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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그럽게 차가운 샘 멘데스의 영화 데뷔작 <아메리칸 뷰티>

아름답긴 뭐가 아름다워!

또 베이비 붐 세대 얘긴데, 지난해 9월, 베이비 붐 세대 남자들의 페이소스를 다룬, 은유로 충만한 작품 두편이 나왔다. 중년의 위기에 관한 음울한 코미디 <아메리칸 뷰티>, 그리고 신심 돈독한 전직 야구 선수가 등장하는 최루물 <For Love of the Game>이 그들.

줄거리는 똑같이 ‘이 양반아, 앞가림 잘해서 한번 회춘해봐’ 이런 얘기지만, 태도는 조금 다르다. <아메리칸 뷰티>는, 단박에 눈길을 끌어보자는 속셈에선지, 불만투성이 10대가 홈비디오에 등장해서 “딸 친구한테 군침이나 흘리는 별같지 않은 놈팡이가 아니라, 남보기 번 듯한 범생이 아빠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다”고 투덜거리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이 ‘미짜’는 자기 아빠가 “살려두기엔 너무 창피한 인간”이라고 여기는데, 실제로 그 말대로 됐다고 황천길에 오른 주인공의 내레이션이 전한다.

열없고 악취미적인 <아메리칸 뷰티>는 <Married… With Children>이 양산한 아류 가족시트콤의 시큼 꿀꿀한 냄새를 풍긴다. 배경은 전형적인 교외 주택가, 집들은 스테이지 세트 그 자체다. 레스터와 캐롤린 버냄 부부, 그들의 딸 제인은 불행한 중산층 미국인 가정의 표본이다. 인생의 낙오자(케빈 스페이시), 밉살스러운 아내(아네트 베닝), 그리고 싹수없는 10대 딸 제인(도라 버치)는 나름대로의 패배감과 서로에 대한 증오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 레스터는 모가지가 간당거리는 광고사원이고, 캐롤린은 집 한채 못파는 부동산 중개인이다. 셋 중 그래도 가장 호감가는 인물인 제인은 그녀 계급의 특징인 음울한 자기혐오에 폭 빠져 있다.

연극계의 신동 샘 맨데스(<파란 방> <카바레>)가 연출하고 앨런 볼이 각본을 쓴 <아메리칸 뷰티>는 어떤 면에서 영화산업을 은유하고 있다. 그것은, 관능적인 입술과 극단적인 금발을 자랑하는 딸의 단짝 친구(미나 수바리)를 향한 중년 레스터의 인생을 뒤바꿔놓는 욕정에 기반해 있다. 아메리칸 파이의 맛을 자기도 좀 봐야겠다는 거지. 두 소녀 사이에서 오가는, 두려움과 혐오로 범벅된 대화가 이 영화에서 가장 큰 공명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지만, 그렇다 해도 캐더린 브레일랏(?)의 경지에는 결코 이르지 못한다. 레스터의 치명적 사랑에 있어서 가장 괴상한 대목은, 그 해방감 넘치는 자아실현이다.

스페이시는 배역을 최소한으로 연기함으로써 매력적인 비열한을 연출해냈다. 베닝에 대해서는 같은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스페이시의 경우 일단 캐릭터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순간부터, 연기가 껑충 월반한다. 여기는 남자들의 세상, 아니 적어도 머슴애들의 세상이니까. 샤워실에서가 아니라 부부용 침대에서 딸딸이를 치고, 이웃집 아들 리키(목석 같은 웨스 벤틀리)와 마약을 빨아대고, 차고에서 운동을 하면서 사춘기 시절에 즐겨듣던 클래식 록을 다시 틀고, 직장을 팽개치고 햄버거굽는 일자리를 얻는 등, 레스터의 퇴행은 의기양양하기 짝이 없다. 그에 반해 아내 캐롤린은 그저 싸구려 모텔에서의 불륜이라는 힘빠지는 어른 세계의 시나리오를 재현하고 상상 속에서나 복수를 꿈꿀 수 있을 뿐이다. 캐롤린판 자아실현이란 44구경 매그넘 사격술을 배우는 것이 고작이다.

스페이시 연기 분량은, 이 영화의 다른 부분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짓궂고 도발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피터 갤러거가 자필서명처럼 연기하는 부동산 중개인이나 옆집에 사는 음울한 미국판 괴담가족을 비롯한 나머지 배역은 주로 소품 노릇에 그친다. 대사는 대부분 지나치게 가라앉아 있고, 코믹한 완급조절은 눈씻고 봐도 없다. 멘데스는 첫 번째 장편영화를 만들면서, 시각적인 응집력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이 그저 지나치게 양식화한, 장난기가 어린 자연주의에만 목매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멘데스 감독은 이 수법 저 기법 전전하는데, 예를 들어 비디오 감시 모드로 넘어가는가 하면 오버헤드 앵글로 건너뛰고, 상징적인 장미꽃잎으로 뒤덮었다가 다음 장면에서는 과시적인 명암법에 의지하고, 이도저도 다 실패하자, 밖으로 슬며시 나가 빗물에 젖은 침실 창문을 통해 소프트코어 포르노 스타일로 액션을 잡아내는 식이다.

교외 중산층의 불안에 대한 멘데스의 이, 특별히 재미있지는 않더라도, 혹독하고 과장된 풍자는, <아이스 스톰>을 뜨거운 영화 휴머니즘으로 점철한 미묘한 걸작으로, 독설가 토드 솔론즈를 조너선 스위프트적 천재로 보이게 한다. 황량한 대로, <아메리칸 뷰티>에는 일정하게 파괴적 매혹을 불러일으키는 구석이 있지만, 온갖 데를 다 기웃거리느라, 내러티브의 흐름이라고는 전혀 없다. 애써 궁리해낸 그 제목이 암시하는 대로, 이 영화는 징그럽게 차가운 영화다. 액션이 마침내 드라마로 응축될 때까지 모든 요소가 힘겹게 한곳으로 모여들며, 성적인 진실이 밝혀지는 가운데, 얼음장처럼 차갑게 절정에 이른다.

그 분위기는 잉마르 베리만의 작품처럼 냉랭하지만 <아메리칸 뷰티>에는 뉴에이지 신비주의의 강한 비트가 느껴진다. 세대단절이라는 주제에 맞게 (마약 중독자인 동시에 아방가르드 비디오 아티스트인) 젊은 리키는 레스터에게 이런 명언을 들려준다. “이렇게 아름다움으로 넘치는 세상에서 계속 미치광이로 남아 있기란 힘든 법이죠.” 말이야 쉽지. 멘데스조차 자기 영화에 적용하지 않는 교훈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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