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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야기에서 발견할 수 없는 `사랑`,<남남북녀>
■ Story

연변의 고분발굴 현장, 바람둥이 대학생 김철수(조인성)와 북한 인민무력부장의 딸 오영희(김사랑)는 남북 합동으로 구성한 발굴단의 일원으로 이곳에 도착한다. 철수는 첫눈에 영희에게 반해 꼬시기 위한 수작에 들어가지만 영희는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결국 철수는 최후의 수단을 동원한다. 먼저 유물을 발굴한 뒤 영희가 발굴한 것처럼 양보하겠다는 철수의 계획은 성공할 것인가?

■ Review

<남남북녀>의 주인공은 철수와 영희다. 초등학교 1학년 국어책 첫머리에서 따온 이 상징적인 이름은 영화의 지적 수준에 걸맞은 진정 탁월한 선택이다. <남남북녀>는 이야기가 진행되면 될수록 관객을 초등학생 수준으로 얕보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 코미디라는 이유로 용납되는 한계에 과감히 도전하며 <남남북녀>는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 전개의 새로운 전범을 창출한다.

<남남북녀>의 과감함은 철수와 영희가 어떻게 만나는지 설정한 대목부터 빛난다. 아마도 양식있는 영화라면 최소한 그들의 만남에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거나 아니면 우연처럼 찾아온 운명적 만남에 대해 어느 정도 시간을 할애했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대신 <남남북녀>는 어떤 선택을 하는가? 영희는 죽은 철수의 어머니가 영희랑 똑같이 생겼다고 제시한다. 그리하여 철수는 천하의 바람둥이였다가 그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남자로 돌변한다. 기가 막힌 건 영희에겐 그만한 이유도 없다는 사실이다. 남한에서 유행하는 랩송에 흥미가 있다고 무조건 남한 청년과 사랑에 빠진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남남북녀>의 과감함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인용하면서 한술 더 뜬다. 남한 청년과 북한 처녀의 사랑이 대대로 원수로 지낸 두 집안의 비극을 연상시킨 건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나 이 영화에서 사랑은 너무 느닷없는 것이어서 좀처럼 감정이입이 어렵다. 영화 후반부, 철수가 영희를 한번 더 보겠다며 처절한 몸부림을 보여줄 때는 갑자기 다른 영화의 롤이 잘못 끼어든 것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철수와 영희의 사랑은 분단체제라는 장애물을 고발하기엔 너무 보잘것없는 것이다.

<남남북녀>는 <자카르타>와 <몽정기>로 일약 흥행감독으로 주목받은 정초신 감독의 세 번째 연출작이다. 이미 2편을 흥행시킨 감독의 영화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엉성하고 느슨한 작품이 된 건 아마 재능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일 것이다. <몽정기>에선 최소한 등장인물에 대한 예의가 있었던 반면 <남남북녀>는 어떤 인물에도 인간적인 매력을 발견할 수 없다. 감독 스스로 자신의 피조물에 애정이 없는데 관객이 그들에게 애정을 갖는 건 불가능하다. 철수와 영희의 사랑이야기 <남남북녀>에서 결코 발견할 수 없는 건 바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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