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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를 벗은 채 통나무 오래 매달리기를 하는 18명의 남성. 그리고 왕좌에 앉은 채로 그들의 경합을 바라보는 6명의 여성 리더. 이들은 여왕벌이다. 한국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여왕벌’이라는 단어는 남초 집단에서 홍일점이 되어 남성들 위에 군림하는 것을 즐기는 여성을 뜻한다. 따라서 프로그램은 이 멸칭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해야만 했다. 하지만 왜 서바이벌에 단순 리더가 아닌 여왕벌이 필요한지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물론 예능적 요소로서 불친절함을 택할 수는 있다. 전개를 보면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게 피지컬 서바이벌의 장점이다. 하지만 거의 모든 전투를 당연하게 수컷들이 이행하고 여왕벌은 말로 지령만 내리거나 남성들이 싸워 지켜낸 공을 받아 슛만 넣는 장면은, 결국 힘쓰는 노동은 남자만 하고 여자는 그것을 편하게 누리기만 한다는 고전적인 여왕벌 설전을 명쾌하게 뒤집지 못한다. 또 실무자와 리더가 동등하게 육탄전을 벌이지 않는 차등은 은연중 리더로서
[이자연의 tview] 여왕벌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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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촬영감독인 홍경표와 정정훈의 영화 세계를 깊이 살펴보는 <빛의 설계자들>이 출간되었다. <씨네21>에서 기자로 일해온 김성훈의 <빛의 설계자들>은 촬영감독을 중심으로 보는 한국영화의 2000년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홍경표가 목표물을 절대로 놓치지 않는 어마무시한 맹수라면 정정훈은 배우들이 최고의 연기를 선보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능글능글하고 치밀한 설계자다.” 1990년대부터 커리어를 착실하게 쌓아온 홍경표 촬영감독은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를 거쳐 <유령>(1999)을 작업하면서 자신만의 ‘룩’을 만들어갔다. 이후 <반칙왕>(2000), <시월애>(2000), <킬러들의 수다>(2001)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차례로 찍으며, <챔피언>(2002), <지구를 지켜라!>(2004), <태극기 휘날리며>(2004)는 테크
[culture book] 빛의 설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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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지옥’ 재판관 유스티티아는 ‘거짓 지옥’에 가야 할 죄인을 실수로 처벌한다. 이 일로 인해 1년 안에 살인을 하고도 반성하지 않고 용서받지도 못한 죄인 10명을 지옥으로 보내야 하는 벌칙을 받고 판사 강빛나(박신혜)의 몸으로 살게 된다. 빛나의 전략은 이렇다. 지옥으로 보낼 살인자라는 확신이 들면 일부러 가벼운 판결을 내려 풀어준 뒤 ‘진짜 재판’을 해 지옥으로 보내는 것. 그래서 그의 판결은 “가해자에게 지나치게 온정적”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드라마는 빛나의 판결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법이 얼마나 가해자에게 온정적인지, 억울한 피해자를 만드는지, 정의 구현에 무기력한지 보여준다. 그의 말대로 인간 세계는 “정의는 개나 줘버린” 상황이다. 그 와중에 악마인 빛나가 정의 구현을 하는 주체가 된다. 빛나는 끔찍한 교제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나 거액의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을 살해하고 아동학대까지 한 가해자 모두 자신이 한 일을 똑같이 겪게 하고 ‘게헨나’(지옥
[오수경의 TVIEW] 지옥에서 온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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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킹키부츠>의 한국 초연 10주년 공연이 성황리에 상연 중이다. 개막 전에는 유튜브 채널 <빵송국>의 코너 ‘뮤지컬 스타’ 속 넘버 패러디, 배우 최재림이 촉발한 뮤지컬 숏폼 콘텐츠의 흥행 견인 열풍 속에 작품을 잘 모르던 관객층까지 <킹키부츠> 예매 대란에 합류하며 이미 다섯 차례나 사랑받았던 작품이 여섯 번째 공연에서 더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킹키부츠>는 조엘 에저턴과 추이텔 에지오포 주연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4대째 내려오는 구두 공장 ‘프라이스 앤드 선’을 엉겁결에 떠맡게 된 신참 사장 찰리가 드랙퀸 롤라를 만난 후 남성 표준에 맞는 여성용 구두를 만들어 사양길에 접어든 공장을 재건하는 이야기다. 원작 영화보다 유명해진 <킹키부츠>를 생각하면 작품의 대표 이미지인 빨간 큐빅 구두와 드랙퀸들의 화려한 의상, 신디 로퍼가 자신의 전성기에 불렀을 법한 뉴웨이브록 스타일로 작곡한 모든 넘버 등 화려한 쇼
[CULTURE 스테이지] ‘킹키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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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요리사>)은 제목부터 '계급 전쟁'이라는 컨셉을 내세우지만 기묘하게도 탈권위주의적 프로그램의 태도가 돋보인다. 먼저 <흑백요리사>는 참가자를 흑수저와 백수저로 나눈다. 명장 계급과 그의 자리를 엿보는 도전자 계급. 얼핏 수직적 구조를 발판 삼은 여느 서바이벌처럼 보이지만 계급 상승의 욕망을 더 자극하기 위해 흑수저간에 세부 계급을 나누지 않고, 흑백이 동등하게 평가받고 겨룬다는 점에서 기존 서바이벌 문법을 벗어난다.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주목받게 한 블라인드 심사 또한 경직된 위계를 은연중 허문다. 이 설정은 참가자의 정체를 모른 채 공평하게 평가한다는 기본적인 목표를 뛰어넘어 <흑백요리사>의 코어를 이루는 백종원과 안성재의 심사 자격을 시청자가 직접 확인할 기회를 준다. 한 스푼 맛보는 것만으로 재료의 쓰임과 장르, 곁가지 부자재를 추정해내는 그들의 오랜 경험과 섬세함은 <흑백요리사>가
[이자연의 TVIEW]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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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기 십스테드 지음 민승남 옮김 문학동네 펴냄
돌아보지 않는 법을 아는 캐릭터를 언제나 부러워해왔다. 현실에 주저앉지 않는 법, 실망하지 않는 법에 대해서라면 얼마든 자기 계발서를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만으로 무력감만이 강해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 모든 것이 ‘나’에 수렴하는 문제인 것만 같아서. <그레이트 서클>은 모든 것이 ‘나’에 수렴한다는 자기 인식으로 세상 끝까지 날아오르는 이야기다. 거침없고 대담하게. 인생이라는 이야기를 거대하게 상상할 줄 알았던 두 여성의 이야기는 소설 속 문장을 빌리면 당당한 선언처럼 느껴진다. “세상은 펼쳐지고 또 펼쳐지며, 언제나 끝이 없다. 하나의 선, 하나의 원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앞을 바라본다. 수평선이 있다. 뒤를 본다. 수평선. 지나간 것은 잃어버린 것이다. 지금의 나는 미래에 이미 잃어버린 것이다.”
소설의 제목인 ‘그레이트 서클’은 구 위에서 그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원을 의미한다.
씨네21 추천도서 - <그레이트 서클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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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든 체임버스 지음 고정아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그것은 커다란 수수께끼 중 하나다. 우리가 상대방을 좋아한다는 걸 어떻게 몇분 만에 알게 되는 걸까?” 핼은 영국의 바닷가 마을에 사는 16살 소년이다. 핼은 어릴 때 TV에서 두 소년이 나오는 영상을 보았다. 둘은 아서왕의 돌에 칼을 간 뒤 서로의 손을 긋고 두 피를 섞어 맹세한다. “이제 우리는 영원한 단짝 친구야.” 핼은 이때 이후로 언제나 충실하고 서로의 곁을 지켜줄 단짝 친구에 대한 환상을 품는다. 내게도 언젠가 그런 친구가 나타날 거야. 그 경이로운 운명은 어느 날 갑자기 핼의 앞에 나타난다. 핼이 탄 요트가 폭풍에 휩쓸리자 바다에서 갑자기 나타난 배리가 그를 구해주고 집에 데려가 옷을 갈아입히고 따뜻한 음식을 먹인다. “너는 어디서 나타나 나에게 이런 호의를 베푸는 거야”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짧은 시간 핼은 배리와 뜨거운 애정을 나누게 된다. 여름에 만난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은 고작 7주였다. 16살의 여름,
씨네21 추천도서 -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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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한기, 한유주, 박소희, 장희원, 이지 지음 비채 펴냄
디저트를 언제 먹더라. 단것을 무지 좋아해 고속노화의 길을 향해 스피드를 올리고 있는 내 경우에는 단것을 혼자서도 찾아 먹지만, 대부분은 누군가와 식사 후 더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음료와 함께 찾아 먹을 것이다. ‘디저트를 소재로 단편소설을 써주세요’라고 청탁을 받았을 5명의 작가를 상상해봤다. 원하는 디저트를 하나씩 결정하고, 이 디저트를 누군가와 함께 먹는 것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오한기, 한유주, 박소희, 장희원, 이지 작가가 디저트를 테마로 완성한 단편소설 앤솔러지 <녹을 때까지 기다려>는 그렇게 탄생한 소설집이다.
누구에게나 최애 디저트가 있을 것이고, 하나의 디저트로 소설을 써야 한다면 어떤 디저트를 선택할까. 오한기는 초콜릿을, 한유주는 이스파한을, 박소희는 젤리를, 장희원은 사탕을, 이지는 슈톨렌을 소재로 썼는데 각기 다른 디저트의 종류만으로도 작가의 개성이 보이는 듯하다. 이것이 소설인지 에
씨네21 추천도서 - <녹을 때까지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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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책 제목을 읽고 나는 순간 다소 경박하게 소리내 웃고 말았는데, 영화 제목 <헤어질 결심>이 (<헤어질 결심>의 제작 과정을 담은) 사진집 제목 <어떻게 헤어질 결심을>으로 바뀐 언어유희가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다. 이 사진집의 제목은 ‘나는 어떻게 <헤어질 결심>을 만들었는가’의 맥락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어떻게 헤어질 결심을 할 수 있지?’처럼 경악을 동반한 질문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러게, 어떻게 헤어질 결심을 한 거야, 혹은 만든 거야? 박찬욱 감독이 쓴 서문에 따르면 <헤어질 결심>은 팬데믹 기간을 관통하여 2022년 5월 경기도 파주에서 완성되었는데, 그 4년 가까운 시간 동안 찍은 사진들 중 일부를 골라 <어떻게 헤어질 결심을>에 실었다고 한다. “내 주장에 의하면 모두 제작 현장 사진이다. ‘어떻게 헤어질 결심을’ 만들까 대개 그 생각만 하던 때였으니 어디를 가나 내게는
씨네21 추천도서 - <어떻게 헤어질 결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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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 지음 창비 펴냄
할 말이 없다는 기분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없다는 뜻은 아닌데, 할 수 있는 말을 고르는 게 적잖이 괴로워서다. 이 괴로움은 나의 몸 안에서부터 솟아오르기도 하고 바깥을 향하는 시선으로부터 비롯되기도 하는데, 어느 쪽이든 침묵 속에서 잠잠히 마음을 놓고 있는 편이 좋게 느껴지는 상태다. 그러다 보면 어라, ‘이 상태를 좀 좋아하는지도?’라는 깨달음에 도달하기도 한다. 내 안에 고여 있는 언어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 같은 썩 괜찮은 기분을, 박연준의 <마음을 보내려는 마음>을 읽으며 느꼈다. 시인이자 소설가, 에세이스트인 박연준의 새 에세이다.
“골동품과 유실물은 같은 공간에 담긴다. 서로를 노려본다. 낡아가는 일과 잊히는 일 중에 무엇이 더 나쁜가 생각한다.” <마음을 보내려는 마음>에서 눈길이 가는 단어들은 모두 시간과 관련이 있다. 맨 처음에 등장하는 시간은 새벽이다. 아침, 점심, 저녁, 밤으로 4등분되어 존재
씨네21 추천도서 - <마음을 보내려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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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보내려는 마음> 박연준 지음 /창비 펴냄
<어떻게 헤어질 결심을> 박찬욱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녹을 때까지 기다려> 오한기, 한유주, 박소희, 장희원, 이지 지음 /비채 펴냄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 에이든 체임버스 지음 고정아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그레이트 서클1, 2> 매기 십스테드 지음 민승남 옮김 /문학동네 펴냄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9월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