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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13년만의 역작 <고하토>

아름다운 이단자, 20C를 닫는다

<하나비>로 베니스 금사자상을 받은 기타노 다케시 감독, <달은 어디에 떠있는가>로 일본내 영화상들을 휩쓸었던 최양일 감독, <마지막 황제>의 음악을 맡았던 작곡가 사카모토 류이치, 로버트 알트만과 작업했던 구리다 도요미치 촬영감독, 니시오카 요시노부 미술기사,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난>으로 아카데미 의상상을 수상한 디자이너 와다 에미. 이들 일본 영화 각 분야의 스타들이 한 영화의 배우나 스탭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60년대 일본 뉴웨이브의 기수였던 이른바 '운동권 출신' 오시마 나기사 감독(大島 渚,67)이 13년 만에 발표한 신작 <고하토>(御法度, 금기)가 바로 이같은 '드림팀'의 작업이다. 제작단계에서부터 화제가 돼온 <고하토>는 12월18일 일본 전역에서 개봉했다.

<고하토>는 개봉전부터 일본 평론계로부터 만장일치의 반응을 얻었다. 지난 11월8일 첫 시사회가 열린 뒤, 비평가들은 “세기말 일본영화의 마지막 걸작”이라며 흥분했다. “정통과 이단의 피안에서 처연하게 빛나는 역작” “사무라이들의 에로스와 살기(殺氣)를 통찰한 영화” “아름다운 이단자 오시마 감독의 새로운 족적”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전례없는 상찬 일색이다.

드림팀의 역작, 30개국 개봉 확정

이 노장의 역작에 대해서는 이미 세계의 유명 감독들이 환영사를 발표해놓은 상태다. 짐 자무시 감독은 “오시마 감독은 내게 선생 같은 존재이자 세계적 거장이다.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신작의 성공을 기원한다”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은 “난 스페셜 오시마 이펙트(SOE), 즉 오시마 감독의 특별한 영상 표현법을 고대해 마지 않는다”고 밝혔으며 로버트 알트먼 감독은 “오시마 감독의 신작은 그 자체로 용기있는 프로젝트다. 병환을 딛고 일어서 영화를 완성한 영웅에게 건배를!”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고하토>는 이미 미국과 유럽 등 이미 30여개국에서 개봉이 확정된 상태다.

<고하토>는 한 시대의 살기와 광기를 통해 조직과 개인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시바 료타로의 소설 <신선조 시말기>에 수록된 작품들을 영화화한 시대극이다. 배경은 막부 시대의 일본. 도쿠가와 막부가 세운 신센구미(新選組)라는 무사 조직이 주로 치안 유지와 교토 지역의 평화 유지를 위해 활동한다. 건조하고 삭막한 남성들 집단에 아리따운 미소년 소자부로가 입대한다. 조직 내부엔 소년의 미모 때문에 스캔들과 질투가 일기 시작한다. 신센구미의 사무라이들은 소자부로를 사이에 두고 권력 다툼과 동성애 문제로 뒤엉키면서 어처구니없는 혼란 속으로 빠져든다.

미소년, 남성 사이에서 스캔들 일으키다

기타노 다케시와 최양일 감독이 배우로 기용됐으며 전설적 스타 마쓰다 유사쿠의 아들인 마쓰다 류헤이가 주인공 소자부로 역을 맡아 화제를 낳은 바 있다. 반대로 여자배우는 한 사람도 없다. 일본 영화의 대표선수들을 출전시켜 작품 한편을 완성한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자신이 현대 일본영화계의 구심점임을 20세기의 마지막 순간에 재확인하는 듯하다. 영화제작이 끝난뒤 인터뷰에서 오시마 감독은 "이제는 모두들로부터 칭찬받는 일만 남았다. 지금까지의 작품엔 조금씩 불만이 있었으나 이번엔 아주 만족한다"며 오만하다하리 만큼 자신만만해 했다. <고하토>는 일본영화의 신세기를 향한 신호탄이 될 것 같다.

"노골적인 동성애영화? 아니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 인터뷰

-13년 만에 신작을 만든 소감은.

=기쁘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겠죠. 안도의 한숨이라도 쉬고 싶은 기분입니다. 3년 전 <고하토> 제작 발표회를 가진 뒤 제가 갑작스레 병상에 눕게 된 적이 있습니다. 스탭들 전원에게 약속을 했어요. 꼭 완성된 영화를 보여주겠노라고 말이지요.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만족하고 있습니다.

-<고하토>는 영상과 캐릭터, 의상 등 영화의 모든 요소가 개성적으로 보입니다.

=제 자신의 스타일을 정공법으로 밀고 나간 탓이겠지요. 특출난 스탭이 모여준 까닭에 개성적 표현이 가능했으리라고 봅니다. 제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에 저와 비슷한 스탭들이 모여준 것인지도 모르지만.(웃음) 스탭들 전원이 수고해 주었어요. 특히, 교토의 스탭들이 고생했습니다. 교토에서 시대극을 촬영한다는 것은 그만의 가치가 있지요. 예를 들어, 비가 오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다고 하면 빗줄기 자체가 도쿄와는 많이 달라요. 말할 수 없이 훌륭한 느낌이 배어나지요. <고하토>는 이런 감정에 집중해서 스크린으로 옮겨낸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타노 다케시 등 유머있는 배우 혹은 감독을 연기자로 기용했는데요.

=제가 관서지방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유머있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힘’을 유독 강하게 느끼는 탓입니다. 얼굴은 사람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겠지요. 사람의 삶이 그의 얼굴을 만들어 가게 마련입니다. 기타노 다케시의 경우, 몇년 전 교통사고를 당하고 구사일생의 경험을 한 뒤 지금의 얼굴이 되었죠. 제 영화에 어울리는, 사무라이 캐릭터에 딱 맞는 얼굴이 된 겁니다. 기타노 다케시뿐 아니라 <고하토>에 출연한 배우 중 영화에 그럴싸하게 어울리는 배우가 있다면, 그가 이제까지 <고하토>에 어울릴 만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겠지요. 전 그 점을 알아보고 출연 여부를 결정한 겁니다.

-감독은 60년대에 성과 폭력의 모티브에 집중했으며 조직과 체제에 줄기차게 반기를 든 바 있습니다. 이번 영화엔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제 자신이 일본이라는 사회 체제에 이미 강하게 소속된 사람이 돼버렸다고. 어느 때보다 스스로에 대해 솔직한 영화를 만들었어요. 아마도 병으로 쓰러졌던 경험이 큰 원인이 되었을 겁니다. 3년 전에 아무 일 없는 상태에서 촬영장에 들어섰다면 또 무엇이 달라졌을지 저도 알 수 없습니다. 나이를 강하게 의식하게 된 상태에서 만든 이번 영화는 분명히 뭔가 크게 변화한 점이 있겠지요.

-<고하토>는 사무라이 시대극이지만 유럽영화처럼 ‘우아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우아하다는 표현을 듣는 건 처음입니다. 기쁘네요. 아마도 제가 우아한 사람이라서 그런 영화가 나왔겠지요.(웃음) 영화에 에로스라든가 살기라는 표현이 적당한 장면이 있긴 해요. 미소년이 등장하는 탓에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긴 하지만 <고하토>는 노골적인 영화는 아니에요. 주연 마쓰다 류헤이도 영화 시사를 보기 전까진 ‘남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기가 왠지 싫어요’라고 했어요. 하지만 시사를 보고 나자 반대로 ‘친구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라고 했습니다. 참 정직한 배우예요.(웃음) 영화를 직접 보고 판단하길 바랍니다.

-최근 영화감독들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좋은 감성을 지닌 감독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기필코 새로운 영화를 만들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지닌 연출자들이 좋은 기술력의 스탭과 결합해 작업한다면 바람직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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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은 일본 영화격주간지 <키네마순보>와 기사교류관계에 있습니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이 인터뷰는 <키네마순보> 12월 하순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