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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활력과 에너지가 가득한 영화,<바운스>
2002-12-03

■ Story

리사(오카모토 유키코)는 뉴욕에 가기 위해 있는 돈을 모두 털어 비행기표를 산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여행비용을 모으던 리사는 그동안 모았던 돈을 모두 강탈당한다. 주로 성인용 영화를 찍는 일 등으로 돈을 모았던 리사는 순식간에 절망에 빠진다. 존코(사토 히토미)와 라쿠(사토 야스에)는 거리에서 원조교제를 하는 소녀들. 리사의 딱한 사정을 들은 이들은 그녀를 돕기로 선뜻 결정한다. 하지만 어려움은 있다. 리사와 함께 거리로 나선 아이들은 기성세대와 크고 작은 마찰을 계속 빚는다. 리사가 미국으로 떠나야 할 시간은 다가오고, 존코와 라쿠는 리사에게 새로운 생활을 마련해줄 돈을 모으기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닌다.

■ Review

“원조교제로 번 돈으로 프라다 체인백을 사고 현재를 즐기는 그녀들의 행동과 의식은 일본사회의 모델이다. 난 문학의 유효성에 대해 회의를 느꼈다.” 어느 소설가가 일본 여고생들을 취재한 뒤 털어놓은 이야기다. <바운스>는 고갸르(ko-Gals)들의 삶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고갸르란 루즈삭스와 짧은 치마의 패션, 그리고 원조교제로 돈을 버는 여고생을 칭하는 일본사회의 신조어다. 이 소재는, 누가 봐도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민감할 수밖에 없다. 청소년이 섹스산업으로 돈을 번다면 단속할 만한 법적 근거는 무엇인가. 소비사회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돈과 순결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무엇보다 이를 어떻게 영화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를 담게 될 것인가. <바운스>는 복잡하게 얽힌 고리들을 하나씩 현명하게 풀어나간다.

<바운스>는 세 여자아이에 관한 영화다. 리사와 존코, 그리고 라쿠가 그들이다. 이들은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 곤란함을 겪는 것은 리사라는 아이다. 리사는 “난 할 수 있다”라는 믿음을 갖고 미국으로 떠나길 희망한다. 그녀에게 미국행은 오랜 꿈과도 같다. 그런데 낯선 이들에게 돈을 모두 뺏긴 뒤 리사는 희망을 상실한다. 존코와 라쿠는 리사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다. 기꺼이 그녀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도움을 준다. 어떻게 기성세대를 골탕먹이는 방식으로 원조교제를 하는 척하면서 돈을 강탈해 리사를 돕는 것이다. 범죄영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바운스> 속 범죄는 뚜렷한 명분을 지니고 있으며 아이들은 스스로 죄의식을 깨끗이 세탁할 능력이 있다. “내가 너희랑 잠자리를 할 것으로 알았겠지, 멍청하긴!” 이 정도면 지능적인 완전범죄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바운스>의 영화적 힘은 이렇듯 캐릭터에 관한 이해에 뿌리를 둔다. 고갸르영화는 일본에서 다른 화제작도 없지 않았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안노 히데야키 감독은 <러브 앤 팝>이라는 영화를 만든 적 있고 이와이 순지의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도 비슷한 스케치는 담겨 있었다. 그럼에도 <바운스>는 동시대의 청춘, 그들이 처한 암담한 현실에 대해 발언하면서 전적으로 젊은 세대의 한쪽 손을 들어올린다. “너희가 승자야”라고 말하듯. <바운스>는 거리 아이들이 겪는 한편의 뼈아픈 체험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속 기성세대는 철저하게 이중적이고 위선적이며 한마디로, 구리다. 화장실 청소를 강요하는 관료, 세계대전 당시의 전범, 머리가 텅 비어 보이는 섹스중독자에 이르기까지. 영화에서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기성세대는 학생운동을 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이들 정도다. 같은 견지에서 <바운스>는 전형적인 내러티브영화이되, 정치적 비판의식이 살아 있는 희귀한 대중영화로 볼 수 있다.

<바운스>는 하라다 마사토 감독작이다. 하라다 마사토 감독은 원래 영화평론가 출신이다. 그는 <바운스>에 대해 “감독으로서 흥미를 가진 부분은 고갸르라는 아이들이 일본에서 제3세계 외국인과 같은 의미라는 것이었다. 고갸르는 반항정신이 있었고 그들만의 언어와 공동체를 만들었다. 이것을 영화로 표현하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가미가제 택시>와 <쥬바쿠> 등을 만든 감독으로선 당연한 멘트다. 하라다 감독은 일본 속 아웃사이더를 포착한 영화를 자주 만들곤 했으며 <바운스>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영화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거리를 방황하는 10대 소녀들의 자태이다. 원색의 색채가 범람하는 대도시의 밤, 그곳을 부유하듯 떠도는 아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단, 우정을 위해서. 영화는 간간이 고갸르를 인터뷰하는 식의 구성을 취하고 있으며 이 역동성은 영화를 현실에 접근하도록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또한 영화의 이데올로기, 다시 말해 현재 일본의 부패성을 고발하며 숨김없이 노출하기 위한 통로가 된다.

(왼쪽부터 차례로)♣ 원조교제하면 으레 떠오르는 밤거리의 음습한 분위기와 달리, <바운스>의 카메라가 세 주인공 여고생을 비출 때는 발랄하고 생기가 넘친다. 그들의 젊은 몸과 마음이 소중하다는 청소년과 어른 모두에게 넌지시 말하는 듯하다.♣ 여고생들은 섹스숍에 가서 팬티를 팔고, 성인영화 찍는 일에도 나간다. <바운스>는 그들의 도덕적으로 옹호하게 하는 상황을 애써 만들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두기 때문에 가끔씩 불편해지기도 한다.

“쳇, 돈으로 놀려고 하는 어른들은 정말 밥맛이야.” <바운스> 속 청춘은 이렇게 뇌까린다. 영화는 거리의 청춘들이 신세대 ‘전사’인 것처럼 과장하는 면도 없지 않다. <바운스>는 상영시간 내내 기묘한 활력과 에너지로 가득한데 하라다 마사토 감독이 영화 속 캐릭터, 그리고 현실에서 고난을 겪는 젊음에 격려의 목소리를 담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거의 절대적인 찬양과 지지의 영화다. 일본에서 <바운스>는 “매춘현장에 뛰어든 10대 소녀들의 순수한 감성을 보여준 쾌작”이라는 좋은 평가를 얻었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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