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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세계에 대한 믿음>
이다혜 2025-01-21

김홍중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서울리뷰오브북스>의 ‘이마고 문디’에 연재된 사회학자 김홍중의 영화 에세이가 책으로 출간되었다. 영화에 대한 글 7편이 묶였다. 아피찻퐁 위라세타꾼,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나루세 미키오, 지아장커, 켈리 라이카트, 코언 형제와 아키 카우리스마키, 박찬욱과 박해영의 총 7장으로 영화 작가들의 이름이 나열된 목록만으로도 풍성함이 전달되는 듯하다.

최근 개봉한 <쇼잉 업>의 켈리 라이카트 감독에 대한 글을 먼저 살펴보면 좋겠다. “켈리 라이카트는 미국 독립영화계의 독보적인 감독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켈리 라이카트의 스타일은 흔히 “느린 보폭의 리얼리즘”이라고 불린다. 특별한 사건이나 스펙터클, 극적 전개가 거의 없이 관조적이고 섬세하고 미니멀한 카메라가 이야기를 이어간다. 인물의 본성이나 이력 또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에게 느림은 단순한 미학적 효과나 아방가르드적 실험의 의미를 넘어서, ‘영화가 아니었다면 놓쳤을 사물들과 사람들을 보게’ 하는 가시화 장치로 기능한다.” 가속이 규범이 된 세계에서 소외된 풍경과 인간의 진실을 드러낸다. 파국은 주로 ‘집’의 소실, 파괴, 해체의 형태를 띤다. 서부극에 어울리지 않는 두 남성을 주인공으로 삼은 <퍼스트 카우>에서 최대치의 모험이 성립하는 과정은 마을 유력자가 멀리서 데려온 암소의 젖을 훔쳐 과자를 구워 파는 것이다. 영화 도입부에 그들의 마지막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는 장면이 주어지고 시작하는데, 그것은 두 사람이 멀리 떠나지 못하고 나란히 누워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이다. “우정은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주 간혹 죽음을 초월할 수 있다. 그의 영화는 그 이상을 넘어서 무언가를 더 말하지 않는다.” 김홍중은 이에 대해 ‘백골(白骨)의 희망’이라는 표현을 더한다. 사회학자가 보는 영화의 특별함은 무엇일까. <세계에 대한 믿음>은 영화가 존재하는 세계의 풍경을 읽어내려는 시도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에서 사랑을 은유하는 대표적 풍경으로 원자력발전소를 꼽는 대목이 그렇다. “원전 완전 안전하거든요”라는 해준의 실없는 농담은 뼈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사랑은 이제 리스크다.” 리스크는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미래의 가능성과 그에 대한 합리적 계산을 총칭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20세기 후반에 친밀성 영역에서 일어난 혁명적 구조 변동의 핵심은 이제 친밀한 관계가 더이상 삶의 안식처나 구원이 아니라 오히려 ‘리스크’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에서 찾아진다.”

아바스 키아로스타미 영화에서 아주 멀리서 풍경 속의 한점이 되어 이동하는 인물들의 거의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느릿느릿한 움직임을 종종 본다. 그럴 때 우리는 구체적 인생이 아니라, 개체의 삶을 뛰어넘는 유장한 역사를 살아가는 어떤 집단의 운동을 짊어진 상징을 본다. - 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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