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쿠, 생각지도 못한 순간이었다. 회전하던 차가 코너 모서리에 걸렸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멈췄다. 다행히 근처에 다른 차들은 없었다. 놀라긴 했지만 다친 곳은 없었다. 차를 갓길로 옮기고 내려서 살펴보니 부딪친 난간 모서리가 생각보다 조금 더 튀어나온 위치에 있었다. 나만 실수한 것은 아닌 듯 난간은 몇번이나 차가 긁고 지나간 듯한 모습이었다. 차를 살펴보니 범퍼가 긁혀 있었다. 모서리가 깨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헤드라이트 안쪽의 플라스틱 부품이 떨어져나가고 없었다. 렌터카 회사에 연락하면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하고 생각했다. 그러면 이렇게 시간을 뺏기고 수리비를 지출하지 않아도 될 텐데. 또 이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 텐데. 혹시나 나중에라도 몸이 아프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조금만 더 넉넉하게 간격을 잡고 돌았으면 좋았을걸 하고 스스로를 탓하지 않을 텐데.
그러나 후회한다고 해서 일어난 사고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미 일어난 마당에는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고, 다만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할 수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고 앞으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할 뿐이다. 예전에는 예측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도 자책하고 한동안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려운 적도 있었다. 그래도 이제는 그런 것들을 조금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저 예상할 수 있는 일들에는 좀더 대비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편이다. 좀더 안전하게 운전하는 습관을 가진다거나, 주차할 때 주위를 세심히 살핀다든가. 이번엔 그래도 마음의 여유를 조금이나마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조금 비싼 (그렇지만 사고 때 부담이 덜한) 보험을 들어놓았기 때문이다. 차를 렌트할 때는 그 얼마의 금액이 조금 아깝다 느낀 적도 있었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번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이번 일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보험료가 비싸다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사고가 났다면 큰 수업료를 내야 했을 것이다. 그나마 이번에는 차량이 일부 손상된 정도였으니까 그 정도는 감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대하고 큰 문제였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나서야 미리 대비할걸 하고 생각해봤자 당사자로선 의미 없는 일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ㅇㅇ를 할 때 꼭 신경 써야 할 것들’ 같은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꼭 필요한 것들은 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하고. 직접 경험하지 않더라도 필요한 것들, 미리 준비하면 좋은 것들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런 것들이 시간을 거치며 누적되어왔기에 지금 인류가 이런 모습으로 살 수 있는 것이겠지. 매번 독버섯이 어떤 것인지 경험으로 알 수밖에 없다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가 있었겠어.
어떤 일들은 개개인이 준비하기에는 너무 큰 것들도 있다. 요즘같이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고도화된 사회에서는 이런 일들을 개인의 몫으로만 남겨두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원래 그런 것처럼 굴러가고 있는 세상의 이면에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구축된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들이 제기능을 못하게 되기 전까지는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실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주인공들임에도 가벼이 여겨지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의 모습에 비하면 이 복잡하고 정교한 사회의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결정을 해야 하는 이들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책임지지 않는 모습은 얼마나 한심한지.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으로) 곧 수능시험일이 다가온다. 예년 같으면 수능 한파 이야기가 화제가 될 법도 한데 그 어느 때보다 그냥 지나가는 듯하다. 대학 시험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성인이 되기 전에 많은 청소년들이 청소년기를 마무리하는 시기인데,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모르겠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가 있었던 사람들이 그러지 못하게 되었다. 변명만 늘어놓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대로는 영영 이 상황을 수습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다른 가능성을 파괴해가면서 말이다.
가능성 - 브로콜리너마저
그럴 수도 있었지 뭐든 할 수 있었고
뭐든 될 수 있었던 그런 날이 있었지
잘 될 수도 있었지 이번이 아니라도
너에게도 차례가 있을 거라 했었던
좁아지는 길 손에는 몇 장 남지 않은 카드
웃으며 일어나는 사람들
점점 줄어가는 의자 텅 빈 운동장
그럴 수도 있었지 뭐든 할 수 있었고
뭐든 될 수 있었던 그런 날이 있었지
좁아지는 길 손에는 몇 장 남지 않은 카드
웃으며 일어나는 사람들
점점 줄어가는 의자 텅 빈 운동장
더 좁아지는 길 손엔 아무것도 없고
하나둘 떠나가는 사람들
점점 늦어가는 시간
그럴 수도 있었지 뭐든 할 수 있었고
뭐든 될 수 있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