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현장 제작인력의 90% 이상이 비정규직(단속적 계약직), 오락문화운동 서비스업의 69%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은 비율. -제작사와 직접 고용은 40%에 불과, 도급계약이 41%, 개별계약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도급형태 18%. -연간 평균 참여 작품 수는 1.24편, 연간 6.32개월만 취업 상태. -영화스탭의 작품당 평균 수입은 540만원, 환산된 평균 연봉은 640만원. 이는 비정규직 평균 연봉 1236만원의 51.3%. -1일 평균 촬영시간: 8시간 1.3%, 13∼16시간 39.4%, 16시간 이상 34.8%. -4대 보험에 모두 가입된 영화산업 종사자 비율은 1.43%에 불과, 4대 보험의 혜택을 전혀 적용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54.8%.
한국 영화산업의 고용 실태, ‘영화산업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 자료 중에서
영화노조가 움직인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하 영화노조)은 지난 4월14일 국회에서 열린 ‘영화산업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영화노동자 임금의 주급 정액제와 직능·직급별 최저임금의 하한선 확보”를 단체협상의 입장으로 제시했다.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이 주최한 이번 토론회에서 ‘영화산업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방안’을 발제한 영화노조 김형호 정책실장은 “이 문제는 개인의 접촉으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사용자 단체와의 단체협약이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노동조합 설립을 통해 ‘영화노동자의 노동자성’에 대한 기반을 마련한 영화노조가 조합원의 실질적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한 것이다. 영화노조는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와의 노사 단체협상을 위해 협상안을 이미 발송한 상태다.
영화노조, 주급정액제 등 단체협상 준비 중
영화노조는 “정당한 근로계약의 체결을 위해 표준 근로계약서의 정착을 촉구”하고 계약서의 가안을 예시했다. 또한 국내 영화제작 환경과 해외 사례를 고려하여 “1일 12시간, 1주 60시간의 근로시간제”를 제안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영화노동자는 “평균 주당 5.5일, 58.4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산정됐다. 단체협상의 핵심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은 임금 부분에서는 근로기준법 제42조 제2항(임금은 매월 1회 이상 일정한 기일을 정하여 지급하여야 한다)을 근거로 “주급 정액제의 시행과 직능별 최저 가이드라인을 설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형호 실장은 “계약금, 잔금으로 나눠 지급하는 현재의 관행 때문에 임금체불 문제가 자주 발생한다. 주급 정액제가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영화노조는 이러한 최저 주급의 산정을 위해 참여작품 수와 직급 및 직능에 따른 계산 방식도 함께 제시했다. 이 밖에도 휴일과 휴가의 사용, 각종 수당문제, 모성 보호, 성평등의 실현, 산재 예방, 4대 보험 가입, 직업능력 개발사업 등 개별 사안에 대한 영화노조의 다양한 입장이 토론회를 통해 발표됐다. 영화노조는 항목마다 단체협약의 예시를 명기함으로써 이번 토론회의 발제 내용이 “향후 단체협상의 토대가 될 것”임을 암시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제협 오기민 정책위원장은 “임금 체불이나 비인격적 대우 같은 사안은 엄정한 법적 대응으로 해결해야 할 당연한 전제조건”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단체협상을 통한 임금 상승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것은 2∼3년 뒤에도 반복될 현상”이라고 부정적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2002년 ‘비둘기 둥지’ 설립 이후, 스탭들의 평균 임금은 80∼130% 정도 상승했다. 문제는 그것이 하위 스탭의 처우 개선에는 별반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는 점. 오기민 위원장은 “이러한 움직임이 영화제작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기회임은 틀림없다”며 “다만 현재 풍토에서 주급 정액제가 일률적으로 강행된다면 자칫 해고가 빈번하게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김형호 실장은 “채용의 객관적 기준만 확보된다면 근로기간과 급여기간이 일치되는 점을 감안할 때 주급제로 인해 고용 기피나 해고가 쉽게 증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영화노조와 여섯 차례 워크숍을 거쳐 발제자로 참여한 민주노동당 목수정 문화정책연구원은 프랑스의 공연예술 비정규직 실업급여제도(이하 앵테르미탕)를 언급했다. 앵테르미탕 제도는 “실업과 취업을 단속적으로 반복하는 속성을 가진 문화예술 분야의 직업인들에게 공연(혹은 촬영)이 없는 기간에도 실업수당을 지급함으로써, 이들이 안정적으로 작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이다. 목 연구원은 앵테르미탕의 사례를 통해 국내 영화산업 노동환경에 적합한 유사 제도의 적용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영화산업 종사자 중 “4대 보험에 가입한 노동자의 비율이 1.43%, 고용보험 적용 대상자가 3.8%에 불과하다”며 “비정규직 중에도 특히 산업특성상 고용과 실업을 반복하는 단속적 노동 형태를 거듭하는 영화산업 종사자는 기존의 고용 개념을 적용해서는 해결점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목 연구원은 “고용보험의 확대 재편을 위해 보험료의 누진 적용과 특별세나 기금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 고용보험의 탄력적 적용을 통해 단속적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포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처우 개선과 전문성 제고는 동전의 양면
두 차례의 발제가 끝나고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이종수 노무사는 “무엇보다 근로관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근로기준법을 전면적으로 적용받고 부당 사례를 관리, 감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영화노조가 조합원의 가입률을 높여야 한다”며 노조의 역량 확대를 강조했다. 변영주 감독은 “개인적으로는 작품마다 스탭이 들어오면 바로 계약할 수 있도록 일정을 조정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그들이 1년에 두 작품은 할 수 있도록 하려 했다. 그러다보면 프리 프로덕션이 열악해지는 걸 피하기 어렵다. 감독 입장에서는 한 신이 하루 안에 촬영될 수 있을까 하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처우 개선과 전문성 제고’는 동전의 양면이다. 스탭 처우 개선을 다룬 토론회의 단골 메뉴인 ‘전문스탭제와 도제시스템의 완전한 해체’에 관한 논의도 거론됐다. 오기민 위원장은 “기사급은 1년에 1편만 해도 생활에 지장이 없다. 문제는 나머지 스탭”이라며 “스탭들의 참여 제작 편수를 높일 수 있도록 전문스탭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제협과 영화노조가 공동으로 논의해야 할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영화노조는 “열악한 제작환경과 교육, 재훈련이 전무한 상황이 선결되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전문스탭이란 전문 스크립터, 전문 조감독, 전문 포커스풀러처럼 작업 영역에 따라 해당 작업만 반복해서 기술적으로 숙련된 스탭을 의미한다. “한번 올라간 스탭의 개런티가 내려오지 않는 점”도 현실이며 “교육과 재훈련을 도외시하는 현장과 업계 분위기”도 사실이다. 영진위 김혜준 사무국장은 “인적 자원 육성을 위한 실무추진단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그는 “작품별로 영화노조가 제시한 조건들이 일부 수용되기 시작했다. 영진위가 스탭 처우와 근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가상의 노사협의회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노동연구원 황준욱 박사는 “현재로선 영화산업 종사자의 각종 평균값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수치보다는 M자형으로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영화산업의 임금 구조에 주목해야 한다. 사회적인 합의를 위해서는 노사 모두 시장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영화산업고용위원회 같은 형식으로 노사정을 대표하는 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토론회는 예고편 혹은 전초전 격이다. 제협과 영화노조의 단체협상을 기점으로 영화산업의 노동환경에 대한 논의는 본격적인 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프랑스의 앵테르미탕 제도
일 할 권리, 안정을 누릴 권리
목수정 민주노동당 문화정책 연구원은 “국내 영화노동자의 경우 고용의 반대가 실업이라고 볼 수 없다. 고용된 것만이 일하는 것이라는 통념을 깨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앵테르미탕은 그런 점에서 좋은 본보기”라고 말했다. 그가 발제한 프랑스의 공연예술비정규직(Intermittents du Spectacle, 일명 앵테르미탕)의 제도화가 프랑스에서 처음 형성된 것은 1936년이었다. 영화산업 지원책으로 출발한 앵테르미탕은 1969년부터 현재처럼 영화, 공연, 오디오영상 분야의 인력들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제도로 정착됐다. 앵테르미탕은 문화예술 분야의 특성상 취업과 실업이 반복되는 점에 착안하여 안정적인 작업을 유지하기 위해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것이다. 이는 문화예술 분야 종사자들의 작업 양상이 고용된 시간에 국한되지 않는 점과 급여 체계의 불평등 해소를 위해 고안됐다. 앵테르미탕은 배우, 연주자, 가수, 연출자, 영화감독, 기획자, 편집인, 음향·조명 기술자, 무대제작자, 소품기획자, 미용사, 분장사 등 공연, 영화, 방송 관련 종사자들을 포괄한다. 적용 기준은 연중 507시간(주 5일, 8시간을 기준으로 약 3개월)만 근로하면 나머지 기간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것. 2005년 프랑스 문화부의 보고에 따르면, 현재 프랑스 예술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는 30만명이며, 그중 절반인 15만명이 앵테르미탕에 속하고 10만명이 제도의 혜택을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