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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빈센조’ 박재범 작가 “장르는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
송경원 사진 최성열 2023-03-12

-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부전공하면서 연극 활동을 하셨습니다. 어떻게 작가의 길로 접어든 건가요.

= 중학생 때부터 영화 연출이 꿈이었습니다. 대학에 가서도 포기 못하고 부전공으로 연극영화과를 선택했는데, 막상 가서는 연극에 더 빠져들었죠. 연출, 극작, 시나리오 공부를 하긴 했지만 당시엔 연극을 더 많이 했을 정도였어요. 다만 연기라는 게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재능의 영역이 확실한 분야잖아요. 한창 즐겁게 하긴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결국 돌아갈 집은 영화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2000년 영화 <씨어터> 각본을 쓴 이후 영화 연출을 준비했는데 몇 차례 무산되고 나니 시간이 금방 갔어요. 뭐라도 해야만 했죠. KBS 극본 공모에 응모했는데 5명 뽑을 때 6등을 했어요. 보통은 그냥 넘어갈 기회였는데 아쉽다고 따로 연락이 와서 6개월 인턴을 할 수 있었어요. 그게 첫걸음이었고, 2002년 <드라마시티>에서 단막극으로 시작했어요.

- 2002년 <드라마시티>로 데뷔한 뒤 2010년 <신의 퀴즈>를 집필하기까지 꽤 긴 공백이 있으셨어요.

= 드라마 극본을 쓰면서도 영화 연출 준비는 계속했습니다. 그렇게 3번 정도 작품이 엎어지니까 6, 7년이 후딱 가버리더군요. 그렇다고 드라마쪽으로 복귀하려니 마음이 동하지 않았는데, 때마침 OCN에서 새로 론칭하는 프로젝트가 있어서 참여하게 되었어요. 그게 <신의 퀴즈>였습니다. CJ에서 기획하는 작품이라 아무래도 영화적인 요소가 많아 이런 톤이면 할 수 있겠다 싶었죠. 그렇게 시작한 게 여기까지 온 겁니다. 물론 영화는 지금도 여전히 준비 중이고 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 각본도 쓰고 있어요. 최근에는 <비상선언> 각색 작업을 했죠.

장르는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

- 드라마와 영화 시나리오를 쓸 때 느낌이 많이 다른 편인가요.

= 포맷이 다르니 당연히 차이가 있는데 요즘에는 점차 옅어지는 것 같아요. 원래부터 마이너한 쪽에 끌리는 편이라 큰 차이를 못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항상 안 해 본 것, 낯선 것에서 이야기를 착안하는 편이에요. <신의 퀴즈>는 국내 최초의 메디컬 수사극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한 작품이었는데, 그걸 목표로 한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다보니 메디컬 수사극이란 장르로 좁혀진 경우죠. 나는 언제나 명확한 주제부터 시작을 하는 편이에요. 장르나 스타일은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것에 불과하죠. 지금 시대에, 우리 사회에 어떤 이야기를 해야 의미 있을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사진제공 tvN

- 그러고보면 <신의 퀴즈>에서 법의학을 다룰 때, <굿 닥터>에서 많은 전공 중 소아외과를 선택했을 때, 심지어 <빈센조>에서 이탈리아 마피아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을 때도 결국 우리 사회의 모순을 이야기해왔네요.

= 맞아요. 장르는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이에요. 이야기의 근본을 파내려가면 사회 드라마가 바닥에 흐른다고 볼 수 있겠네요. 중요한 건 이게 말이 되는가, 그러니까 당위예요. 왜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적어도 작가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믿어요. 거기서부터 막혀버리면 누구도 설득할 수 없으니까요.

- 사회적인 메시지가 강한데 평소에 관련 이슈에 관심을 꾸준히 가진 편인가요.

= 그건 그냥 숨 쉬는 것 같은 거예요. 의식적으로 찾아볼 필요도 없어요. 보통 사람이 가지는 관심만큼 주변에 관심을 가지면 그걸로 충분하더라고요. 뉴스를 보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가끔 집회도 나가고. 오히려 정치적 이슈에 지나치게 몰입하지 않으려고 의식합니다. 그냥 대한민국 국민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거리감을 유지하려고 해요. 물론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죠. 애초에 정치적 중립이라는 건 환상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어느 정도의 편향성은 있는 게 자연스러운 거죠. 다만 작품에 묘사할 땐 그걸 최대한 티 나지 않게 그려나가는 게 중요해요. 객관적으로 누가 봐도 잘못된 것들, 상식선에서 부끄러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 생소하고 전문적인 분야에서 디테일한 부분까지 잡아내는 케이스 취재력이 돋보입니다.

= 특별한 방법은 없어요. A부터 Z까지 무식하게 다 쓸어담아 공부를 했죠. 농사를 짓는 감각이랄까요. 나중에는 그런 공부가 밑천이 되더라고요. <굿 닥터> 때는 상대적으로 도움을 받았죠. 그렇다고 소재에 갇혀 반복한 적은 없어요. 늘 안 해본 분야에 관심이 더 가는 편이라.

사진제공 KBS

- <신의 퀴즈>는 시즌제로 장기 방영하면서 국내에 없던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직접 글을 쓰지 않고 책임 기획을 맡으셨고요.

= 최초 시도라는 게 듣기엔 멋지지만 쉽지 않았어요. 국내에 없는 모델이라 의지 하나만 가지고 좌충우돌 부딪쳤죠. 시즌마다 어떻게 새로운 걸 보여줄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지나고 보면 다 좋은 자산이 된 경험이었어요. 무엇보다 국내 제작 환경에 맞춰서 진행해야 한다는 게 중요했거든요. 국내에서는 시즌1이 성공했다고 제작비가 2, 3배 늘어나는 환경은 아니니까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기획자의 시선을 배웠던 게 아닌가 싶어요. 어떻게 보면 연출, 기획, 각본 겸업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미국 드라마 체제를 보면 당연한 시스템인데 국내에선 아직 생소하니까요. 크리에이터는 작가이자 프로듀서의 개념이에요. 지금 우리 팀은 5개 정도의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 중인데, 축구로 치면 감독처럼 넓은 시야가 필요합니다. 항상 배우는 중입니다.

“A부터 Z까지 무식하게 다 쓸어담아 공부를 했죠. 농사를 짓는 감각이랄까요. 나중에는 그런 공부가 밑천이 되더라고요. <굿 닥터> 때는 상대적으로 도움을 받았죠. 그렇다고 소재에 갇혀 반복한 적은 없어요. 늘 안 해본 분야에 관심이 더 가는 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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