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첫사랑 기억 조작이란 단어가 유행했다. 따지고 보면 제법 잘 어울리는 단어 조합이다. 돌아갈 수 없는 호시절을 회상할 때면, 아리고 부끄러운 실수마저 풋풋하고 서툴러서 끝내 그리운 순간이 된다. 동명의 대만 청춘영화를 리메이크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노스텔지어를 자아낼 얼굴로 진영과 다현을 선택했다. 개인 촬영의 순서를 정하기 위해 촬영장에서 가위바위보를 하던 두 사람의 모습마저 학창 시절 누군가의 일기 속 한 페이지처럼 보였다.
- 10년 차 배우 진영에게도, 첫 연기 도전에 나선 배우 다현에게도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진영 최근엔 드라마 위주로 활동했지만 항상 영화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다섯 번이나 볼 정도로 원래부터 원작을 좋아했었다. 시나리오가 들어오기 한 달 전에도 볼 정도라 작품 제안을 받았을 때 운명임을 직감했다. 시나리오를 살펴보니 그간 연기했던 작품 중 가장 분량이 많았다. 화면에 등장하지 않아도 내레이션으로 등장할 정도였다. 어떻게 힘을 분배하고 극의 중심을 잡을지 고민할 수 있는 계기였다.
다현 데뷔 때부터 연기에 도전하고 싶었다. 대본이 들어왔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촬영에 들어간 뒤로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었다. 즉각적으로 반응을 느낄 수 있는 무대와 달리 연기는 녹화된 장면을 바로 확인할 수 없어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노래를 부를 땐 정확한 음정을 내기 위해 노력했는데 대사를 소화할 땐 어미의 길이나 높낮이를 내는 방법에 정답이 없다는 점이 어렵지만 흥미로웠다.
- 2000년대 초반이 배경이다. 극 중 선아와 진우는 고등학생이지만 실제로 두 배우는 당시 매우 어린 나이였다. 온전히 경험하지는 못한 시절의 향수를 구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진영 2002년 월드컵 당시 초등학생이었다.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이탈리아전 거리 응원에 나서 승리의 눈물을 흘리던 기억이 생생하다. 물론 그 시절의 고등학생을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2000년대 초반을 떠올릴 때마다 느껴지는 행복한 기억을 최대한 녹여냈다.
다현 부모님과 감독님을 포함해 주변에서 많은 이야기를 접했다. 유행했던 음악이나 연예계 소식을 직접 찾아보기도 했다. 특히 촬영장에 들어가 소품을 접하면서 공간이 주는 힘에 한결 익숙해졌다. 가로 본능 폴더폰은 촬영장에서 처음으로 실물을 보았다. (웃음)
- 진우도 선아도 평범한 소년, 소녀다. 하지만 두 사람이 빚어낸 첫사랑은 서툴고 아리다.
진영 진우는 꾸밈없고 감정에 솔직하다. 하지만 지키고 싶은 대상 앞에선 덜컥 겁이 나 감정을 오히려 숨기고 만다. 그런 진우의 성향 때문에 선아를 놓친 것 같다. 사실 어린 시절 다들 그런 모습을 띠지 않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짓궂은 장난만 늘고 고백은 절대 못 한다.
다현 선아는 모든 사람의 선망을 받는다. 하지만 선아의 시선은 언제나 자신의 결점에 머물러 있다. 영화엔 드러나지 않지만 대본에 묘사된 선아는 맏이이자 가장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지니던 인물이었다. 그런 선아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는 버팀목이 되어줄 단단한 사람이다.
- 진우와 선아는 결정적인 여러 순간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지 못하고 엇갈린다. 두 인물이 내린 수많은 선택 중에서 가장 미련이 남았던 순간이 있다면.
진영 격투기 대회가 끝나고 선아와 크게 싸운 날, 비를 맞으며 진우는 버럭 화를 내고 돌아선다. 이때 흘러나온 ‘머리는 아니라고 말하는데 몸은 가고 있다’라는 내레이션이 내내 맴돌았다. 지금 돌아보면 어린 마음에 내세운 자존심을 거둘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진우라면 그 선택에 후회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다현 졸업식이 끝나고 다리 위를 걷는 진우와 선아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는 장면이 있다. 서로 다른 대학을 진학해 아쉬운 두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다. 진우의 ‘교대에 남자가 많냐’는 물음에 선아는 ‘연애도 하겠다’고 받아 친다. 누구와 연애하고 싶은지 물어봐 주었으면 하는 의도가 담긴 대답이다. 그때 진우가 얼버무리지 말고 확실히 표현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어른의 시점에서 청춘의 한 시절을 추억한다. 누구보다 밀도 높은 10대를 보낸 두 사람의 입장에서 돌아보는 청춘은 어떤 모습인가.
진영 고등학교 시절 연기가 하고 싶어서 주말마다 충주에서 서울로 올라갔다. 연기를 배우면서 단역, 보조 출연 기회를 잡았었다. 당시 충주에는 연예인 지망생이 드물어서 그런지 뒷모습만 나와도 친구들이 신기하게 바라봤다. 꿈을 위해 사는 나를 열심히 응원하던 고등학교 친구들의 모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다현 중2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시작해 고2 때 데뷔한 이래로 하루에도 7~8개씩 스케줄을 소화할 정도로 분주하게 지냈다. 그룹 활동을 하면서 멤버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순간들도 참 많았다. 그때 그 시절의 내 모습이 전부 영상으로 고스란히 남겨졌더라. 돌이켜보면 모든 시간이 내게는 아름다운 청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