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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도 맛도 어색한 칵테일,<방탄승>
문석 2003-09-12
■ Story

1943년 티베트, 무명승(주윤발)은 스승으로부터 전설의 두루마리를 수호하는 임무를 이어받는다. 이 두루마리에는 소리내 읽으면 절대적 힘을 갖게 되는 비기(秘記)가 담겨 있는 것. 하지만 이를 차지하기 위해 나치 SS부대가 쳐들어오고, 무명승은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진 뒤 사라진다. 그로부터 60년 뒤 현대 미국 도시에 나타난 무명승은 집요한 나치 잔당의 추적을 피하다 지하철 소매치기 카(숀 윌리엄 스콧)를 만난다. 무명승은 홍콩 쿵후영화를 보며 무술을 익힌 카에게서 향후 60년간 두루마리를 지킬 후계자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무예를 연마시킨다.

■ Review

<방탄승>은 미국 언더그라운드 만화를 원작으로 삼은 작품답게 컬트적인 성향이 녹아 있다. 이 영화는 특히 동양적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서구적인 그릇 안에 담으려 한다. “힘보다 조화가 중요하며 적 대신 자신을 아는 게 선행돼야 한다”는 무명승의 가르침이나 두루마리 수호자의 임기가 간지(干支)의 순환을 반영하는 60년이라는 점 등은 그러한 예. 신비로운 동양의 전통 무예를 현대 도시라는 시공간 속에 펼쳐놓으려는 점 또한 이 영화의 흥미로운 시도다. 지하철의 은밀한 공간, 러시아워의 도로, 빌딩 옥상 등에서 무중력의 액션을 펼치는 티베트 승려의 모습은 오묘한 쾌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요소.

제대로 구현됐다면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했을 게 틀림없는 기본 설계에도 불구하고 <방탄승>은 불행히도 색깔도 맛도 어색한 칵테일이 돼버렸다. 우선 ‘우주의 법칙을 잊고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결말의 가르침이 지나치게 단순하게 해석돼 결정적 순간에 김을 빼는 요소로 작용하는 등 무명승이 읊어대는 ‘동양적’ 경구는 단지 장식의 기능을 넘어서지 못한다. 고대 동양의 신비가 현대의 서구와 어떤 조화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혹시 제작진은 쿵후영화 극장에서 무예를 익힌 카처럼 홍콩영화가 동양문화의 전부라고 착각한 건 아닐까. 이 부조화에는 그닥 새로울 것이 없는 무술액션도 한몫한다. 현대 도시의 지형지물을 이용한 기발한 액션을 만들어내지 못한 탓에 흥미는 반감된다. 가장 아쉬운 요소는 주윤발의 매력을 살리지 못했다는 점. <와호장룡>에서 품격있는 액션을 보여줬던 주윤발이지만 <방탄승>에선 날고 도는 와이어 액션이 그와 어울리지 않음을 확인시켜줄 뿐이다. 영화 중반 유머처럼 등장하는 쌍권총 장면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 새로운 여성 액션스타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제이드 역의 제이미 킹을 발견한 게 그나마 위안을 주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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