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에 대한 첫 인터뷰가 이런 인터뷰일지 몰랐다.”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안나>의 각본을 쓰고 연출한 이주영 감독이 8월9일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운을 뗐다. 그는 일주일 전 법률대리인을 통해 쿠팡플레이가 8부작으로 계약한 <안나>를 6부작으로 일방 편집하면서 작품을 훼손했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 감독은 쿠팡플레이를 향해 공식적인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쿠팡플레이는 제작사의 동의를 얻어서 편집했다며 맞서고 있는 상황. 이주영 감독은 ‘저작인격권’을 근거로 들며 재차 입장문을 발표했고, 이 감독을 지지하는 스탭들의 입장문도 공개되면서 <안나>에 대한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이주영 감독은 쿠팡플레이를 향해 “그들은 뭐든 돈을 주고 사면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비판했다. <안나>가 제작되고 논란이 불거지기까지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 비가 하염없이 내리던 날, 이주영 감독과 1시간 반 넘게 긴 대화를 나눴다.

-쿠팡플레이에 대한 입장문을 발표하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인가.

=처음엔 그냥 넘어가려고 했다. 입장문을 내기까지 2개월이 걸렸다. 쿠팡플레이가 <안나>를 재편집한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심리적으로 충격이 컸고, 작품이 공개됐을 때도 안 봤다. 인터넷으로 <안나>를 검색하지도 않았고, 스탭들에게 이야기만 들었다. 그러다 최종화가 공개된 날, <안나> 확장판에 대한 기사가 떴다. 그때 스탭들조차 “쿠팡플레이에게 능욕을 두번이나 당할 거냐”라고 하더라. 이 문제를 나혼자 알고 끝내는 게 맞나 고민한 끝에 입장문을 발표하게 되었다.

-8부작에서 6부작이 되면서 작품이 많이 훼손됐다고 주장했는데, 1~6부 전체가 훼손됐나, 후반부만 훼손됐나.

=쿠팡플레이가 8부작 <안나>의 1~3부, 그리고 4부 초반까지의 이야기를 1~2부 안에 다 욱여넣었다. 유미(수지)의 사건을 중심으로 편집하면서 다른 캐릭터의 서사와 감정이 다 날아갔다. 안타고니스트 현주(정은채), 조력자인 지원(박예영)의 감정과 설정을 날려버리면서 긴장감이 사라졌고, 캐릭터 간 관계성이 하나도 안 보이게 됐다. 6부작 <안나>의 경우, 3~6부 속 감정의 인과관계, 물리적 시간도 다 파괴됐다고 보면 된다. 단순히 신을 빼기만 한 게 아니라 안 좋은 컷들을 붙여놨고 신의 순서도 바꿔 놨다. 그 결과, <안나>는 거짓말하기 좋아하는 여성의 상황극, 혹은 해프닝이 돼버렸다. 쿠팡플레이 측은 또한 영상 작업의 물리적인 이해도도 없이 아나모픽 렌즈로 찍은 장면을 막 편집해 화질을 손상시켰고, DI실에 마케팅용으로 쓰겠다고 거짓말하면서 200컷의 DI작업을 요청해 본편에다 쓰는 만행도 저질렀다. 음악의 경우, 모그 음악감독이 8개월 동안 유미의 대사와 감정에 맞춰 정교하게 설계한 음악을 음악감독 허락 없이 삭제하고 비슷하게 만들어 넣어뒀다.

-입장문에 "쿠팡플레이는 제작사 컨텐츠맵을 통해 8부작으로 된 극본을 검토하고 이를 최종고로 승인하였"다고 밝혔는데, 계약서에도 8부작이 명시됐었나.

=그렇다. 계약서에 8부작으로 명시돼 있었다. 쿠팡플레이도 이미 8부작을 승인했다고 인정했다. eBay가 언급되는 대사를 빼달라고 요청해서 그 수정을 끝으로 8부작의 최종고를 승인받았다. 쿠팡플레이는 채널 드라마가 아닌 퀄리티 있는 작품을 제작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고, 8부작을 한번에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다 어겼다.(<안나>는 6월24일부터 일주일 간격으로 2부씩 공개되었다. -편집자)

-쿠팡플레이는 수개월에 걸쳐 감독에게 수정을 요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촬영 중 4부까지 가편집본 시사를 두번 했고, 쿠팡플레이 측은 이를 보고 좋아했었다. 고생 중이고, 앞으로도 잘 찍어달라고 말했었다. 가편집본 회의에서 이외에 작품에 대한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이야기를 들은 게 없다. 보통 영화 현장에서는 가편집본을 만들지만, 드라마 현장에서는 만들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시간을 쪼개 휴차때 공들여서 가편집본을 만들어 키스탭들과 공유했고 쿠팡플레이와도 1~4부에 대한 가편집본 시사를 두번 했다. 코로나로 인해 촬영이 길어지면서 5~8부작에 대한 가편집본 시사는 못했지만, 이후 편집본 회의에서 전편을 다 보여줬다.

-이후 4월21일 열린 편집본 회의에서는 쿠팡플레이가 어떤 의견을 냈나.

=8부까지 편집본을 보고 난 뒤, 4월21일에는 1~4부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음날인 22일에는 5~8부를 이야기하기로 했다. 첫 편집본 회의 때 쿠팡플레이 측이 “1~2부가 길다. 요즘 사람들은 유튜브를 10분 이상 안 본다”라고 했다. 나는 연출자이자 작가로서 쿠팡플레이에게 문제 삼는 신의 기능과 목적을 설명했다. 이 신은 이런 이유에서 빼면 안 되고, 이 신은 다른 화에서의 씬과 연결되기 때문에 다른 신을 빼면 어떻겠냐고 대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쿠팡플레이 측은 회의다운 회의를 하지 않았다. 한 실무자가 “난 잘 모르겠는데”라며 반말을 섞어가면서 말해 편집감독이 화났던 기억도 있다. 무엇보다 쿠팡플레이 측에게 들은 가장 충격적인 말은 “왜 모든 장면을 의도를 갖고 찍었느냐”였다. 의도가 없는 대사는 쓸모가 없고, 의도 없는 장면은 편집 과정에서 뺀다는 건 영상 문법의 기본이다. 작품을 평면적으로 그리고 싶지 않아서 다들 얼마나 노력하나. 연출자와 배우들은 모두 그 목적을 위해서 엄청나게 고생하는데 이들은 "왜 모든 장면을 의도를 갖고 찍었느냐"라고 말했다. 이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안나>의 후반부를 논의하는 다음날 편집본 회의는 어떻게 되었나.

=5~8부작을 이야기하기로 한 다음날, 제작사 콘텐츠맵에 의해 회의가 취소됐다. 제작자는 쿠팡플레이가 “독립영화같다. 다 맘에 안 든다”라고 했다며, 제작자 자신의 의견인 수정 사항 2건을 전달했다. 납득 가능한 것이어서 받아들이고 편집락을 하였다.(편집락은 DI, CG, 사운드 믹싱 작업에 들어가기 전, 편집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을 말한다. -편집자)

-일주일 뒤인 4월28일, 쿠팡플레이가 편집 프로젝트 파일을 요구하고, 계약파기를 언급하면서 파일을 받아갔다고 입장문에서 밝혔다.

=쿠팡플레이가 <안나>의 데이터를 요구해서 받아간 뒤 파일 하나가 빠졌다며 편집 프로젝트 파일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것도 편집감독도 아닌, 편집팀원에게 요구했다. 정식으로 요청하지 않고 교묘하게 머리를 쓴 거다. 편집 프로젝트 파일이 있으면, 모든 장면을 넣었다가 빼면서 이전 편집 결과를 수정할 수 있다. 연출자조차 편집감독에게 프로젝트 파일을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게 관례다. 그건 어마어마한 실례이기 때문이다. 만약 편집감독과 이견이 있어 편집실을 바꾸더라도 촬영 소스를 가지고 새 편집감독과 새롭게 편집을 해나가야지, 프로젝트 파일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처음엔 쿠팡플레이가 업계에 대해 잘 몰라서 편집 프로젝트 파일을 요청한 줄 알았다. 그래서 따로 잘 설명을 했는데도 이들은 자기들에게 권한이 있으니 당장 달라고만 했다. 작품 전체의 마스터본을 납품하는 5월30일, 모든 파일을 주겠다고 설득했는데도 그들은 한달을 못 기다렸다. 그러면서 편집 프로젝트 파일을 요구하는 이유가 “아카이빙용”이라는 거다. 쿠팡플레이가 제작사를 하나 인수했는데, 그 제작사에서 보기만 하겠다고도 했다. 끝내 내가 허락하지 않자 쿠팡플레이는 <안나>의 제작자에게 계약 파기를 운운하며 파일을 가져갔다. 당시에도 <안나>가 6부작으로 재편집될 거란 말을 못 들었지만, 그때부터 재편집을 시작한 것 같다. 편집 프로젝트 파일을 가져간 게 찜찜했으나 코로나로 촬영이 지연됐음에도 쿠팡플레이가 납기일을 조금도 미뤄주지 않아 나는 100m를 9초안에 뛰듯 작업했다. 18일만에 편집을 완료했고 CG를 3주만에 마무리했다.

-쿠팡플레이가 6월7일 감독님에게 재편집을 통보하였다고. 당시 쿠팡플레이는 어떤 이유를 들어 재편집을 하겠다고 하던가.

=먼저 알게 된 건 6월2일이었다. 6월2일 쿠팡플레이가 모그 음악감독에게 전화해 재편집을 한다며 협조 요청을 했다. 그런 식의 요청이 불쾌했던 음악감독이 쿠팡플레이에 “이주영 감독은 알고 있냐, 이 전화를 끊자마자 감독에게 전화하겠다”라고 말했고, 내게 재편집 사실을 알렸다. 나로서는 상식 밖의 이야기라 오히려 모그 음악감독에게 반문했던 것 같다. “재편집을 어떻게 해요?”라고.

5월30일에 최종 마스터본을 넘겼는데, 3일만에 재편집 이야기를 전해들은 것이다. 쿠팡플레이는 6월7일 나를 만나러 와서 재편집으로 분량을 줄이기로 결정했다며, <안나>가 취향을 타는 어려운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새롭게 편집한 내용을 내게 보여주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광고를 비롯해 타인의 돈으로 영상 찍는 작업을 오랫동안 해왔다. 광고주, 투자사의 말을 무시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일만 했다. 서로 설득하고 명분 싸움을 하는 과정이 영화와 영상 작업인데, 쿠팡플레이에게는 그 과정이 중요치 않았다. 그들은 뭐든 돈을 주고 사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와 모그 음악감독, 이의태 촬영감독의 의견을 무시하면서도 감독들의 수상 실적을 마케팅에 이용한 것만 봐도 그렇다.

-입장발표 이후 쿠팡플레이로부터 사과나 해명은 없었나.

=없었다. 내가 입장문을 통해 밝힌 첫번째 요구는 쿠팡플레이가 배우들과 스탭을 향해 사과하란 것이었다. 특별출연을 어렵게 부탁해서 시간을 쪼개 나와 준 배우들이 영문도 모른 채 잘려나갔다. 정말 마음이 아픈 일이다. 두번째로 요구한 건 6부작 <안나>에서 내 크레딧을 빼달라는 것이다. 이는 창작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 세번째 요구는 '감독판' 공개인데, 이건 나를 위해서가 아니다. 인간으로서 예의를 다하고 싶어서 감독판을 요구한다. 이번 일이 마치 ‘편집 배틀’처럼 보여지는 게 안타까운데, 쿠팡플레이에 넘긴 마스터본에는 원작 소설을 쓴 정한아 작가에게 헌정하는 의미에서 단독 크레딧을 넣었었다. 쿠팡플레이는 그걸 빼고 여러 스탭의 이름과 함께 정한아 작가의 크레딧을 표기했더라. 또 배우가 특정 신체부위가 드러나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신의 목적과 앵글을 잘 설명하고 찍은 장면이 있는데, 이걸 쿠팡플레이가 전혀 상관없는 장면과 이어붙인 경우도 있다. 그런 식으로 일하면 안 된다.

=감정적인 단계는 다 끝났다. 지금은 냉정하게 생각하는 중이다. 이번 일로 일면식도 없는 투자사, 제작사, 감독님들에게 엄청난 응원을 받았다. 스탭들 의견을 수렴해서 어떻게든 끝까지 가보려고 한다. 스탭들의 의견 없이 혼자 결정하진 않을 것이다. 쿠팡플레이는 <안나>가 대중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고 또 결과가 좋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오만함과 어리석음을 그냥 묻고 넘어갈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