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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나 작가가 말하는 순수한 `이야기`로서의 <대망>
2002-11-01

˝어떻게 사는 게 `잘`사는 것일까˝

<러브스토리> <카이스트> 이후 꽤 시간이 흘렀다. 그간 어떻게, 어떤 생각을 하며 지냈나.

- 꽤 시간이 흘렀다고 정말 그럴 리가. 바로 얼마 전까지 <카이스트>를 쓴 거 같은데…. 그동안 뉴질랜드로 이사를 했고 정착을 하느라고 분주했던 기간이 있었지만 언제나 글을 써야 한다는 독촉에 시달리며 지냈다. <대망>을 끝내면 정말로 다음 일에 대한 독촉을 받는 일 없이 지내고 싶다. 다만 몇달 만이라도.

‘대망’이란 제목으로 기획이 들어간 게 3년쯤 되었던가 그동안 어떤 변화를 겪었나.

→ 원래 김종학프로덕션에서 방송사와 계약을 해놓았던 작품이다. 내가 합류한 것은 한참 뒤의 일이고. 솔직히 원래 방송사와 계약이 되었다는 당시의 시놉시스는 읽어보지 않았다. 현대물이고 <장발장>과 같은 유라는 이야기만 들었다. 그러나 결국 현대물이 사극으로 바뀌게 되었다. 근현대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여명의 눈동자>나 <모래시계>를 통해서 거의 다 해버렸기 때문에 시대극으로는 더 쓸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오래 전을 배경으로 써보자는 생각을 했다. 더 미래를 배경으로 SF를 쓰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아무도 호응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웃음)

<카이스트>는 후배작가들과의 작업으로 관심을 끌었다. <대망>은 어떻게 작업하고 있나.

→ 혼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쓰고 있다. 임정희라는 후배가 합류해서 자료 부분을 도와주고 있다.

김종학 감독과 오랜만의 작업이다. 옛 친구를 만난 편안함도 있을 테고, 그 시간 동안 서로 변한 점에 서먹하고 삐거덕거리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 서먹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다. 김종학 감독뿐 아니라 촬영, 편집, 녹음, 음악에 이르기까지 모두 10년 가까이 함께 작업했던 분들이라 친정집에 돌아와 물 만난 물고기 같다. 그들은 각각의 분야에서 장인들이다. 장인들 앞에 어느 한곳 허술한 대본을 내놓을 수가 없어서 사실 작업이 몇배 힘들다. 그러나 나의 대본을 나보다 더 잘 이해해주는 이들과 함께 작업하는 기쁨은 해보지 못한 이들은 모를 것이다.

물론 특정한 시대상황을 규정짓고 가는 것은 아니지만 대략 18세기 조선 경제에 대한 조사도 했겠고, 마키아벨리 등 정치·경제에 대한 공부도 많이 했다고 들었다.

→ 처음에는 일년 가까이 온갖 자료들을 섭렵했다. 전공 교수님께 자문도 구하고 나름대로 준비를 하느라고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다 던져버렸다. <여명의 눈동자>나 <모래시계>와는 달리 이번만큼은 역사적 사실에 얽매이지 않는 순수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물론 조선시대에 있었던 소재들을 이것저것 이용하기는 하지만, 고증 따위는 할 생각도 없다. <여명의 눈동자>나 <모래시계>를 쓸 때에는 역사의 무게에 눌려서 마음껏 사람의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늘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만든 인물들을 충실히 따라가고 싶다.

사극적 대사쓰기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나.

→ 처음에는 사극적 대사라는 것 때문에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 드라마를 통해 알려져 있는 사극투는 단지 드라마에서 일상화시킨 것뿐이지 아무도 그 당시에 어떤 투로 이야기했는지 알 수는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고민을 다 떨쳐버렸다. <대망>에는 사극투와 현대투가 마구 섞여 있다. 그 인물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도구로서 현재와 과거의 말투를 아무거나 다 사용할 수 있어서 오히려 재미있다.

<모래시계>의 인물들이 조금은 어둡고 무언가에 눌려 있는 느낌이었다면 재영이나 동희 등의 캐릭터는 밝고 좀더 요즘 젊은이들에 가깝다. 또한 위엄있는 여진마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구식의 그것이 아니다.

→ 이번 작품의 주인공들이 전 작품의 주인공들보다 더욱 밝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아마 나 스스로 그동안 변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된다. 작가는 작품 하나를 마치면 그만큼 변화된다. 일년 넘게 <카이스트>를 쓰면서 젊음의 실체에 더욱 가까워진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고, 그것이 이번 작품에 투영됐을 수도 있다.

결국 철없이 착하기만 하던 재영을 바꾸는 것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다. <모래시계>도 그렇고 여전히 앞선 세대에 대한 분노를 풀지 못한 것인가

→ 전 세대에 대한 분노 같은 것은 없다. (웃음) 나에게 전 세대는 주어진 상황일 뿐이다. 내 작품의 인물들은 대부분 주어진 상황에 대해 나름대로 반응해가며 성장한다. 장애가 없는 인생은 배우는 것이 없다. 그래서 내 주인공들도 언제나 수없는 장애에 부딪힌다. 이번에는 시영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봤다. 선과 악의 기준 같은 것에는 무감한…. 어쩌면 가장 현대적인 특성을 지닌 인물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세상에 대해 허무하고 냉소적이어서 주어진 상황에 반응하기보다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쪽이다.

현재 집필에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앞으로 어떤 이야기들이 중점적으로 펼쳐지게 되는가.

→ 2주분의 방송이 나가는 동안 드라마가 어렵고 생략이 많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에 대해 변명하자면… 요즘 들어 드라마들이 점점 더 너무나 친절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도대체 드라마를 보면서 생각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 복선은 너무나 노골적이고 중요한 것은 몇번씩이나 반복하여 설명하며 스토리는 간단명료하다. 물론 그처럼 아무 생각없이 즐기며 보는 드라마도 필요하다. 그런데 나로서는 그런 드라마는 쓰는 것 자체가 재미없다. 사실 실제의 인생이란 것은 언제나 돌발사태처럼 아무런 설명없이 부분부분 파편들이 들이닥치는 것이다. 그런 파편들을 모으고 해석하고 판단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쉬운 드라마처럼 모든 사건들을 일일이 말로 자막으로 혹은 회상으로 설명해주는 것은 없다. 난 그런 파편들처럼 이야기를 풀어가는 게 재미있다. 이런 이야기를 보며 시청자들이 어떻게 숨은그림찾기를 하고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느껴줄 것인지를 상상하고 기대하는 일이 즐겁다. 그런데 제작팀 내부에서조차 너무 어렵다는 압박이 심해져서 앞으로의 이야기는 좀더 친절하게 설명해주며 가야 할 것 같다.

궁극적으로 <대망>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

→ 이번 드라마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 가지,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잘사는 것인가 하는 거다.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저마다 나름대로 잘살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들이다. 휘찬이처럼 더 많은 것, 더 높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도 하고, 시영이처럼 너무나 세상이 재미없어서 조금이라도 자극이 되는 것을 찾아 헤매기도 하며, 사람이 좋아 사람에게 발목이 잡혀 재영이처럼 내 주변 사람이 행복해야 비로소 내가 행복해지기도 한다. 의술을 베풀면서 비로소 나도 이 세상에 살아도 되는 인물이구나 생각되었다는 여진이도 있고, 소유하는 것보다는 나눠주는 것이 마냥 즐거운 동희도 있다.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들을 보면서 어느 것이 정말 잘사는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시청자의 몫이다. 그리고 그들의 살아가는 방식을 조금이라도 더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것은 나의 몫이다. 그 나의 몫을 하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지금은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항해의 중간 지점에 서 있다. 앞으로도 뒤로도 육지가 보이지 않는다. 밤마다 들어가 확인하는 인터넷의 시청자 의견이 지금으로서는 이 배의 돛에 불어주는 유일한 바람이다. 백은하 lucie@hani.co.kr

<대망>의 인물들운명의 여인은 형과 결혼하고…

보통 사극이 그러하듯, 회당 30명 이상이 등장하는 <대망> 역시 흘깃 봐선 좀체 캐릭터들간의 관계와 사건들을 파악하기 어려운 드라마다. 극을 중심적으로 이끌어가는 재영(장혁)은 노비였던 분이와 주인인 박휘찬 사이에서 난 서자. 다소 어리버리하고 실수투성이지만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그냥 보고 넘기지 못하는 착하고 오지랖 넓은 성품의 소유자다. 아버지의 계략으로 본의 아니게 친구들을 죽음으로 내몬 죄책감에 괴로워하다 개성 상인 최선재 패에 합류하게 되고 최선재의 지도 아래 대상인으로 성장한다. 재영의 형인 시영(한재석)은 유 부인(견미리)과 박휘찬 사이에 난 아들로 중국인 사부 단가천으로부터 전수받은 화려한 무술을 선보인다.

살인을 하고도 아무 느낌이 없을 만큼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지만 동생의 여자인 여진을 보는 순간 더운 피가 돈다. 재영의 운명의 여인인 여진(이요원)은 한성판윤 윤 대감의 딸로 어린 시절부터 의술에 눈을 떠 집안 몰래 아픈 이들을 돌보며 살아간다. 어린 시절 재영의 탈골된 팔을 치료해주었던 인연으로 만나 신분을 뛰어넘는 정을 나누지만 결국엔 재영의 형인 시영과 혼인하게 된다. 여자로서의 답답한 삶이 싫어서 남장을 한 채 살아가는 씩씩한 여자 동희(손예진)는 최선재의 딸로 재영에 대한 우정을 점점 사랑으로 발전시켜 나간다. 시영과 재영의 아버지인 박휘찬(박상원)은 타고난 사업가이자 야심가로 아들에게도 차용증서를 쓸 만큼 이재에 철두철미한 인물. 출신성분이 평범한 중인이지만 사재기, 매점매석 등의 갖은 술수와 어리석은 양반들을 등에 업고 거부가 된다.

재영의 생모인 분이는 아들을 아버지 휘찬의 집에 맡긴 뒤 노비의 이름을 버리고 조선 최고의 기생 단애(조민수)가 되어 사우곡이라는 기방을 운영한다.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선재를 통해 위기에 처한 아들을 도와가며 재영의 성장을 지켜보게 된다. 개성 상인 최선재(박영규)는 재영에게 진정한 상인으로서의 길을 알려주는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로 박휘찬과 여러모로 대비를 보인다. 남다른 무술실력을 가진 중국인 부녀 단가천(정석용)과 단지연(유선)은 시영으로 인해 고초를 겪지만 자신의 딸이 시영을 사모함을 느낀 단가천은 시영의 손에 죽음을 맞을 것을 알면서도 그를 묵가촌의 7대 제자로 받아들인다. 산 속에서 우연히 만난 분이의 산파가 되어 재영을 받아낸 인연으로 분이와 아릿한 정을 나누었던 무사 이수(박정학)는 이후 떠돌이 검객이 되어 시영과 재영 그리고 단애 주변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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