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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그날의 딸들’, 침묵하지 않는 자들의 발자취

역사적 비극이 빚어낸 폭력과 학살은 1948년 제주도의 김연심과 1994년 르완다의 마리 크리스틴의 가족을 앗아갔다. 오랜 세월이 지나 생존자 김연심과 마리 크리스틴의 딸 양경인과 바치스가 제주에서 만난다. 연령, 국적, 언어 모든 것이 다르지만 두 사람은 생존자의 딸이라는 공통점 아래 공감대를 형성하고 마음을 나눈다. 바치스는 양경인의 용기에 감명받고, 양경인은 르완다를 통해 한국 사회를 되돌아본다.

장편영화 <종이꽃> 등을 연출한 바 있는 고훈 감독의 다큐멘터리 <그날의 딸들>은 40여년이라는 세월을 사이에 둔 두 비극, 제주 4·3과 르완다 대학살을 생존자의 딸들의 시선을 통해 그려낸다. “제주 4·3의 특징은 다 쉬쉬했다는 거야, 40년 동안.”(양경인) “주변 친구들을 보면 어머니가 있으면 아버지가 없고, 아버지가 있으면 어머니가 없었어요.” (바치스) 역사적 비극으로 희생된 자들의 후손이자, 그흔적이 남아 있는 국가와 도시의 일원인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직간접적으로 겪어온 비극의 여파를 떠올린다. 당사자이자 기록자로서 이들의 힘은 그들이 개인적 분노와 아픔에서 머무르지 않고 또 다른 희생자, 생존자를 만나 연대를 이뤄낸다는 점에 있다. 영화는 두 사람 외에도 역사적 비극의 이면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노력해온 또 다른 이들의 발자취도 들여다본다.

<그날의 딸들>이 주목하는 것은 역사적 비극 그 자체보다도 그에 대해 침묵하지 않음의 중요성과 그 과정에서의 연대 의식이다. 치유와 용서보다 침묵과 회피가 만연한 역사 속에서 비극적 사건 이후 강요된 침묵을 깨고 세상과 사회에 진실을 알리고자 노력하는 이들이 여기 있다.

그들은 희생자들의 발화되지 못한 목소리를 대신하기 위해, 생존자들의 쓰라린 기억을 채록하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분투한다. 상처를 상처로 바라보는 것, 같은 상처를 가진 이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 영화는 상처받은 땅의 딸들이 할 수 있는 숭고한 노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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