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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편집장] 잘 버티는 중. 앞으로도 잘 버틸 예정
송경원 2024-04-12

총선 결과를 보며 문득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가 떠올랐다. 자전적 기억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콜럼버스의 달걀’이 생각난다. 가장 개인적이기에 가장 창의적이고 동시에 정치적인 이 영화는 당연하지만 인지하지 못했던 진실을 일깨운다. 내 삶이 누군가의 배경이 아니고, 내가 서 있는 이 순간도 역사의 일부이며, 사회의 모든 요소는 연결되어 영향을 미친다는 당연한 사실. 입주 가정부 클레오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로마>는 얼핏 지극히 사적인 드라마처럼 보인다. 무책임한 남자를 만나 계획에 없었던 임신을 하고, 설상가상 고용주 남편의 외도로 직장마저 잃을 상황에 놓인 원주민 여성의 이야기.

하지만 개인의 어떤 서사도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숙고하는 카메라는 현미경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망원경으로 확장되는 법이다. 입주 가정부 클레오의 굴곡진 삶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동시에 멕시코 원주민의 역사와 애환이 녹아 있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로마>는 1971년 멕시코의 ‘성체 축일 대학살’을 배경으로 한 순간부터 실패한 혁명의 열망과 그럼에도 이어져야 할 생의 의지에 대한 촘촘한 메타포를 벗어날 수 없다. 그렇게 사회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한 설사 위치가 다를지라도 우리의 삶은 기억으로 이어진다. 기억은 곧 역사다.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 공동체의 방향이 결정된다. 문제는 거리감이다. 파도처럼 퍼져나가는 충격은 각자가 선 위치에 따라 각기 다른 시간대에 도착한다.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충격을 받았을 때, 이태원 참사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냈을 때도 깊은 슬픔에 잠기긴 했지만 내 삶에 끼친 직접적인 영향을 느끼진 못했다. 당장 주변의 변화를 체감하기도 어려웠다. 슬픔은 일상의 분주함에 씻겨내려가고, 파도처럼 밀려오는 또 다른 사건, 사고와 함께 멀어져간다. 그럴 거라 생각했다.

지금에 와서 보니 거리감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너무 멀리 있는 것은 때로 시간이 지나야 제대로 볼 수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어느덧 10년, 누군가는 지나간 과거라며 적극적인 망각을 권유하지만 슬픔의 여진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지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게 착각이었다. 지금은 안다.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한 애도는 멀어져가는 파도에서 맴도는 메아리로 탈바꿈한다. 정도와 형태가 다를 뿐 그날 이후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버티는 중이다.

날이 갈수록 버텨야 할 일들이 점점 늘어난다. 영화에는 과거를 현재의 것으로 되살리는 힘이 있다.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특집을 준비하며 새삼 버티는 힘에 대해 생각해본다. 곽용수 인디스토리 대표의 말처럼 “그저 버티는 중”인 독립영화인들의 존재는 그것만으로도 절실하고 소중하다. 총선 개표방송 말미 유시민 작가는 “이 선거 결과가 (제도적으론) 현실을 못 바꿀 거다. … 나의 비관이 틀리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맞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이유는 될 수 없다. 버티는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투쟁이다. 되돌아보니 그동안 익숙한 슬픔에 길들여져 기쁨에 지나치게 인색했던 것 같다. 충분히 기뻐해야 계속 버티고 싸울 수 있다. 부디 작은 기쁨을 놓치지 않는 밝은 눈이 여기저기 꽃처럼 피어나는 봄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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