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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사유하지 않는 시대의 징후 - <서울의 봄>이 요청하는 관습적 보기를 의심하며
김예솔비 2024-01-03

아무리 상업영화라도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취하는 영화는 과거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한 형식적 고민 없이 성립되기 어렵다. 대다수의 상업영화에서 그러한 형식은 주로 이야기의 시점을 표명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역사가 소시민의 일상을 통해 비치는지, 의사 결정권을 가진 자들의 권력 다툼으로 묘사되는지, 혹은 시민과 공권력의 부딪힘을 통해 촉발되는 이야기인지에 따라 영화가 수행하는 재현에 대한 충실도가 달라진다. 물론 여기 언급한 사례들이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는 영화가 구할 수 있는 시점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상업영화는 역사와 픽션을 접속시키는 데 필요한 형식적 절차에 대한 고민을 서사적 시점의 문제로 치환하는 경향이 있고, 영화의 초반부에 결정된 시점은 관객과 역사적 사실 사이의 관계를 결정짓는다.

이태신과 전두광

<서울의 봄>은 명백히 두 번째 사례에 해당한다. 즉, 정권을 둘러싼 군대 조직 내부의 권력 다툼과 파열을 충실히 중계하는 영화다. 영화는 육군본부 벙커에서 박정희의 시해 소식을 전해 듣는 군인들의 모습으로부터 시작되며, 시해를 둘러싼 시민들과 세간의 떠들썩한 반응을 기입하지 않는다. 오프닝에서 화면은 장례식 풍경으로부터 시민들이 모여 있는 광장의 부감숏으로 이동하며, 그 위로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의 타이틀이 나타난다. 일련의 연결은 다소 작위적이다. 이는 해당 시퀀스가 배우들이 등장하는 연출된 장례식 장면과 광장을 메운 시민들을 포착한 아카이브 푸티지를 교묘하게 뒤섞고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영화의 오프닝이 표명하는 바와는 다르게, 실질적으로 이 영화에는 시민의 자리가 거의 지워져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봄’이라는 민주화를 희망하는 주체로서 나타나야 할 시민의 이미지는 이 영화에서 그 단어만큼이나 관념적인 허구에 가깝다. 이것은 영화가 인물들간의 액션과 리액션, 관계의 묘사에 몰두하면서도 동시에 영화 너머의 효과를 향해 추상화되어 있다는 인상과 유사하다. 영화의 시점은 전적으로 12·12 사태를 둘러싼 군부 세력간의 충돌을 넘어서지 않지만 관객은 그 시점에 동화되어 이야기를 따르기보다는 마치 이 영화에서 시민이 관념화된 것처럼 관습적 보기의 방법을 동원해 영화의 효과를 헤아리기를 요청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전사령관과 오진호 소령의 일화가 비중 있게 등장하는 것이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들의 전사를 찾아보게 하기 위한 의도였다는 감독의 말이 방증하는 것처럼, 영화는 화면이 채 지나가기도 전에 결정화된 장면의 의미를 기입하고 있다.

영화가 몰입할 시점 대신 관습적인 지각의 자리를 내어준다는 것은 이 영화가 12·12 사태라는 실패의 서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한계이기도 하다. 이야기의 시점은 신군부 세력의 시점도, 그에 맞서 저항하는 이태신이라는 가상의 인물에게로 온전히 수렴되지도 않는다. 그 대신 영화는 전두광과 이태신을 끊임없이 대립 구도로 설정하면서 서로의 비교급에 노출시킨다. 노태건 일당과 무리 지어 다니는 전두광이 홀로인 이태신을 복도에서 마주치는 첫 대면 장면이 단적으로 보여주듯이, 두 사람은 출신과 가치관뿐 아니라 다수와 소수라는 입장에서, 가정과 부하직급을 대하는 방식에서 극적으로 대비된다. 이러한 대비는 단순히 성격상의 강조에 그치지 않고 화면상의 구도로 강조되어 나타난다. 특히 첫 만남에서 시작된 다수와 소수라는 대립의 모티프는 이후 행주대교 앞에서 혈혈단신으로 2공수의 탱크 행렬을 막아내는 이태신의 실루엣으로 변주되며, 종반부에 가서는 겹겹이 놓인 바리케이드를 건너 전두광과 홀로 대면하는 의로운 남성 영웅의 클라이맥스에 이르게 된다.

한편 전두광의 경우 반복해서 강조되는 것은 은닉과 어둠이라는 화면의 전술이다. 그는 커튼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거나 종종 어둠을 불러들이길 요구한다. 영화는 인물의 성질을 강조하기 위해 서사 밖으로 이탈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하나회 충성 서약을 외치는 젊은 장교들을 보여주는 장면이 그러한 예시다. 영화 전반에 걸쳐 인물들이 처음 나타날 때 이름과 직급을 명시한 자막이 함께 등장하는 반면, 이 젊은 장교들에게는 자막이 부여되지 않는다. 장면의 구도 또한 다소 인위적이다. 전두광의 의자 뒤편에서는 긴장감을 조성하는 조명이 비추고 있고, 의자에 앉은 채 긴장한 하나회 장교 앞에 전두광의 그림자가 위압적으로 드리운다. 이 장면은 서사상에 봉합되기보다는 하나회와 전두광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기능으로서의 장면에 가깝다. 또한 하나회 일동이 연희동 자택에 모여 반란 계획을 수립할 때 이들은 마치 고사를 지내는 것처럼 방 안의 불을 끈다. 어둠이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기라도 하는 듯.

오로지 전두광과 이태신에게만 사용되는 이러한 모티프의 반복과 강조는 두 인물이 영화의 대립적 구도를 구성하는 두축이라고 믿게끔 만든다. 그러나 두 사람의 대립은 그것 자체로 극적 서사의 전개를 추동한다기보다는, 서사를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한 장식적 요소에 가깝다. 영화상에서 12·12 반란의 진압이 실패한 결정적인 계기는 ‘신사협정’을 체결한 결정권자들의 판단 실수와 스스로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반란군의 회유에 넘어간 국방부 장관의 실책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조금 바꾸어 말하자면, 이태신의 활약은 역사의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태신이 행주대교를 막아섰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탱크는 한강을 넘는다. 홀로 바리케이드를 넘는 이태신의 마지막 저항 또한 실패의 확정을 지연시키는 데 그치는 무의미한 발악일 뿐이다. 그렇다면 영화는 왜 이태신이라는 상상의 인물을 필요로 한 것이며, 영화의 구도를 다소 이분법적으로 만들면서까지 이태신을 그토록 과도하게 정의로운 인물로 묘사해야 했던 것일까. 단적으로 말하자면, 이 방식이 편리하고 익숙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한 사람의 광적인 권력욕이라는 재현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선과 악의 대립적 구도라는 익숙한 문법을 차용하고, 악의 반대편에 학습된 주인공의 현신을 불러들인다. 이태신은 한국영화가 축적해온 영웅 이미지에 대한 아카이브적 상상의 결과물이자, 전두광의 픽션적 거울이다.

대체 역사는 왜 남성성의 신화와 함께 다시 쓰이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을 바꿔, 이 시대가 상상할 수 있는 픽션적 대응물이 왜 남성성의 신화를 몸소 실현하고 있는 이태신이라는 인물로 나타나는지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태신이라는 인물이 망각되고 오염된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 이상화된 남성다움의 화신이라면, 왜 대체 역사는 남성성의 신화와 함께 다시 쓰여야 하는 것일까. 남성성의 복원을 통해 대체 역사의 재현 가능 지대를 만드는 것이 유일하게 가능한 픽션의 전략이었을까. 관객에게 학습화된 관습적 보기를 요청하는 영화의 편의와 그것이 재건하고 있는 남성성의 신화가 지닌 전형성 사이는 그리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이태신의 정의로움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가 역사를 재현하기 위해 동원하는 것이 남성성의 신화라는 또 다른 권위라는 점, 그리고 그것이 한국영화에 학습화된 관객의 열망과 일치할 것이라고 굳게 믿도록 만드는 시대의 징후를 의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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