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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갓랜드’, 타자의 흔적에서 촉발된 길고 긴 자기 성찰의 기록
김현승 2024-02-28

19세기 말 덴마크의 사제 루카스(엘리오트 크로세트 호베)는 종교적 사명을 다하기 위해 아이슬란드의 외딴섬을 향한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문명이 미처 닿지 못한 지역에 교회를 세워 하나님의 영토를 넓히는 일이다. 끝없이 펼쳐진 대자연을 횡단하는 그가 의지할 데라곤 말조차 통하지 않는 길잡이들뿐이다. 구태여 먼 길을 돌아서 가는 루카스의 손에는 초기 형태의 카메라가 들려 있다. 카메라는 신의 말씀을 전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이 마주한 인간과 자연을 향한다. 그런데 무리한 일정으로 인명사고가 발생하면서 신에 대한 주인공의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하나님의 아들은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뜻이라며 지친 몸과 마음을 다잡는다. 죽을 고비를 넘긴 루카스는 가까스로 목적지에 도착하는 데 성공한다. 언어가 달라 소통에 애를 먹지만 그는 금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간다. 교회 건물도 계획된 시간 내에 완공을 앞두고 있고 아름다운 아나와 서로 애틋한 감정을 느낀다. 신은 인간에게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만 준다는 성경 구절이 이번에도 옳은 것일까. 하지만 낯선 땅은 끝내 루카스에게 편안한 안식처가 되지 못한다. 집주인 카를(야코브 로만)은 물론 안내인 라그나르(잉바르 에거트 지거드슨)조차 루카스를 탐탁지 않게 여기며 마을에 서늘하고 불안한 공기가 감돈다.

영화 <갓랜드>는 실제 덴마크 신부가 촬영한 최초의 아이슬란드 해안의 습판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 작품 안에서도 장시간 노출을 요구하는 초기 사진기의 원리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간 관계가 프레임 안팎의 경계를 형성한다.

생명과 부패가 공존하는 푸른 초원은 데이비드 라워리 감독의 <그린 나이트>(2021)를 연상시킨다. 장엄한 자연경관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경외심과 무력감이 삶과 죽음의 허망함과 교차한다. 카메라 패닝을 통해 공간의 형태가 흘러가는 시간과 결합하며 인물이 느끼는 감정을 가리키기도 한다. 제74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을 비롯해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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