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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수 성시경과 나얼이 함께한 신곡 <잠시라도 우리>에 꽂혔다. 취향 저격한 노래는 물론이고 뮤직비디오의 애잔한 감성이 각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눈으로 듣는 것까지 즐거운 건 오랜만이기에 음원 사이트 대신 유튜브에서 무한 반복 감상 중이다. 흰옷을 입은 여성(천우희)이 손거울로 햇살을 반사시켜 눈가를 간지럽힌다. 밝은 꿈과 어두운 현실이 몇 차례 교차한 뒤 멀리서 들리는 헬기 소리, 흔들리는 물컵 그리고 잠에서 깨어 벌떡 일어나는 여성. 이윽고 나지막이 읊조리듯 노래가 시작된다. “가까스레 잠이 들다 애쓰던 잠은 떠났고…” 건조한 가을바람처럼 까슬거리는 단어를 특유의 부드러움으로 감싸는 이 탁월한 도입부는 우리를 순식간에 다른 시공간으로 초대한 뒤 무장해제시킨다. (자매품으로 <너의 모든 순간>의 “이윽고…”가 있다.) 자주 쓰지 않아 살짝 녹슨 단어로 조탁한 가사와 친숙한 멜로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의 완벽한 조합.
짧은 영상이 대세 영상 콘텐츠로
[송경원 편집장] 상상력과 회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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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통이 옛날부터 너무 보수적이었다는 말이 있더라.”(어느 정치 평론가) “법조 기자할 때 대화를 나눠본 윤 검사는 전혀 극우적이지 않았다.”(모 언론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성향을 두고 정치권 주변 사람들은 ‘선천설’과 ‘후천설’로 나뉜다. 나는 후자다. 보수우익적이다 싶은 것을 강박적으로 모아놓은 정책 체계가 되레 수상하다. 이명박씨와 박근혜씨도 그렇지는 않았다. 그는 거울 보고 작심한 사람 같다. “어이 브러더, 이제 고만 선택해라.” 여당의 보궐선거 참패 이후 ‘국정기조 전환’에 관심이 모인다. 나는 그런 것은 없거나 있어도 총선 전까지라는 쪽에 건다. 정치9단 김영삼 전 대통령도 임기 중반 전두환 세력을 단죄하고 총선에서 예상을 웃도는 성과를 올렸지만, 그 이후 야당 의원 빼가기, 공안 정국 조성, 노동법 및 안기부법 날치기로 치달았다. 지지 기반이 어느 쪽이냐에 달린 일이다. ‘호랑이를 잡는다’는 포부도 ‘호랑이굴’이라는 조건을 이기지 못했다.
“(민주당에서) 이탈한
[김수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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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B와 우연히 일년 전 사진을 발견했다. 일년 전이라 하면 나나 B나 인생 최대 나락의 시기여서 거울을 보며 또 서로를 보며 우리는 모든 것이 소진되었고 한 시기가 훌쩍 지났구나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다시 꺼내본 사진 속 우리는 너무 앳되었고 눈동자에는 알 수 없는 에너지가 (은은한 광기와 함께) 일렁이고 있었다. 거울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청춘의 심령이 카메라에 포착된 것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카메라를 통해 그 낯선 얼굴을 제대로, 그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청춘은 나에게 도깨비, 유령처럼 소문만 무성한 것이었다. 나는 줄곧 내가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이미 모든 것이 다 지나가버린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충분히 청춘이었던 적이, 제대로 청춘이었던 적이, 그저 청춘이었던 적이 이번 생엔 없는 거구나 싶어 섭섭했다. 창문 밖의 새순을 보며 수영복을 한참 골랐는데 현관문을 여니 이미 낙엽이 떨어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만 그런가? 요
[김세인의 데구루루] 청춘의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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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지쳐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을 때 불현듯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인생의 등대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고, 지난 10여년 영화주간지 기자 일을 하면서 길을 잃은 것처럼 느껴질 때마다 장면 하나, 대사 하나가 머릿속에 자동 재생되어 등을 다독여주었다. 소년의 성장을 12년 동안 촬영한 <보이후드>(2014)의 마지막, 어느덧 성인이 된 메이슨 주니어(엘라 콜트레인)가 대학 진학을 위해 집을 떠난다. 자식들이 다 떠나고 다시 혼자 살게 된 엄마 올리비아(퍼트리샤 아켓)는 속없이 즐거워하는 아들이 못마땅하다. 올리비아는 급기야 복받친 감정을 이기지 못해 흐느끼며 나지막이 되뇐다. “난 그냥,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 허망함으로 쪼개진 심장 사이 스며나온 진득한 감정은 아직도 내 마음속 얼룩으로 남아 있다.
얼룩이란 게 참 희한한 것이 관점에 따라 상상하지 못했던 모양으로 보이기도 한다. “결국 내 인생은 이렇게 끝나는 거야”라며 울음을 터트리던 올리비아의 한탄은
[송경원 편집장] 끝과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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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드는 건 좋은데 노인이 되는 건 두렵다. 나는 생활의 경험을 쌓고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지금이 과거 어느 때보다 좋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런데 노인이 된 나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눈이 침침하고 근력이 부족하고 청력이 떨어지는 신체상의 노화도 걱정이지만, 사회적으로 어떤 존재가 될 것인지 떠올리면 겁부터 난다. 모든 신기술에 꼴등으로 적응해온 나는 키오스크와 태블릿 주문에 익숙해지는 데만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따라잡을 자신도 없고, 초연해질 배짱도 없다. 나는 도태될 것이다. 광고 속 할머니는 보통 온 가족과 함께 등장한다. 희끗희끗한 머리가 단정하게 손질되어 있다. 깔끔한 니트를 입고 딸 아들 손주들에 둘러싸여 온화하게 웃는다. 이런 게 사람들이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할머니의 모습일까? 하지만 나는 누군가의 할머니가 될 수 없다. 자녀가 없으니까. 그런데도 마트 같은 데서 나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앞으로 나를 “할머니”라고 부를 것이다. ‘할머
[김소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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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엔 발목에 검은 별이 그려진 금색 양말을 신었다. 내 양말 서랍에서 가장 무난한 디자인이었다. 반짝이, 땡땡이, 형광, 야광, 레이스…. 서랍 속을 한참 바라보며 생각했다. ‘왜 이렇게 된 거지?’ 7년 전 어느 날이 떠올랐다. 친구 S는 밥을 먹다 말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가 검정색 옷만 입는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공포일 수도 있어.” K도 옆에서 거들었다. “어떨 땐 너가 사람이 아니라 그림자 같기도 해.” 어떻게 사람에게 그림자라는 그런 심한 말을…. 나는 말문이 막혀서 대꾸할 수 없었다. 가게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이 그날따라 더 그림자 같았기 때문에….
친구들의 충고는 일리가 있었다. 하나 그렇다고 검은 옷만 입던 내가 갑자기 무지개색 티셔츠를 입고 나타난다면 그들은 그 모습에 더 커다란 공포를 느낄 것이 분명했다. 나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검정 옷을 고수하면서도 나의 내면에 자리한 사랑스러움, 귀여움, 순수함을 은은하게 드러낼 방법은 없을까? 액세서리
[복길의 슬픔의 케이팝 파티] 오직 하나뿐인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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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서 좋아하는 캐릭터 중 하나는 <천공의 성 라퓨타>의 도라다. 해적이자 선장, 비행사이자 할머니인 도라는 배짱과 기세와 낭만을 갖췄다. 멍청한 해적 아들들을 거느린 도라가 양 갈래 머리를 휘날리며 박력 있게 등장했을 때, 선실에 걸린 액자 속 젊은 시절 모습이 스치듯 지나갔을 때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런 해적 선장 할머니를 본 적이 없어서였겠지. 구름의 영화라고도 부를 만한 <천공의 성 라퓨타>는 1985년 미야자키 하야오가 스즈키 도시오, 다카하타 이사오와 함께 스튜디오 지브리를 설립한 이후 세상에 공개한 첫 작품이다. 이후 스튜디오 지브리와 미야자키 하야오는 오랫동안 수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꿈과 환상과 추억을 선물해주었다. 그러니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 소식은 영화 팬들에게는 슬픈 이별 통보가 될 수밖에 없다.
그간 은퇴를 번복해온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진짜 은퇴작이 될지도 모르는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이주현 편집장] 그대들은 어떻게 마감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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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로서의 한글 창제를 기념하는 한글날이 언어로서의 한국어를 기리는 날처럼 혼동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글이라는 문자 체계의 우수성을 따지는 건 괜찮다. 그걸 지나 한국어의 우월함을 이야기하는 건 우스운 일이다. 물론 한국어로 표현된 고유의 정서와 사상이 아름다울 수는 있고, 그것은 오로지 한국어로서 접근될 때에만 그 온전한 맛을 누릴 수 있다고 역설하는 건 옳다. 한국어에 잘 밀착된 한글은 그것의 문자적 표현과 접근을 더 용이하고 효과적이게 해줌을 환기시키는 일 역시 필요하다. 따라서 한글은 바로 우리말글 환경이 처한 현실의 제유(提喩)이며, 한글날을 계기로 그 현실에 대한 성찰을 북돋으려는 취지라 이해해줄 법도 하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렇게 의식적으로 대유법적인 고찰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런 면에서 보면 한국 어문의 현실은 나날이 비루해지고 있다. 구매자는 물론 판매자조차 잘 모르는 외국어 문자로 메뉴판이나 간판 등속을 쓰기 시작한 지는 한참 됐다.
[정준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언론이라는 어불성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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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멘토링을 들으시면 열에 아홉은 창업을 포기하시게 될 겁니다.”
어쩌다 보니 요즘 팔자에도 없는 멘토링 수업을 하고 있다. 창업을 준비하고 자기만의 언어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 잡지를 만드는 일도, 사진을 찍는 것도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이들은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자신의 세상을 조립하는 일은 생각하는 것만큼 유쾌하지 않다.
잡지 전문공간을 같이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일론에게 처음 받았을 때의 당혹감이란. 잡지 전문공간? 수많은 서점이 책 한권 팔지 못하고 망해가는 처지에 잡지를? 잡지만 다룬다고? 그것도 공간으로? (나는 그가 일론 머스크가 아닐지 의심했다. 선구자 또는 사기꾼. 혹은 둘 다.)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잡지’와 ‘서점’이라는 이 말도 안되는 조합(둘 다 망해간다는 점에서)을 떠올리자마자 헛웃음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밥 먹는데 체할 거 같으니,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일론에게
[김민성의 시네마 디스패치] 예술과 문학섹션: 세상의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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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아부 아사드 감독의 <노래로 쏘아올린 기적>은 특별한 목소리를 타고난 한 소년의 아이돌 오디션 참가기다. 중요한 설명이 빠졌다. 영화는 세계에서 가장 큰 감옥으로 불리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사는 한 소년이 이집트에서 열리는 오디션 예선에 참가하기 위해 분리 장벽을 넘어 가자지구 밖으로 향하는 여정부터 찬찬히 살핀다. 2013년, 팔레스타인 난민 최초로 ‘아랍 아이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무함마드 아사프의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하니 아부 아사드는 전작 <오마르>에서도 거대한 장벽(서안지구 분리 장벽)을 넘나드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 일상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단지 총알이 빗발치는 장벽만 위험한 게 아니다. 주인공 청년 오마르는 친구를 밀고하도록 협박받고 이중첩자가 되길 강요당한다.
연일 뉴스를 통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 소식을 접하게 된다. 10월7일, 팔레스타인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이후 이
[이주현 편집장] 전쟁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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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닮은 기계를 열망하지만 동시에 두려워하는 시대, <프랑켄슈타인> 읽기 딱 좋은 때다. 마침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 빅터의 창조물이 처음 등장하는 부분을 학생들과 소리내어 읽었다. 괴물의 외형을 묘사하는 구절을 읽던 중 유독 ‘쭈글쭈글한 얼굴 살갗’이라는 표현이 귀에 들어왔다. 문득 수년 전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분만실에서 처음 만난 아기는 참 쭈글쭈글했었지.
책을 읽기 전 저자인 메리 셸리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을 훑어봤다. 영화 속 메리의 삶은 단 한순간도 순탄치 않았다. 어머니는 그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시고 이후 그가 어린 나이에 낳은 아이는 병으로 곧 죽어버렸다. 그가 몸소 경험한 탄생과 죽음의 연쇄가 소설 속에서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어머니의 죽음을 겪으며 생명 창조의 꿈을 꾸고 그러한 꿈의 결과로 탄생한 창조물이 여러 사람을 죽이는 괴물이 되어버리는 이야기에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임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