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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회사에서 울어본 적 있어요?
윤덕원(가수) 2022-10-20

오늘도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 있는 서울시극단 연습실에 도착했다. 10월 중에 있을 연극 <일의 기쁨과 슬픔>(이하 <일기슬>) 연습을 위해서다. 연극이라면 어릴 적 학예회에서 해본 게 마지막인 것 같은데, 첫 시도 치고는 너무 큰 무대에 서게 된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 연극 경험이 없는데 괜찮을까 걱정을 했지만 맡게 될 역할이 인디 뮤지션인 만큼,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제안하신 것 같다(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많이 부족하겠다 싶었지만 준비를 많이 하면 되겠지 생각하며 수락했다. 그리고 역시나 현장에서 만난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함께하면 할수록 점점 작아지고 있는 중이다. 연습을 최대한 열심히 해야지 생각하며 시작하긴 했지만 더 열심히 해야겠다 다짐해본다.

연습은 낮에도 있지만 주로 저녁 시간에 많이 한다. 지하철을 타고 도착할 때쯤 대체로 퇴근시간과 겹친다. 광화문이 사무실 밀집지역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퇴근시간의 모습을 몇주간 이렇게 연속으로 본 것은 처음이다. 오후 6시가 약간 지난 시간. 누가 봐도 광화문 어딘가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역 안으로 밀려들어온다. 양복이나 격식을 차린 듯한 모습이지만 퇴근시간에는 조금은 자유로워 보인다. 양복 차림에 넥타이를 하지 않은 모습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약간 숨통이 트인 기분이랄까. 일할 때 정장을 입지 않는 내가 그 기분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오늘도 후드티셔츠를 입고 온 참이다. 밴드 로고가 크게 박혀 있다. 격식을 차리지 않는 자리에서 일할 때(연습이나 작업) 주로 입곤 한다. 그러니까 내게 있어서는 예전에 아버지가 입고 다시니던 공장 점퍼와 같은 느낌이다. 지금 연습실로 가는 것도 일하러 가는 셈이니까. 이 새로운 일터에서는 내가 가장 신참이다. 눈치껏 상황을 파악하고 조금은 쭈뼛거리면서 분위기에 섞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나마 여기저기 다녀본 덕에 모르는 것 있으면 최대한 잘 물어보려고 하고, 늦거나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게 전형적인 늦깎이 신입의 모습인 것 같다. 몇줄 되지 않는 대사를 하는데 자꾸 정확하게 하지 못하고, 주변 분위기에 맞춰야 하는 기타 연주가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아서 당황스럽고 부끄럽고 스스로에게 화가 날 때면 처음 무대에 섰던 때가 생각난다. 인디밴드는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던 때가 많았다. 무대 위에서도 무대 밖에서도.

연극 출연에 관해서 인터뷰를 했다. 기억나는 대사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답을 하기 어려웠다. 장우 역은 대사가 많지 않기 때문이었음을 이 지면을 통해 고백한다. 하지만 역시 가장 기억나는 대사라고 하면 “회사에서 울어본 적 있어요?”라는 ‘거북이 알’ 의 대사다(자세한 내용은 원작 소설이나 연극을 통해서 확인하시길). <일기슬> 원작은 단편들이 모인 소설집으로 등장인물 각각의 다른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들은 한가운데 이 질문을 던졌을 때 모인 답변들처럼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한편의 연극으로 각색되어도 자연스러울 수 있었던 것같다. 등장인물로서도, 리허설을 반복하면서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아나가고 있는 중이다. 만족할 만한 답을 찾아내고 나면 나의 어색한 대사들도 조금은 자연스러워지겠지?

참고로 두 번째로 인상깊었던 대사는 “울 순 없으니까 한숨이라도 쉬나보죠”다. 울고 싶지만 한숨을 쉬면서도 어떻게든 해나가는 게 어른의 모습이겠지. 이 질문이 나에게 주어진다면 나의 답은 확실하다. 일하면서 울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한숨은 정말 많이 쉬었던 것 같다.

괜찮지 않은 일 - 브로콜리너마저

거짓말으로 괜찮다고 말을 하고

돌아서서 울었던 어렸던 날들

이제는 누구도 상처 주지 못할

사람이 되겠네

좋은 사람이 되지 않겠어

너 같은 사람을 만나면

모른척하지 않으려고 해

혹시 내가 웃더라도

이건 너를 용서하는 게 아냐

그저 우리 존재가 좀 더 커졌을 뿐

더러운 것들 너머로

나의 우주는 조용히 자라나

거짓말으로 괜찮다고 말을 하고

돌아서서 울었던 어렸던 날들

이제는 누구도 상처 주지 못할 사람이 되겠네

나쁜 사람이 되지 않겠어

어떤 인간들을 만나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건

그저 사람이 되는 일

괜찮다고 생각하면 괜찮은 일

나만 삼키면 없어지는 일

나를 삼키고 없어지는 일

나만 괜찮지 않은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