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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당나귀 EO’, 보는 이 없이도 감각으로 충만한 삶

회갈색의 털, 차분한 걸음걸이, 생각에 잠긴 듯한 동그랗고 까만 눈망울의 EO는 서커스단의 당나귀다. 그는 곧 동물보호주의자들의 손에 이끌려 서커스단에서 벗어난다. 이런 상황이 그에게 행운인지는 알 수 없다. 영화는 예상치 못한 탈출에서 시작된 EO의 여정을 조용히 따라갈 뿐이다. EO는 농장에서 일하며 다른 동물을 만나기도 하고, 아이들과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기도 한다. 끝없이 들판을 달리고, 때로 밤의 터널을 홀로 걷는다. 흥분에 도취한 축구광, 제각각의 이유로 동물을 사고파는 사람들. 영화는 EO의 시간을 따라간다.

<당나귀 EO>는 로베르 브레송이 1966년 연출한 <당나귀 발타자르>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영화의 첫 장면은 마치 공포영화 혹은 뱀파이어 영화를 연상케 하는 붉은 영상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한 당나귀와 여인의 기이한 움직임은 서커스 공연의 일부였음이 밝혀진다. 이처럼 영화는 가까이에서, 또 멀리에서 무언가를 바라보며 거리와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을 관객과 공유한다. 거기에는 하얀 말의 갈퀴처럼 낯설고 아름다운 것들과, 예상치 못한 위협으로 다가오는 일상의 모습이 공존한다. 카메라는 마치 EO의 시선을 렌즈에 담으려는 듯 자주 그의 눈을 클로즈업하고, 그의 것으로 느껴지는 시점숏을 담는다. 하지만 EO의 눈에서 시작된 카메라는 어느덧 그를 벗어나 정처 없이 야산을 홀로 질주하기도 한다. 60여년 전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지금의 촬영 기술로 당나귀의 시선에 다가가는 <당나귀 EO>의 영상은 아름답고 감각적이다. 한마디로 <당나귀 EO>는 극장에서 보아야 할 영화다. 이 영화에서 영상만큼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은 소리다. 푸르릉대는 EO의 소리, 달그락대며 달리는 소리, 새가 울고 물이 흐르는 소리는 ‘눈먼 하프 연주자 이야기’로 연결된다. 텅 빈 바닷가에서 홀로 노래를 불렀다는 어느 연주자에 대한 얘기는, 보는 이 없이도 감각으로 충만한 삶을 사는 EO에 대한 비유로 다가온다. 폴란드 출신의 예지 스콜리모프스키 감독 작품으로 제75회 칸영화제 심사위 원상, 제87회 뉴욕비평가협회상에서 외국영화상 등을 받으며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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