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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질’ 문수진 감독 “본연의 나를 찾아서”
이자연 사진 최성열 2022-08-04

무표정한 주인공은 외출할 때마다 밝게 웃는 얼굴의 가죽을 뒤집어쓴다. 6분 분량의 단편애니메이션 <각질>은 타인의 요구에 맞춘 ‘나’와 본연의 ‘나’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는 현대인의 모습을 잘 드러낸다. 제75회 칸영화제 단편경쟁 부문에 초청받고 제46회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학생경쟁 부문 대상인 크리스털상을 수상한 문수진 감독과 나와 나 사이의 숨은 간극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 졸업작품으로 칸영화제에 초청받았다.

= 졸업작은 나를 사회에 알리는 첫 번째 작품이다. 나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를 담고 싶어서 당시 가장 자주 생각하던 페르소나를 소재로 삼았다. 한때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싶은 마음에 그들이 좋아하는 ‘나’에 자신을 맞추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순간이 반복되니 나를 돌아봐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더라. 본래 ‘나’와 사람들이 바라는 ‘나’, 그 간극을 말하고자 했다.

- 보통 페르소나라고 하면 가면을 먼저 떠올리는데 각질을 고안해냈다.

= 단편애니메이션은 러닝타임이 짧기 때문에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보편적 소재를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지극히 주관적인 것을 고집하면 그것을 설명하는 데 긴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주요 소재로 페르소나를 설정하니 나 또한 가면이 먼저 연상됐다. 그렇지만 가면은 너무 흔한 느낌이었다. 밀폐되고 얽매인 감각을 강조하고 싶었는데 그때 각질이 떠올랐다. 사회적 이미지에 갇혀버린 보편적인 압박감을 전달하면서 나만의 생각까지 더할 수 있어 적합했다.

- 영화 속 진짜 ‘나’와 각질의 그림체가 현저하게 다르다.

= 한눈에 그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길 바랐다. 각질이 순정 만화에서 볼 법한 발랄하고 명랑한 그림체라면 본래 ‘나’는 더 현실적인 모습이다. 혼자 있을 때 우울한 것과 달리 타인 앞에서 눈에 띄게 밝은 모습을 보이는 그 낙차를 담으려 했다.

- SNS와 틱톡, 특정 컨셉의 브이로그 등을 보면 의도적으로 공적 자아와 사적 자아를 분리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나.

= 자기 안의 중심이 똑바로 선 경우라면 무척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표현하기 위해 상황별로 어떤 각질을 써야 하는지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자기 인식이 뚜렷하지 않은 상태에서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 할 때 문제가 생긴다. 내 안의 신호보다 외부 요소를 신경 쓰게 되면 결국 나를 잃어버리고 만다. 이건 생각보다 더 무서운 일이다. 내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하루는 카페에 가고 있었는데 당장 뭘 마시고 싶은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결국 목적지 부근에서 한 시간 동안 빙글빙글 맴돌았다.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건 내가 어떤 선택을 했을 때 행복한지 모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지금 10대에게 “잘 지내?”라고 물으면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에서?”라고 되묻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태어났을 때 이미 이런 환경이 구축되어 자아 분리가 익숙한 세대에게 <각질>은 어떻게 다가올까.

= 어릴 때부터 자아 분리가 자연스러운 사회 분위기에 노출되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런 환경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활성화된 SNS로 인해 많은 사람이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는 부담과 압박을 과거보다 더 많이, 자주 받고 있다. 특히 10대는 타인에게 더 쉽게 영향을 받는다. 주변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보다 더 먼저 챙겨야 할 게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내가 나 자신과 일치되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 스스로 어떤 유형의 애니메이터라고 생각하나.

= 작품 욕심이 강한 편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로 진학한 이유도 매년 한편씩 작업물을 완성해야 하는 커리큘럼 때문이었다. 기획 단계부터 스토리텔링, 연출과 아트워크 등 모든 영역을 잘해내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이러한 성향이 나를 향한 탐구로 이어지기도 했다.

- 애니메이션 고등학교 출신이다. 애니메이션을 향한 열정은 그때부터 시작된 걸까.

=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중학교 2학년 여름에 처음 취미로 미술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다닌 학원이 마침 애니메이션 학원이었다. 당시 또래 무리가 하루 종일 학원에 있기에 선생님께 “쟤네는 누구예요?” 하고 물었더니 입시반이라고 하더라. 자연스럽게 그 무리에 흘러들어가게 됐다. 우연에 우연이 겹치면서 진로가 정해졌다. 그래서 청소년기에 그림이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인지, 그림이 내 삶에 어떤 의미인지 계속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 최근 애니메이션에 기반한 NFT의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애니메이션 확장 가능성도 더불어 커졌다.

= 애니메이션 산업의 성장이 피부로 느껴진다. <유미의 세포들> 같은 드라마나 뮤직비디오, 게임, 광고에 애니메이션이 활용되는 것을 이전보다 더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확장된 시장에 비해 인재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왕왕 듣는다. 웹툰이나 일러스트로 방향을 바꾼 전공자가 많기도 하고, 무엇보다 고용자가 어떤 인재가 어디에 포진해 있는지 잘 모른다. 단편애니메이션이 대중에 노출될 경로가 영화제 말고는 거의 없다 보니까 인재 맵이 정보화되지 않았다. 이러한 정보가 더 대중화되어야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고 싶은 이들에게도 미래에 대한 안정과 전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