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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한국영화 신작 프로젝트 [5] - <비밀> 外

<비밀>

이런 영화

98년 <여고괴담>으로 신인 감독 돌풍의 주역이 되었던 박기형 감독의 두 번째 영화는 ‘일상에 지친 30대 남자와 15세 초능력 소녀의 신비한 교감을 그린 초현실 감성영화’다.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판타지 미스터리 영화. 서로에게 뭔가 비밀스런 구석이 있고, 이런 비밀이 다른 비밀을 낳고, 비밀은 결국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다. 이런 비밀을 벗겨내고 사람 사이의 소통을 통해 음울한 시대의 희망을 모색하겠다는 것이 영화의 시작이다.

겨울비가 추적이는 새벽, 생명보험회사 보상담당 직원인 30대 남자는 말과 기억을 잃어버린 소녀를 만나 돌보게 된다. 남자는 신비한 매력을 가진 이 소녀와 텔레파시로 교감을 체험한다. 두사람 사이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소녀의 초능력은 물질을 끌어당기는 신비한 에너지까지 발산한다. 하지만 이들의 순수한 사랑은 현실에서 외면당하고 베일에 쌓여 있던 소녀의 비밀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남자는 혼란에 휩싸인다.

직접 독립프로덕션을 차려 제작에 나선 박기형 감독의 실험이 관심을 끈다. 일찌감치 박기형 감독의 ‘상품성’을 본 강우석 감독이 ‘찜’한 작품이다.

감독 한마디

“장르적 색채보다 미스터리 같은 한 소녀의 초능력을 통해 사람이 잠재력으로 버티는 방식, 가장 순수한 형태의 인간에너지라고 하는 초능력을 통해 살아가는데 힘을 찾는, 뭐 그런 걸 실험해보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재미있는 영화 형식으로 담아내려고 한다. 초현실적인 코드도 있고, 소녀의 정체를 밝혀가는 과정의 미스터리이도 있고, 30대 남자와 소녀의 순수한 사랑이라는 멜로 요소도 있고, 사회적인 코드도 숨어 있다. 해피한 끝은 아니지만 희망을 비치면서, 희망이 배어나는 꼴로 마무리할 생각이다. 판타스틱한 면이 있지만 만화처럼 펼쳐지는 게 아니라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영화적 리얼리티를 확보할 것이다. 프로덕션쪽에서는 판타스틱한 면이 있다고 해서 덩치크고, 특수효과가 주를 이룬 영화가 아니라 제작비 10억원 정도 규모에서 영화적인 고민을 재미있게 짜나가는 시스템을 만들어보고 싶다.”

<시·월·애>

이런 영화

<시·월·애>는 이현승 감독의 세 번째 연출작. 95년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를 연출한 후 ‘영화는 이제 싫다’ 했던 그의 마음이 동한 건 고 유영길 촬영감독의 빈소에서였다. 그 곳에서 예전에 함께 작업했던 동료들을 보았다. 좋아보였고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고 유영길 촬영감독의 ‘영혼’이 손놓고 있던 그를 다독인 셈이다. ‘시간을 훌쩍 넘어선 사랑’이라는 뜻의 <시·월·애>는 1999년 집을 떠나는 은주가 자신의 옛 애인에게서 혹시 올지 모를 소식을 받아달라는 편지를 다음 입주자에게 남기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그 편지를 받아보는 이는 2년 전 그 집의 첫 입주자인 성현. 편지는 계속해서 오가고 ‘집’은 이제 성현과 은주의 감정을 실어나르는 ‘우편배달부’가 된다. ‘시월애’는 성현이 은주를 위해 설계하는 집의 이름이다. 시간 축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인물들의 기억과 감성은 ‘집’을 통해서 풍부한 형태로 간직되고 에누리없이 전달된다. 이때문에 공간을 컷으로 분할하는 것은 자제할 생각이다. 1월 말 크랭크인 할 <시·월·애>의 카메라는 <유령>의 홍경표 촬영감독이 잡는다. 이현승 감독은 성현 역으로 일찌감치 이정재를 낙점했다.

감독 한마디

“이번 영화는 철저하게 밑바닥에 깔린 감성만으로 만들 거다. 그래서 영화에 매혹됐던 출발점, 그 때의 설렘으로 돌아가자고 스스로에게 주문한다. 시놉시스 보면 알겠지만 이번 작품에선 전에 짓눌렸던 중압감을 벗어던질 생각이다. 그렇다고 요란한 판타지 멜로물은 절대 아니다. 시나리오가 맘에 들었던 건 같은 장르에 속한 작품들의 패턴이나 스타일과 다른 잔잔함 때문이었다. 이번 작품은 미장센에 치우쳤던 전작들과 달리 인물들의 경험과 기억과 감정들을 소중하게 다룰 것이다.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은 중요치 않다. 연기자들에게도 철저하게 모노로그적으로 자신의 감정과 표현을 소화하라고 주문할 생각이다. 부딪힘 없이 각각의 감정만으로 서로 다른 시간 좌표에 놓인 두 인물이 감정적인 유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말이다.”

<눈물>

이런 영화

학교와 가정에서 소외된 10대들에게 제 심신 하나 누일 자리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눈물>이 가닿을 곳은 그런 10대들이 부초처럼 배회하는 가리봉 거리의 삶. 집을 나와 한평 될까말까한 벌방에서 새우잠을 자고, 돈을 벌기 위해 술집도 나가면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네 아이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섹스와 출구없는 분노에 빠져있는 반항아 창, 친구인 그와 함께 우연히 가리봉 생활에 발을 들여놓고 삐끼일을 하는 한, 부탄가스를 마시고 술집에서 일하면서도 자신을 지키려 애쓰는 새리, 단란주점에 나가며 몸도 팔지만 창에게 만은 헌신적인 란, 규범적 삶의 안전장치를 일치감치 풀어버린 10대들. 규범의 틀에서 비교적 자유롭지만 생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일상은 분방하기도, 위태롭기도 하다. 임상수 감독이 꽤 성공적으로 장편 데뷔 신고를 올린 <처녀들의 저녁식사> 전부터 준비한 작품. 원래 <나쁜 잠>이란 제목으로 알려졌으며, 감독이 직접 가리봉 벌방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을 만나 함께 지내면서 얻은 체험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제작자가 붙지 않아 오래 지연됐다가 제작비 3억5천만원의 저예산 디지털 영화로 제작된다. 전문배우가 아니라 실제 거리의 아이들, 혹은 이를 연기할 만한 신인들을 오디션을 통해 뽑는다. 충무로 메이저에서 제작하는 첫 디지털 영화.

감독 한마디

“95년 실업자고 백수였을 때, 그런 애들이 나오는 가리봉 술집에 간 적이 있다. 얘기야 들었지만 보기는 처음이었는데, 그애들의 삶에 관심이 갔다. 그애들에 대한 연민, 애정이 하나의 모티브였다. 처음엔 35mm로 하려고 했는데, 투자자가 안 붙었어서 경비를 줄일 수 있는 디지털로 하기로 했다. <나쁜 영화>가 비정통적 픽션과 논픽션 을 섞는 장르 파괴였다면 <눈물>은 정통 픽션, 캐릭터가 강한 극영화에 더 가깝다. 보는 사람에게 즐거움이든 슬픔이든 지루하지 않게 얘기해야 하는데, 픽션이란 것을 다 알지만 정형화된 영화가 아닌 느낌을 주는 다큐멘터리 같기도 한 영화면 좋겠다. 최근에 재밌게 본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에서 새로 약간의 힌트를 얻었다. 성인들에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종족이랄 수 있는 청소년들의 얘기를, <여고괴담…>은 설득력 있게 해냈다. <여고괴담…>은 학교 안 아이들 얘기고 <눈물>은 학교 밖 아이들 얘기가 되겠지만, 관계, 소통, 애정에 굶주린 채 그것을 원하는 게 요즘 아이들에게 핵심적인 문제 아닐까 싶었다. 결국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커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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