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INTERVIEW
[인터뷰] 제11회 스웨덴영화제 개막작 ‘타이거즈’ 론니 산달 감독, “때론 과감한 포기가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자연 사진 오계옥 2022-09-29

올해로 11회를 맞이한 스웨덴영화제는 개막작으로 론니 산달 감독의 <타이거즈>를 선정했다. 세계적인 축구 선수가 되는 게 목표인 마르틴 벵트손(에릭 엥에)은 16살의 어린 나이로 이탈리아 유명 구단에 들어간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치열한 경쟁은 벵트손의 목을 조르고 자기 나이대의 어리숙함을 누려볼 새도 없이 자신을 극도로 통제하기 바쁘다. 그러던 어느 날 벵트손은 20여년 동안 우리에 갇혀 지냈다는 호랑이 사진을 보게 된다. 자신을 먹이고 키운 조련사를 해치고 야생의 눈빛을 잃지 않은 호랑이를 보며 그는 자기 안에 갇힌 무언가를 느낀다. 영화는 스웨덴의 유망한 축구 선수 마르틴 벵트손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나의 목표가 곧 나의 정체성이라는 자기만의 규칙을 깨버린 소년은 마침내 자유로워졌다. 아직 갇혀 있는 무수한 ‘호랑이들’을 위해, 론니 산달 감독이 재구성한 것을 이야기했다.

-주인공 벵트손 역을 맡은 에릭 엥에 배우의 연기가 단연 돋보인다. 16살 소년의 어리숙함과 꿈을 향한 진지한 태도를 동시에 잘 보여줬다.

=벵트손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요구 사항이 많은 역할이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적합한 배우를 찾는 게 어려울 거라 예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에릭 엥에 배우가 조연으로 등장한 범죄 드라마를 우연히 보게 됐다. 얼굴을 보자마자 쉽게 깨질 것 같은 유약함과 강인한 생명력이 동시에 느껴지더라. 굉장히 찾기 힘든 이미지인데 벵트손 역에 딱 맞아떨어졌다. 다만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당시 에릭이 극심히 말라서 축구 선수로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촬영을 시작하기 전 18개월 동안 보디빌딩 훈련에 들어갔고, 오로지 근육만 10kg을 증량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마인드 세트를 돌보는 일도 놓치지 않았다.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타이거즈>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다루는 게 조심스러웠을 텐데.

=실화 바탕의 영화를 만들 때 원래 이야기를 존중하는 자세를 취하는 게 중요하지만 동시에 그 기대를 유연하게 꺾는 것도 중요하다. 영화 제작이란 결국 창작 활동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나에게 이야기를 스스로 해석하고 소화할 자유를 줄 필요가 있다. 또 그러다보면 사건을 더 정교하고 세심하게 보게 된다. <타이거즈>를 작업하면서 실제 주인공인 벵트손에게 내용이 얼마나 정확한지 묻기 위해 여러 번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나의 판단을 존중해줬고 작품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화를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하더라.

-벵트손은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를 꿈꾸며 자기 통제를 엄격하게 해내지만, 사실 아직 운전면허도 따지 못한 미성년자다. 어린 소년으로서의 서투름과 결핍을 내보이기 위해 어떤 면을 신경 썼나.

=영화는 벵트손이 이탈리아 축구 구단에 들어간 1년여를 그려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을 기준으로 구획을 나누었는데, 마치 전쟁에 참여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군인의 여정처럼 보여주고 싶었다. 1년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난다. 첫 독립, 첫사랑, 첫 섹스, 첫 음주, 첫 일탈… 말 그대로 역동적인 1년이다. 그 과정에서 카메라는 그의 주관적인 시점을 따라간다. 카메라워킹이나 시선 처리가 벵트손의 자리에서 비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예를 들어 데뷔 매치에서 넓은 경기장의 위압감을 나타내기 위해 관중석을 기준으로 운동장을 내려다보는 방식이 아니라 안에서 바깥으로, 벵트손이 올려다보는 방식으로 처리했다. 벵트손 입장에서 낯선 것들을 보여주려 했다.

-심리적으로 압박받는 축구 선수의 모습을 벵트손뿐만 아니라 그의 주변의 다른 선수를 통해서도 보여준다.

=주인공을 제외한 다른 선수들이 이상한 행동을 하는 장면이 있다. 갑자기 폭력을 저지르거나 지나치게 무심하거나, 건축물에 올라가 떨어질 거라고 협박하거나. 하지만 그건 그 사람들이 악마여서가 아니다. 축구 구단에 들어올 정도면 평균적으로 10살 즈음부터 고강도의 훈련을 받으며 치열한 경쟁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높다.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굶주림이 필요하다”는 구단 디렉터의 말도 그 세계의 고착된 문화를 잘 보여준다. 보통 구단 관계자도 대부분 선수 출신이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하고 계획을 세운다. 이 조각들이 덧붙여지면서 축구 산업에 파괴적인 시스템이 내재돼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모델인 여자 친구 비베케는 발을 다친 후 에이전시로부터 전화를 받고 나서 “내가 살찌고 늙어서 다쳤다고 뭐라고 하는 거지 뭐”라며 무심하게 말한다. 모델과 축구 선수 모두 몸이 자산이나 다름없는 직업인데 벵트손과 비베케의 업무를 대하는 긴장감은 각각 다르게 느껴진다.

=일종의 거울 효과를 만들고 싶었다. 비베케는 모델로 오랫동안 활동해오면서 자기만의 대가를 치러왔다. 모델 비즈니스가 어떤 논리로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자신과 일을 분리하는 법도 터득해냈다. 둘이 처음 만난 날 자신을 축구 선수로 소개하는 벵트손에게 비베케가 “네가 하는 일 말고, 네가 누구냐”고 되묻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유명한 축구 선수가 되는 꿈으로 강박적인 벵트손과 달리 비베케는 조금 더 성숙한 방식으로 배움을 준다.

-벵트손은 20년간 갇혀 살던 호랑이 사진을 말없이 바라보다 마침내 축구를 그만두기로 결심한다. 우리에 갇힌 호랑이와 달리 처음으로 혼자 운전해 나아가는 벵트손의 모습에서 해방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 속 호랑이와 벵트손 사이에는 은유적 연결고리가 있다. 내부에 갇혀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다는 점과 그것으로 돈을 번다는 점이 그렇다. 또 사람들은 축구 선수의 능력을 호랑이처럼 신격화해 숭배하는 면이 있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고 나서 축구 선수가 한명 한명 사람으로 보인다는 반응을 듣기도 했다. 사실 스포츠영화에서 축구 선수로서의 해방감은 성공을 이루고 경기장에서 자유를 얻는 것일 수 있지만, 집요하게 놓지 못하던 것을 과감히 포기하고 나아가는 것도 의미가 있다. 안 하기로 선택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자기 주도성을 되찾기 때문이다.

-벵트손의 축구 구단 탈퇴 이후 산업 내에 실질적인 변화가 생겼는지 궁금하다. 또 <타이거즈>가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거라 기대하나.

=벵트손이 축구를 그만두고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쓴 뒤로 여러 구단에서 선수들의 정신 건강 문제를 더 주목하고 신경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다만 커리어를 한창 쌓아가는 16~20살보다는 그 시기를 지난 30~35살에게 기회가 주어진다고 한다. 요즘엔 SNS가 대중화되고 매체의 주목도가 커지면서 문제가 더 심해진 경향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통해 더 많은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길 바란다. 축구 구단을 지원하는 기업에 선수의 정신적 문제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지, 구단과 어떻게 대처하기로 합의했는지 등 환경 여건을 물어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이런 변화가 더 적극적으로 일어나면 좋겠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