를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시종일관 디스토피아적인 상태의 불편함과 암울함을 견뎌줄 관객이 많지는 않기 때문일 테다. 그래서 이들 영화가 다루는 재난은 주로 재난 자체의 기승전결 서사(敍事)를 갖는다. 임박한 파국을 예측해서 경고하는 소수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그걸 무시하는 기존 시스템의 관성이 있다. 극의 초반기에는 답답하게도 후자의 힘이 압도적이지만, 결국 당도한 재난 앞에 전자의 예지와 역량이 빛을 발하고, 이들의 분투 덕에 재난은 ‘극적으로’ 그래서 ‘대충’ 극복되곤 한다.
이와는 다른 디스토피아적 영화의 서사는 주로 ‘재난 이후’를 소재로 삼는다. 인간이 멍청해서든 무력해서든 회복할 수 없는 재난의 결과로 펼쳐진 지옥도 위에서, 또 인간은 분투한다. 마치 재난이 소재인 듯하나 실제로는 정치가 내러티브의 핵심이다. 이 새로운 ‘자연상태’에 대한 해석은 영화마다 조금씩
[정준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재난의 서사(敍事, 序詞, 署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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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어디서 작업하세요?’
누구를 만나든 날씨 이야기와 함께 꼭 나누는 질문이다. 어디서, 어떻게, 무엇으로 일하는가. 예전에는 나만 모르는 작가들의 비밀이 있을 것 같아 미어캣처럼 둘러봤다면 지금은 안다. 그게 그거인 것을. 다만 내 몸이 원하는 장소와 방법이 때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잊었던 선택지를 발견하기 위해 질문을 꺼내놓고는 한다. 한 가지의 공간과 방식, 도구에 탑승해 글을 쓰다가 그것들의 힘이 떨어지면 다시 다른 것들로 옮겨 탑승해 달리는 거다. 그래서 나는 지난 <씨네21>의 ‘LIST’ 코너에서 언급했듯이 <민음사TV>의 ‘문박싱’, <오지은 임이랑의 무슨 얘기>의 홈쇼핑st편을 좋아한다(홈쇼핑st 말고도 언니들의 이야기는 다 좋아한다!!). 물론 <씨네21>의 ‘LIST’도!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갖는 일할 때 곁에 두는 도구에 대한 애정을 듣다 보면 강력한 희망과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저 구글 시계가 내 책상 위에 있
[김세인의 데구루루] 긴장과 이완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