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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호 감독의 <동화>, 선댄스 단편경쟁부문으로
사진 이혜정이영진 2000-01-11

이지호(28) 감독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그의 영화 <동화>(32분, 35mm)가 선댄스영화제 단편경쟁부문에 진출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부터다. 뉴욕에서 태어나 살아온 그가 고국에 들어온 지는 겨우 3년. 모국어가 자신을 말해주기란 아직 버겁지만 대신 영화는 성적 판타지까지 보여줄 만큼 겁없다. 96년 귀국해 삼성영상사업단에서 2년 정도 음반프로듀서로 일하며 모은 돈 2천만원을 포함한 3천여만원을 <동화> 제작에 털어넣었다. 단편영화인 데다 시나리오까지 뽑아놓은 상태였지만, 기획해서 제작하기까지 1년 반이나 걸렸다. 이중 촬영기간은 2주일. 아는 사람도 없었지만 아무하고나 대충 영화 찍긴 싫었는데, 운 좋게도 유능한 스탭과 배우들이 거의 무보수로 함께 일해줬다고.

<동화>는 악마인 야마모토 부인(이혜영)이 진호(이지호)에게 자정까지 그가 원하는 여자들 모두와 잠자리를 갖게 해주겠다는 제안으로 시작한다. 단 조건은 선택한 여자들이 홀수여야 한다는 것. 진호의 욕망은 시침이 자정을 가리킬 때까지 계속되지만 13번째 여자가 첫 번째 여자와 동일인임을 알게 된 순간 죽음이 엄습하고, 모든 걸 잃는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때 제목만 믿고 아이와 함께 온 관객의 항의에 제작진은 진땀을 흘리기도 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원작에 만화적 상상력을 맛나게 입혔다는 평가를 받은 <동화>는 성적 판타지를 다룬 영화들이 단순한 볼거리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을, 밀도 있는 구성과 리드미컬한 편집으로 피해간다. 어어부 프로젝트 밴드의 음악도 이미지에 밀리지 않고 팽팽한 긴장을 유지한다.

웨슬리안대에서 영화와 철학을, 뉴욕대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한 이지호 감독은 재학 시절 16mm 단편 <광대>로 시카고 국제영화제에서 최고학생영화에 수여되는 휴고상을 수상했으며, 95년에는 <동화>로 마틴 스콜세지가 주최하는 시나리오 공모전 최우수상을 받았다. 올 6월 하버드 MBA과정을 마치는 그는 선댄스영화제를 위해 1월19일 미국으로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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