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만들어진 <벨파고>는 프랑스 안에서 꽤 인기를 끈 미스터리 블록버스터다. 루브르박물관이 영화 촬영장으로 처음 쓰였다는 게 특히 눈길을 끈다. 하지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떠올리고 극장을 찾는다면 낭패를 볼 수 있다.
3000년 전의 악령 `벨파고'가 다시 깨어나 루브르 이곳저곳을 배회하고 사고를 치지만 어딘가 좀 이상하다. 영화 초반부, 그와 마주친 경비요원들은 자기 내면에 숨었던 두려움이 현실로 나타나는 환상을 겪으며 끔찍하게 죽어간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벨파고는 사람을 해치려고만 드는 사악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긴박감 넘치는 미스터리로 받아들이기에는 부족함이 많지만 악령에 대한 시각이나 주요 캐릭터들에게서 유럽식 감수성이 묻어난다.
미로같은 옛 궁전 루브르의 내부에는 세계 각지에서 가져온 3만4천여점의 미술품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그런데도 아직 들춰보지도 못한 게 있었던가보다. 오랜 시간 창고에 쳐박혀 있던 이집트 석관 하나가 조사받기 위해 열리는 순간 갇혀있던 악령 벨파고가 활보하기 시작한다. 벨파고는 사람 몸을 빌어 뭔가를 찾아 헤매는데, 박물관 주위에 살던 리사(소피 마르소)가 그 숙주가 된다. 검은 미라 복장으로 루브르의 이집트관을 뒤지는 모습이 마치 홍콩영화에서 통통 뛰어다니던 강시의 서양 버전 같다.
리사를 구해내고, 벨파고의 비밀을 푸는 인물은 리사를 사랑하게 된 전기수리공 마틴과 과거에 벨파고와 악연을 맺었던 새 보안실장 벨락이다. 악마의 손아귀에 빠져든 매혹적인 여성 역에 하필 30대 중반의 소피 마르소를 맡긴 것도 그렇지만, 그를 구하는 `백마 탄 기사' 마틴(프레데릭 디팡달)이나 현명해야할 벨락(미셸 세로)은 어딘가 어리숙한 묘한 캐릭터이지만 매력적이다.또 다른 주인공은 루브르다. 승리의 여신 니케상, <모나리자> 등의 명물과 루브르 내부를 스치듯 감상할 수 있다. 또 80년대 일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사를 밀어붙여 루브르의 상징이 된 거대한 유리 피라미드의 건축 당시 모습도 볼 수 있다. 영화 막판, 루브르에 소장된 `약탈물'들의 원혼이 비로소 안식을 찾아 떠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감독 장 폴 살로메. 15일 개봉.
이성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