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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에는 있다 충무로에는 없다
2001-09-12

`충무로작가열전`, `할리우드작가열전`, 그리고 남은 이야기

고통과 해방 너무 힘든 나날이었다. 연재가 지속되는 동안 늘 명치끝에 커다란 돌덩어리를 하나 얹어놓은 느낌이었다. 무슨 놈의 돌덩어리가 수은보다 더 무거워 때때로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가을 지면개편에 즈음하여 연재를 마무리할 수 있겠느냐고 <씨네21>이 넌지시 물어왔을 때 앞뒤 가리지 않고 덥석 제안을 받아들인 것도 그 때문이다. 이제 나는 오늘 날짜로 해방이다. 정말이지 대학 때 곧잘 추던 해방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미욱한 녀석에겐 미련도 많은 법. 해방의 기쁨도 잠시뿐이고 이내 회한과 송구스러움이 몰려와 몇 마디 사족을 덧붙이며 연재를 마감하려 한다.

작가선정의 기준

일견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제법 깐깐한 기준이 있다. ①필모그래피가 최소한 5개는 넘어야 한다. 이는 1990년대 이후에 활동을 시작한 현역작가들에게는 꽤 부담스러운 기준이다. 나 역시 이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②작가 겸 감독의 경우는 제외한다. 장선우나 이명세 등은 훌륭한 시나리오를 많이 썼지만 이 기준에 의하여 제외된다. ③작가로 출발하여 감독이 된 경우, 감독이 된 이후에도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시나리오를 계속 쓴 사람만 포함시킨다. 김성홍이나 강제규 역시 한때 시나리오작가로 명성을 날렸지만 이 기준에 의하여 제외된다.

연재순서에 대한 오해. 연재순서는 중요도에 따른 것도 아니고 연장자순도 아니다. 대중적 주간지의 특성에 맞춰, 독자들이 흥미를 잃지 않도록, 활동시대와 중요도를 마구 뒤섞어 연재했다. 연재 도중 “왜 내가 누구보다 뒤에 나오느냐”는 식의 반응이 있었는데 이 점 오해없기 바란다.

활동시대에 대한 배려

한국영화사 전체를 균형있게 다루기 위하여 시기마다 적절한 숫자의 작가들을 선정하려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총 34인의 작가가 등장했는데 그들을 출생연도별로 분류해보면 ①1900년대(1901∼10년)에 출생한 작가 1명, ②1910년대 4명, ③1920년대 6명, ④1930년대 10명, ⑤1940년대 6명, ⑥1950년대 1명, ⑦1960년대 5명 등이다. 1930년대에 출생한 작가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그들의 주요활동시기라고 할 수 있는 30∼40대가 한국영화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60∼70년대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일어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1950년대에 출생한 작가가 1명만 선정된 것은 80∼90년대에 들어 각본과 감독을 겸하는 경우가 부쩍 늘어난 까닭이다. 1960년대에 출생한 작가가 5명 선정된 것은 그들이야말로 현재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현역작가들이기 때문이다.

고통의 근원은 데이터베이스의 절대적 부족. ‘할리우드작가열전’을 연재할 때의 고통은 데이터베이스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공식적으로 3만명이 넘는 작가들 중에 누구를 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힘들지, 일단 선정을 끝내고 해당작가의 에이전트에 연락을 취하면 라이프스토리건 필모그래피건 무한정으로 얻을 수 있었다. ‘충무로작가열전’은 그 반대다. 데이터베이스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며 그나마 있는 정보마저 부실하기 짝이 없다. 나름대로 유급조수까지 고용하여 안간힘을 다해 정보를 찾았지만 충무로 입성과정이나 출신교 따위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생몰연도마저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백결·임희재·이성재 등은 훌륭한 작품활동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정보마저 결핍되어 쓸 수 없었던 작가들이다.

다루지 못한 작가들 나한봉과 이상현은 그 빼어난 작품활동으로 보아 반드시 다루어야 하는 작가들임에도 본인들의 완곡한 고사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반면 문상훈·어윤청·이중환·윤석훈 등은 바쁜 시간을 내어 인터뷰에 친절히 응해주셨는데도 서둘러 연재가 마무리되는 바람에 다루지 못했다. 이 자리에 넙죽 엎드려 심심한 사죄의 말씀 올린다.

보람과 감사

본질적으로 학자나 평론가들이 짊어져야 마땅할 십자가를 무능한 일개 작가가 자청해서 떠맡았으니 고통이야 당연한 몫이다. 그 고통을 덜게 해준 것은 매주 쏟아져 들어오던 독자들의 격려메일이었다. 시나리오와 작가의 위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는 격려를 받을 때마다 뿌듯한 보람을 느꼈다. 장장 20개월하고도 2주 동안 한주도 빼먹지 않고 <씨네21>의 독자들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누가 뭐라해도 과분한 행운이다. <씨네21>의 편집진과 독자들에게 깊이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 올린다. 이제 명치끝이 조금은 가벼워진 느낌이다. 심산 besmart@nets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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