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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BIAF Daily > 제25회(2023) > 2023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BIAF 3호 [인터뷰] ‘사이렌’ 세피데 파시 감독, 나의 예술은 결국 자유를 위한 것
조현나 사진 백종헌 2023-10-22

1980년 9월, 사이렌이 울리고 화염에 휩싸인 하늘이 붉게 물든다. 이라크가 이란을 침공하자 오미드의 엄마와 동생들은 피신하고 그의 형은 전장으로 뛰어든다. 할아버지와 함께 형의 무사생환을 기다리며 아바단에 남은 오미드. 날이 갈수록 도시는 폐허가 되고 주변의 사람들은 하나 둘 쓰러져간다. 세피데 파시 감독의 <사이렌>은 1980년, 8년여 간 백만 여명의 사상자를 낸 이란-이라크 전쟁을 14살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영화다. 애니메이션 장르를 경유해 전시 상황을 직접적으로 노출하는 방식은 피했지만, 모든 것이 한순간에 재로 뒤바뀌는 전쟁의 참혹성은 여전히 관객에게 깊은 절망을 안긴다. “그럼에도 영화를 통해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다”던 세피데 파시 감독은 자신의 첫 애니메이션 <사이렌>으로 2023년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장편영화부문에 노미네이트됐으며 장편영화 최고 오리지널음악상을 수상했다.

- 전쟁이 발발했을 때 당신은 이란에 거주하는 고등학생이었다. 이 경험이 <사이렌>을 만드는 데 어떤 영감을 줬나.

= 말한 대로 내가 청소년 때 전쟁을 경험했기 때문에 청소년의 시선으로 본 이란의 역사에 대해 다루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이란-이라크 전쟁 자체가 굉장히 규모가 크고 중요한 전쟁인데, 이젠 모두에게서 잊히지 않았나. 여전히 전 세계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인권도 전혀 지켜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이 전쟁에 대해 다시 논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 어른이나 소녀가 아닌 소년 오미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유는.

= 나와 같은 이란인인 시나리오 작가 자바드 드자바헤리와도 이 부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청소년은 아직 여린 아이이면서 성인이기도 한, 그 중간에 위치한 나이라고 생각한다. 이 나이대에서 폭력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굉장히 중요했다. 청소년 중에서 소년을 택한 이유는 전쟁이 발생한 뒤엔 남자 아이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쟁이 발생하면 이들의 손엔 바로 무기가 쥐어지고, 곧바로 싸우러 나서야 한다. 여자 아이들은 전쟁에 이와 같은 방식으론 노출되지 않는다. 다만 오미드와 동행하던 용감한 소녀 파리를 통해 두 사람이 함께 이 영화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했다.

- 참혹한 전시 상황을 그릴 때, 가령 시체나 동물의 사체 등을 어디까지 묘사할 지에 대한 고민 역시 필요했을 것 같다.

= 그래서 애니메이션 장르를 택한 것이다. 실사 영화에서 전쟁을 묘사하면 너무 잔인한 장면들이 있는데 애니메이션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도 전쟁에 관해 전면적으로 다룰 수 있었다.

- 영화에서 시선을 끄는 몇몇 색들이 있는데 그중 빨강이 가장 상징적이면서도 극의 중심을 잡아준다.

= 애니메이션의 색에 관해서는 좀 더 설명을 덧붙이고 싶다. 작업하는 과정에서 색을 제한적으로 사용해달라고 담당자들에게 요청했다.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기 때문에 한 곳에 갇혀있는 느낌을 줄 수 있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모사지를 이용해 빈번한 폭발로 인해 공중에 번지는 불빛이나 뿌옇게 변한 공기, 떠다니는 먼지들을 표현하려고 했다. 이게 영화 중반부까지의 컬러감이고 인물들이 모두 전쟁으로부터 무사히 도망치는 후반부에 다다를수록 더 생동감 있는 컬러를 사용했다. 시각적으로도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피와 인물들의 열정을 강조하고자 극 전반에 붉은색을 주요하게 썼고, 또 후반부에 배와 배가 뜨는 물을 보여주기 위해 파란색도 공들여 사용했다.

- 이란 남부지역의 음악뿐만 아니라 팝이나 재즈, 록과 같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활용했다.

= 남부지역의 전통악기로 연주한 음악들 외에도 여러 장르의 음악을 삽입한 건 그만큼 타국에서 이란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을 깨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란의 다양성을 보여주기 위해 <사이렌>에 여러 장치를 설치했는데 음악이 그러한 장치 중 하나였다.

- 등장인물 모두가 큰 배에 올라 함께 탈출하는 장면은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킨다.

= 사실 현실적인 결말은 아니다. 두 강이 만나 하나로 이어지는 지리적인 위치는 그대로 그려 넣었다. 다만 전쟁 당시에는 그렇게 배를 통해 해당 지역을 빠져나가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런 현실 불가능한 결말일지라도, 등장인물들이 끝내 희망을 마주하는 것으로 영화를 마무리 짓고 싶었다.

- <사이렌> 뿐만 아니라 이란의 역사적 사건이나 현실을 반영한 작품을 꾸준히 제작해왔다. 이러한 시도가 당신에겐 어떤 의미인가.

= 그것이 바로 내가 영화를 만드는 이유다. 고향을 떠난 지는 오래됐지만 내겐 여전히 이란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이것이 내가 이란 출신의 예술가이자 세계 시민으로서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밖에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일들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1년 반 전부터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2022년 9월,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흐사 아미니는 순찰대로부터 폭행을 당했고 결국 사망했다-편집자)을 계기로 시작된 ‘여성, 삶, 자유’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결국 이란인들이 싸우는 이유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서이지 않나. 내가 다양한 방식으로 투쟁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도 결국 같은 이유에서다.

- 차기작으로 계획된 작품이 많다고.

= 뮤지컬 영화 한 편과 더불어 이란에 관한 조금 펑키한 분위기의 실사 영화도 준비 중이다. 이란에서 보낸 나의 청소년기를 중심으로 애니메이션을 한 편 연출하려 하고 있고, 두 여성 간의 아주 긴 우정을 오페라 형식으로 표현해보려 시도 중인 작품도 있다.

- <사이렌>에서부터 느꼈지만 당신은 음악에 정말 관심이 많은 창작자다.

= 사실 난 오랫동안 수학 공부를 해온 사람이다. (웃음) 그래서 음악 분야에 대해 아주 잘은 모르지만, 그럼에도 지대한 애정을 갖고 있다. 문학도 그렇고 영화로 인해 이미지를 포함한 예술 분야에도 관심이 많다. 비유하자면 마치 오케스트라를 아우르는 지휘자가 된 느낌인데, 여러 요소를 아우르려는 이 같은 시도가 결국 영화 연출로 귀결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